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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안의 삶 이야기

김보람 승인 2019.09.02 13:15:40 호수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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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변호사가 된 이래 사내변호사 3년, 형사 피고인들의 사건을 전담하는 국선전담변호사 4년, 개업변호사 4년간의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 여러 가지 희로애락의 에피소드들을 겪었지만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하면서 겪은 재미있다면 재미있기도 하고, 제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었던 경험들이 떠올라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개’ 사건
당시는 2012년으로 요즘과 같이 개의 목줄을 매는 등 견주의 책임을 엄격하게 묻던 시절이 아니었는데 피고인의 개가 목줄이 풀린 채로 동네를 배회하다 동네를 지나가던 할머니를 보고 짖으며 뛰어왔고, 할머니를 물지는 않았으나 이에 놀란 할머니가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엉덩이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상해를 입게 되어 견주에게 ‘과실치상’으로 벌금이 부과되자 견주가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의 국선변호를 맡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견주는 그 개가 자신의 개가 아니라고 변소하였고 증거자료로 증 제1호 ‘동네를 배회하는 다른 개들의 사진’, 증 제2호로는 ‘우리 집 개 사진’의 제출을 희망하였습니다.

그 개가 견주의 개라 지목한 사람이 피해자인 할머니였고 그 개가 현장에서 잡힌 것은 아니었기에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피해자인 할머니에 대해서 검사님의 주신문 첫 질문은 “개의 인상착의가 어떠했나요?”라는 것이었는데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는 질문이었으나 법정에서 통상 나오는 질문이 아니어서 방청객들 또한 주의를 집중해서 듣게 되었고, 질문을 들은 할머니는 “털이 하얗고 눈이 빨그스름했어요”라고 답변하셨는데, 이를 들은 견주(피고인)가 갑자기 “우리 동네 똥개들은 다 그래”라고 하자 법정 방청객들 중 웃음이 터진 사람들이 있어 주의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할머니가 증언을 끝내고 법정을 나가시면서 “개는 개라서 잘못한다지만 사람이 개만도 못하네. 재판 개판 만들지 말고 반성하라”면서 나가셨고, 이후 개의 이동경로를 추적한 추가 증거들이 제출되어 사건이 마무리될 수 있었는데, 당시에는 매우 특이한 경험으로 생각하였으나 최근 애견인이 늘어나고 관련 사건들도 급증하는 추세하에서는 충분히 발생할 수도 있는 증인신문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용서’와 ‘배려’의 노인정 사건
제가 맡은 사건들 중 비교적 크지 않은 일도 서로 용서하기 어려워 사건이 되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설득과 경청을 통하여 피해자와 피고인이 서로 간에 조금씩 마음을 열고 피해자는 피고인을 용서하고 피고인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여 피해자에 대한 피해 회복을 다짐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70세가 넘은 할머니인 피고인이 노인정 내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곳에서 75세인 할머니와 자리다툼을 벌이다 75세 할머니를 미는 바람에 피해 할머니의 척추를 다치게 해 10주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혔고 이 일로 피고인에게 벌금 300만 원이 부과된 사건이었습니다.

피해 할머니의 상해 정도가 중하였으나 연령이 75세로 고령이어서 작은 충격에도 크게 다칠 수 있는 점,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가하였다는 폭행도 손으로 몸을 민 것이었는데 벽에 피해자의 등이 잘못 부딪히면서 척추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크게 다치게 된 점, 피고인이 지체 장애로 누워 있는 아들을 부양하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70세 이상의 노인인 점, 일체의 전과가 없는 점 등을 참작하여 벌금형이 부과된 것으로 보이는 사건으로, 피해자의 상해 정도와 피고인의 어려운 가정형편에 비춰볼 때 합의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 같아 더 이상의 선처가 가능할지 염려되는 사안이었습니다.

피고인과 면담을 해 보니 피고인은 자신의 행동으로 이러한 엄청난 결과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에 매우 당황하고 미안해하며 자신의 가재도구를 팔아서라도 피해자의 치료비를 부담하고자 하며, 치료비가 부족하다면 간병인으로라도 피해자의 곁을 지키고 싶다고 하였고, 이러한 피고인의 진심이 느껴져 조심스레 피해자 가족들과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상과 달리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피고인의 어려운 경제 형편을 알고 있었고, 피고인에게 내려진 벌금형을 함께 걱정해 주고 있었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피해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약 300만 원의 치료비가 나왔는데 치료비 중 150만 원에 대하여 자신들이 건강보험공단에 보험급여를 청구하게 되면 공단에서는 피고인에게 구상금을 청구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이 점에 대하여도 걱정하면서 피해자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는 보험급여 150만 원을 자신들에게 지급하여 준다면 자신들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건강보험공단에 일체의 보험급여 등을 청구하지 않고 민, 형사상 합의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건으로 피해자가 여전히 입원 중이어서 피해자의 아들이 사무실로 찾아와 합의서와 탄원서를 제출하였는데, 피해자는 전화를 통하여 자신은 많이 나았으니 피고인이 최대한 벌금을 적게 낼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부탁을 하였고, 피해자의 아들 또한 피고인에게 선처를 해 달라는 취지로 탄원서를 작성해 주면서 같은 부탁을 하였습니다. 이상의 사정들이 참작되어 피고인에게 벌금형의 선고유예가 선고되었는데, 이후 피고인으로부터 피해자 가족들의 경제적 형편 또한 넉넉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피해자가 급한 치료를 마칠 수 있었으며,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자신들보다 형편이 어려운 피고인으로부터 치료비 중 일부라도 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미안해하며 이후 피고인의 손에 10만 원을 쥐여주기도 했다는 사실 또한 듣게 되었습니다.

범죄에 대한 막연한 관용이 범죄를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겠으나, 피고인의 진심어린 반성과 함께 이러한 피해자의 용서가 가지는 따뜻함이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회원들과 나누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김보람 변호사
●법무법인 평원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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