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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를 넘어선 진심과 감동

김인희 승인 2019.10.01 17:10:44 호수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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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인물 탐방에는 YTN 김선영 앵커를 모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간단하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어느덧 중견앵커라 불리고 있는, 16년 차 뉴스 앵커 김선영입니다. 반갑습니다.


16년 동안 꾸준히 뉴스를 전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시청자분들이 16년 동안 저를 매일 보아서 그런지 친숙하다고, 여동생이나 친구 같다고 말씀하시기도 해요. 저는 앵커라는 말이 무엇인지 잘 몰랐을 때부터 뉴스를 하고 싶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YTN에 들어와 지금까지 쉼 없이 앵커로 지내왔어요. 가끔 16년 동안 무얼 했나 싶기도 한데, 돌이켜보면 ‘2000년대 초중반부터 오늘날까지, 16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이 모두 내 입을 통해 전달되어 왔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돼요.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뉴스를 제가 전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뉴스 전문 채널에서 앵커로 일하는 매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뉴스 앵커는 화려한 외모나 뛰어난 언변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유하자면 컬러TV가 아니라 흑백TV 같아요. 앵커가 너무 화려해도 안 되고 주인공이 되어서도 안 되지만, 저로 인해 뉴스의 격이 떨어지지 않게, 뉴스에 힘을 실어주고 뉴스를 더 빛나게 해 주는 사람이어야 해요. 시청자들의 신뢰가 쌓이면 단순한 팩트를 넘어선 진심과 감동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앵커로서 하나의 길에 집중하게 되는 만큼, 뉴스 보도에 대한 내공이 착실하게 쌓이는 것 같아요.

제가 새벽 뉴스를 하던 때 남극기지에서 온 편지를 받았어요. 그 편지에 ‘아무도 안 보는 시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남극기지에서 정말 잘 보고 있다’고 쓰여 있었어요. 그곳에서는 YTN만 나온다고, 우리의 뉴스가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말이죠. 24시간 뉴스 채널을 하기 때문에 느끼는 보람이라 생각해요.

매일 생방송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YTN은 24시간 뉴스가 진행되기 때문에 뉴스 하나하나가 다 속보가 될 수 있어요. 어느 사무실에 압수수색이 시작되었다거나, 어느 도로에서 추돌사고가 있었다는 소식이 있으면, 앵커에게 전달되는 것은 속보 자막 한 줄뿐일 때가 많아요. 이럴 때 사건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지식을 풀어낼 수 있는 스킬이 있어야 해요. 이후에 추가 소식을 더 알려줄 것인지도 판단해서 진행해야 하죠. 연차가 쌓이면서 이런 내공들도 함께 쌓여가는 것 같아요.

물론 생방송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도 있기는 해요. 4시간씩 생방송을 하다 보면 앵커도 사람인지라 말이 헛나갈 때도 있고, 그것 때문에 마음고생을 할 때도 있어요. 방송을 하다 보면 제 말 한마디가 어떤 사람에게는 천금 같은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치명적인 비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돼요. 그래서 늘 자만하지 말고 절제하고 신중한 언어를 사용하고자 노력해요. 힘들 때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을 해냈을 때 오는 보람이 매우 커요. 특히 생방송은 살아있는 느낌이 있어서 좋아요.


앵커로서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저는 카메라에 빨간불이 켜지면 가장 컨디션이 좋아져요. 아침에 아팠어도 생방송이 시작되면 살아나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피드백은 “재밌게 봤어”라는 말이에요. 지루하고 딱딱한 뉴스가 재미있었다는 건 복잡한 사안을 간결하고 핵심만 잘 전하면서도 쉬웠다는 말이니까요. 이 말을 들으면 앵커로서 일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들게 해서 좋아요.

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사건 사고를 정리해서 전달한다는 점에서 앵커와 변호사 일에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수많은 정보를 잘 정리하고, 잘 전달하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방송을 하면서 패널로 변호사님들을 자주 만나서 친숙하게 느껴져요. 뉴스를 전할 때 법적인 정보나 해설이 필요할 때가 정말 많기 때문에 굉장히 밀접한 일이라고도 생각해요. 요즘 변호사라는 역할이 다양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예전에는 어려운 법률용어를 구사하고 재판에 한정되어 있는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일상생활 속에서 가깝게 접하고 시사 이슈도 쉽게 전해 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방송에서 만나는 변호사님들은 말씀을 정말 잘 하세요. 짧지만 중요한 내용을 쉽게 설명해 주시죠. 제가 생각하는 잘 정리하고 잘 전달하는 노하우는 ‘버리는 것’이에요. 많이 알수록 많이 말하고 싶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중심이 되는 키워드를 잘 추려내는 능력이 중요해요. 내용을 응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응축하려면 버려야 하잖아요. 그래야 말의 효율성과 전달성을 높일 수 있어요.


YTN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나이트>를 오래 진행하셨는데, 어떤 뉴스를 만들고 싶으셨나요.
저는 정치를 재미있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뉴스나이트>를 진행할 때 정리된 원고만 보지 않고 날것 그대로의 자료를 많이 봤어요. 그날 올라온 정치인들의 녹취, 보도되지 않은 사진들, 그런 날것의 재료를 가지고 영상을 구성했어요. 영화음악도 삽입하고, VJ들과 영상도 재미있게 편집하고요. 저는 정치인들이 연예인만큼 주목받고 스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들은 정치인이 희화화될까 우려하기도 하지만, 정치인들이 주목과 관심을 받으면 그만큼 국민들이 감시와 견제를 할 수 있게 되고, 정치인들은 더욱 책임감을 갖게 되겠죠.

아직까지는 대한민국 뉴스가 너무 남성적이라는 생각도 해요. 뉴스는 무거워야 하고, 남성적이어야 하고, 파란색을 써야 하고 이런 관념들이요. 한편에서는 좀 더 따뜻하고, 편안하고, 쉬운 뉴스를 보고 싶을 수 있는데, 이런 요구들은 반영이 안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뉴스를 하면서 이런 부분들을 조금씩 이루어 보고 싶었는데, 이 노력이 나름의 영역을 구축해 주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한계도 느끼게 해 주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저를 두고 중견 앵커라 불러주지만, 스스로는 한계를 느낄 때도 있어요. 대담을 진행할 때 좀 더 많은 이야기, 더 깊은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런 내공이 있는 앵커가 되고 싶죠.


앵커로서 많은 경력을 쌓았는데도 스스로를 계속 돌아보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제가 CNN으로 인턴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때 울프 블리처라는 70대 앵커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그분에게 “이렇게 오랫동안 에너제틱하게 앵커 일을 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저 “study hard”라고 대답하셨어요. 우리는 뉴스를 해야 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책무다. 그 외에 다른 비결은 없다고 말이죠. 그리고 또 인터뷰를 잘 하는 비결이 무엇인지도 여쭤보았어요. “묻고 싶은 질문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답변도 3가지 이상 생각하고 그에 대한 나의 반응까지 생각해 3개 이상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미리 진행시켜 본다”고 하더군요.

울프 블리처의 말씀처럼 공부하고 노력하는 건 경력과 무관하게 주어진 책무인거 같아요. 뉴스 앵커라는 자리는 하루라도 공부를 안 하고 그날의 뉴스들을 확인하지 않으면 뉴스와 대담 진행이 불가능해요. 오래 일하면서 노하우가 생길 수는 있지만 공부를 안 하거나 나태해질 수는 없어요. 1년 차 때보다는 5년 차 때, 5년 차 때보다는 10년 차 때 더 좋은 멘트를 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경력이 쌓일수록 책임감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수많은 인사들을 만나고 인터뷰 해 오셨을 텐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만남이나 장면이 있다면?
인상적인 인터뷰는 굉장히 많죠. 한 가지를 떠올리자면, 가수 남진 선생님과의 인터뷰예요. 그분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그저 어머니가 좋아하는 가수로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인터뷰 시작 전 남진 선생님이 기도를 하고 계시는 걸 보았어요. 다가가서 기도를 왜 하시냐고 여쭈었더니, 오늘도 이렇게 좋은 방송사에서 멋진 앵커와 인터뷰를 하고 대중 앞에 서서 방송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셨다고 해요. 한창때 팬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감사하게 생각하지 못했고, 스케줄이 너무 많으면 힘들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고나니 이런 순간순간 하나가 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아주 작은 스케줄 단 하나라도 시작하기 전 감사의 기도를 한다고 하셨어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뭉클했죠. 저도 저런 삶의 태도를 가지고 나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런 분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진짜 스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인터뷰 내용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영감과 배움의 기회도 되었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실제로 인터뷰로 알게 된 분 중에 멘토나 친구로 지내는 분도 있어요. 처음에는 인터뷰를 할 때 기사를 뽑아내려고, 답변을 받아내려고 했어요. 기사를 만들고 싶어서 질문에 대한 욕심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욕심이 인터뷰 전체를 망치게 하더라고요. 보는 시청자들도 불편하고요. 제가 만나는 사람은 취재 대상인 것뿐만이 아니라 감정이 있는 사람이잖아요.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게 앵커에게 정말 중요한 미덕이었어요. 하나의 질문보다 대화의 흐름과 시간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온전히 빠져드는 인터뷰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진심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었을 때, 교감이 되는 순간 정말 행복하죠. 그러면 그 사람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돼요. 인터뷰에서 가장 빛나는, 서로의 진심이 나오고 교감이 되는 순간이죠.


인간 김선영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저는 SNS를 하지 않아요. 뉴스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부터 재벌까지, 취업에 실패한 청년부터 권력의 정점에 있는 정치인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보잖아요. 그런데 저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알수록 뉴스를 전하는 저의 앵커멘트에 편견이나 왜곡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능한 뉴스에서 보이는 모습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평소에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앵커라 하면 매사에 정확하고 딱딱할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실상은 정말 평범하고 허술해요. 좋은 사람들 만나서 대화하고, 와인을 마시거나 여행 가는 것도 좋아하고요. 책 읽고 전시회도 보러 가죠. 뉴스에서 벗어나 일상을 보내면 그 속에서 영감을 많이 얻어요.

예전에는 일에서 어떤 정점에 이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지금은 인생에서 밸런스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과 일하는 시간의 밸런스, 일로 만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만나는 시간의 밸런스, 함께하는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의 밸런스. 어느 한쪽에 올인하는 삶은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끊임없이 그 밸런스를 유지해 가려고 하는 노력이 중요하고, 밸런스에서 시너지가 나는 삶을 살고 싶어요. <뉴스나이트>를 하면서 이 이상 앵커로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잘 그려지지 않아 막막하기도 했는데, 약간 쉬니까, 마음과 머리에 도화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사막에서 길을 잃었을 때 북극성을 보라”는 거예요.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요. ‘북극성을 보자. 가도 가도 먼 길이겠지만, 북극성을 올려다보고, 앞으로 또 먼 길을 가야 하니까, 내 마음도 좀 들여다보고 좀 쉬기도 하면서 가자’ 라고 말이죠.

저는 두 가지 자아를 다 잘 꾸려나가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이 되는 앵커가 되고 싶고, 한편으로는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 그 사람들과 추억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렵겠지만 잘 해내고 싶어요.

 

김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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