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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슬픈 첫사랑의 감동 서사시-영화 콜드 마운틴

성중탁 승인 2020.01.31 10:15:16 호수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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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마운틴, 우리말로 차가운 산이라는 영화 속 제목은 미국의 한 시골마을 지명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큰 줄거리와 결말까지 암시하는 비장함이 섞여 있는 제목이기도 하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우리에게 알려진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이 영화는 1997년 발표된 찰스 프레지어(Charles Frazier)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소설은 전미 도서상(National Book Award)을 수상한 대작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루 리지(Blue Ridge) 태생인 작가 찰스 프레지어는 그곳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온 남북전쟁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성장했다. 그는 남북전쟁 당시 버지니아주에 있던 병원으로부터 약 300마일(약 482킬로미터)을 걸어서 고향인 노스캐롤라이나에 돌아온 W.P. 인만이란 실존 인물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프레지어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회복될 수 없을 만큼 영혼들이 파괴됐던 화전민 농부, 변경의 미개척지에 활동했던 목사들 등의 보통 사람들에 관해서도 강한 흥미를 느꼈다. 그는 자신들의 삶과 전혀 상관이 없는 위정자들의 명분으로 목숨을 걸어야 했던 병사들의 절망감, 여자들, 어린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의 정신적 황폐, 그들을 절망의 나락으로부터 구해준 수많은 무명 인물들의 무용담에도 흥미를 느끼면서『콜드 마운틴』이란 소설을 써 내려갔다.

소설과 영화 “콜드 마운틴”은 전쟁의 비인간성을 여실히 드러냈지만 대체로 남북전쟁을 그린 미국 영화는 승자인 북군에 기울어져 있는 데 반해 이 영화에서는 전쟁의 참혹성을 그렸기 때문에 전쟁의 승자, 패자에 관한 후대의 이데올로기에는 사로잡히지 않은 특징이 있다.

한편, 소설이 영화로 재탄생하는 데에는 감독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밍겔라 감독은 여지없이 그 역량을 발휘하였다. 맞춤 캐스팅으로 화제가 됐던 영원한 여신 니콜 키드먼, 멋쟁이 신사 주드 로, 르네 젤위거 가운데 최대 수혜자는 뜻밖에도 주드 로다. 사실 주드 로는 이 영화 이후 갈수록 대머리 신사가 되면서 뚜렷한 인상을 주지 못하였던 듯하다. 아무튼 영화 <리플리>에서 주드 로를 지중해의 태양처럼 찍었던 앤서니 밍겔라와 존 실 촬영감독은, 아름다우나 어딘가 왜소함을 떨치지 못했던 주드 로를 콜드 마운틴을 통해 그의 얼굴에서 애잔하면서도 근사한 음영을 발견했다. 반면 니콜 키드먼도 이번 영화 속에서 종래 그녀 특유의 귀족미와 다른 강인함을 주는 인상을 보여주었다. 한편 뜻밖에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루비 역의 르네 젤위거는 방정맞은 선머슴 같은 역을 보여주며 영화 속 활력을 주었다.

영화는 고향과 사랑하는 가족을 찾아가는 인만의 오디세이적 여정과 그를 기다리는 에이다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아름답지만 농사짓기엔 척박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지방의 조용한 시골마을에 새로 부임해 온 목회자와 그 딸 에이다(니콜 키드먼)에게 첫 눈에 반한 조용한 남자 인만(주드 로 분)의 시점에서 일련의 플래시백(flashback : 영화 등에서, 장면의 순간적인 전환을 반복하는 수법. 사건의 긴박감, 감정의 고조(高潮), 과거의 회상 등을 나타내는 데에 씀)을 통해 시작된다.

 그는 새로 부임한 목사의 딸인 에이다를 만나 첫 눈에 반한다. 그녀와 말 한마디 나눌 수 있다면 밭도 갈아주기로 약속할 정도로 강렬하게 반했던 인만은 드디어 이웃 마을 아주머니의 주선으로 사과주스를 목사가 사는 에이다 집에 가져다주면서 인사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되는데 에이다가 자기에게 특별히 할 말 있냐고 묻자 정작 아무런 할 말이 없다고 수줍게 대답하고 돌아선 후 실제로 주선한 아주머니의 밭은 모두 갈아주는 순진한 장면이 연출된다. 그러나, 첫 대면에서 에이다와 인만은 서로 “I don't know you.”라고 말하면서도, 인만이 전쟁에 나간 후 서로가 겪게 되는 기나긴 고난의 시간 동안 그들을 아픔에서부터 견디게 해 주었던 것은 단 하나의 희망이 되었던 서로를 향한 마음과 잊지 못할 첫사랑의 깊은 감정을 끝까지 간직하게 된다.

결국, 그들의 관계가 진전되기 시작할 때, 남과 북의 내전이 시작되고 인만은 전쟁에 참여하라고 강요받는데 미국 남북전쟁 말기인 1864년 피터즈버그 포위 작전을 배경으로 한다. 전쟁 중에 남군 측에 징발되어 전투에 가담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인만은 육군병원으로 옮겨진다. 병원에서 오랜 기간 끔찍하고 파괴적인 전쟁으로 인해 정부에 대해 강한 반감을 품게 된 다른 군인들과 함께 지내며 겨우 회복해 가던 중 에이다에게 고향인 콜드 마운틴으로 돌아오라고 애원하는 1년이 지난 편지(편지 속에는 “전투하고 있다면 전투를 멈추고, 행군하고 있다면 행군을 멈추고 나에게 돌아오라”는 에이다의 간절한 염원이 적혀 있고, 이는 인만의 귓가를 종일 맴돈다)를 받게 된다. 그는 결국 군을 탈영하기로 결심하고 그날 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아주 위험천만한 긴 여정(약 4년)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에이다가 있는 콜드 마운틴으로 돌아가기 위한 인만의 여정은 온갖 위험과 다른 탈영병들과의 예상치 못한 만남 등으로 가득하다.

그는 굶주림, 극심한 날씨, 그리고 탈영병들을 잡아 오라고 보내진 티그(레이 윈스턴 분)가 이끄는 남군 측 지방의용군의 끊임없는 위협을 마주한다. 다만 그 가운데에서도 그는 자신과 같이 전쟁의 공포에 똑같이 영향을 받은 낯선 이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게 되는데 영화 중간중간 인만이 겪게 되는 경험과 도움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갓난 아기와 단둘이 어렵게 살아가는 외로운 과부가 식량을 갈취하러 온 북군에게 고충을 당하자 그녀를 도와주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인만이 탈영병을 쫓는 군인들을 피해, 하룻밤 묵게 된 집에는 전쟁으로 인해 남편을 잃고 아기와 한 젊은 여자만 살고 있었는데 전쟁으로 삶이 피폐해진 이 여자에게 우연히 마주친 인만은 그 어떠한 무언가의 따뜻함과 안정을 찾고 싶은 상대로 다가온다. 여인은 두렵고 힘들기만 한 현실에서 인만이 계속 자신의 옆에 남아있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녀는 결국 인만에게 자신의 옆에 누워만 있어 달라고 부탁하게 되고, 인만은 그녀에게 ‘나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고 말하며 끝까지 에이다를 향한 신념을 지키는 장면은 무척 잔잔한 감동을 준다), 깊은 숲속에서 인디언의 전통을 이어받아 민간 치료 요법으로 그를 상당히 회복하도록 도와준 어느 노파와의 이야기, 교회 목사로 흑인 하인 여성을 범하여 임신을 시켜 쫓겨난 목사와의 짧은 동행 길과 우연히 죽은 소를 통해 고기를 얻는 과정에서 만나 인만을 도와주는 척하며 음식에 약을 타 인만을 남군에 팔아 남기려는 시골 농부와 그 집안 여자들과의 이야기 등 장면 하나하나가 영화의 몰입감을 더해주는 한결같은 명장면들로 이어진다.

 인만의 여정이 계속되는 동안, 에이다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콜드 마운틴에서 절망적이고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매우 궁핍한 삶을 살게 된다. 그녀는 전쟁으로 파괴된 남부의 악화된 조건들 속에서도 살아남은 블랙 코브의 에이다의 농장과 그녀를 돕기로 결정된 루비(르네 젤위거 분)라는 젊은 여인에게 도움을 받는다. 영화는 이렇게 인만의 서사적 여정과 콜드 마운틴의 에이다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 한편 이를 통해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선량한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지,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전쟁터로 가지 않고 남아있는 자들은 남아있는 대로 어떻게 변해가며 힘들게 살아가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다만, 다른 일반 전쟁 영화와는 달리 전쟁터의 참혹함보다는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기다리는 남은 자들의 안타까운 마음과 또 전쟁으로 모든 것이 부족해지고, 무질서해진 냉혹한 현실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들이 어떻게 변하고, 적응해 나가는지를 묘사해 준다. 즉, 귀족 집 딸로 고생 한번 해 보지 않고 곱게 자란 에이다는 목회자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아 크나큰 시련과 현실에 정면으로 부딪치게 된다.

이제껏 아버지, 그리고 풍요로운 삶의 그늘 막에서 편히 살아오던 그녀로서는 그녀를 둘러싼 그 모든 것들이 막막하게만 느껴지지만 인만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쉽게 마을을 떠날 수도 없다. 사람들은 인만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수없이 추파를 던져보지만 그녀는 도무지 인만을 가슴에서 지울 수가 없다. 인만이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 그리고 그를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인만과의 단 한 번의 짧은 첫 키스였지만 무엇보다도 강렬했던 그 기억이 기나긴 배고픔과 슬픈 현실조차 그녀로 하여금 버티게 한다. 그러면서 에이다는 ‘강한 여성’으로 거듭난다. 영화 속에서 흰 드레스 자락을 날리면서 자신의 남자를 해치려는 무리들에게 장총으로 맞서는 니콜 키드먼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마지막 장면에서 탈영병을 찾아다니는 남부 첩보부대 소속으로 영화 속에서 에이다와 인만을 지속적으로 괴롭힌 악의 축 티그와의 결전에서 인만이 티그를 죽이지만 동시에 주인공 인만(주드 로)도 티그의 총에 맞아 어이없이 죽고 만다는 점이다. 인만은 죽음을 맞이하며 에이다에게 “고향인 콜드 마운틴에 이제 돌아왔다”고 말하고, 에이다는 다시 한 번 그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어떤 비평가는 영화 속 인만의 죽음을 두고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애국주의가 여지없이 또 드러난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즉, 아무리 주인공이 선(善)의 화신으로 그려지더라도 탈영을 한 사실은 미국의 가치관으로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인만이 죽은 후 에이다는 당차고 강한 여인으로 변신하여 인만과의 하룻밤 정사를 통해 잉태한 귀여운 여자아이(그레이스 인만)를 순산하고, 전쟁이 끝나자 자신의 땅을 옥토로 일구며 루비(르네 젤위거) 등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가 끝날 무렵 에이다는 독백한다. “난 모든 것에서 당신의 모습을 봅니다. 당신이 날 향해 지금도 오고 있는 것처럼...”

성중탁 교수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성중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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