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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지만, 낯선 일상

박동열 승인 2020.01.31 11:22:01 호수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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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직업이지만, 법정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입니다. 낯익은 세계를 낯선 시선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문학적 수법 중 하나라는데(Victor Shklovsky), 법정은 낯익으면서도 낯섭니다. 집중심리로 일주일에 몇 번이나 동일한 법정에 출석하더라도 문을 열고 들어갈 때의 느낌은 매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자주 보면 익숙해 진다지만, 법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법정에 있으면 저 자신을 돌아볼 때가 많습니다. 교회나 절, 아니면 여행을 가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데, 법정은 매번 그런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런 법정에 자주 출석하는 것은 어쩌면 변호사만이 가질 수 있는 행운입니다.

얼마 전 형사재판에 출석하였을 때입니다. 막 변호사 등록을 마친 것으로 보이는 변호사님이 계셨습니다. 재판장님이나 검사님은 별로 관심이 없는 쟁점인 것 같은데, 미리 작성해 온 A4 2~3장을 토대로 토씨 하나하나까지 읽고 계셨습니다. 충실한 준비를 한 것까지는 좋은데, 안타깝게도 재판장님은 변호사님이 미처 상정하지 못한 사항에 대한 질문을 하셨고, 거의 답변을 못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변호사님의 모습을 본 저는 12년 전 제가 처음 법정에 출석할 때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2008년 2월이었습니다. 변호사 등록이 된 지 며칠 되지 않았던 시점입니다.
파트너변호사님께서 “사실조회 회신이 도달하지 않아 속행이 당연히 예상되니, 기록 볼 필요도 없고 속행만 해 오면 된다”고 하셨고, 속행을 받아야 한다는 일념하에 법정에 출석하였습니다. 1년 차 변호사답게 파트너변호사님 말씀에 너무나 충실히 따랐던 나머지(!) 기록도 대강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파트너변호사님의 말씀과 달리 재판장님께서는 여러 쟁점에 대하여 질문을 하셨고, 속행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던 저로서는 질문에 거의 답변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재판장님께서 “주장 정리를 위해서도 속행이 필요하다”고 하셨으니, 과정은 처참하였지만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저년차 변호사 때에는 우연찮게 불교사건을 많이 담당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찰이 소재한 지방 재판에 많이 출석하였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복병이 있었는데, 바로 사투리였습니다. 재판장님과 상대방 변호사님께서 모두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말씀을 하시니, 상당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증인신문을 할 때면, 난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습니다. 구수한 사투리가 오가는 법정에서, 사투리를 표준어로 번역한 후 이해하고 변론해야 하는 마치 외국에 있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최근에는 대법원 선고법정에 출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사건이거나,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건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대법원에서는 짧은 시간 동안 수십 건의 선고가 연이어 이루어집니다. 길게는 몇 년을 이어오면서 기록만 해도 수십 권인 분쟁이 불과 10여 초 남짓한 시간에 순식간에 종결되는 것을 보면, 가끔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고기각이 되었을 때는 물론이지만, 상고인용이 되었을 때에도 기쁜 마음에 허무한 마음이 공존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법정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12년 전의 저처럼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처구니없게도) 오직 속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출석하는 변호사가 있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투리로 인하여 재판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변호사도 있습니다. 선고결과를 청취하러 온 직원처럼 직업상 특별한 감정 없이 온 사람도 있으며, 법정구속을 염려하며 노심초사 선고 순서만을 기다리는 피고인도 있습니다.

지금 법정에 계시다면 한번 주위를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변호사님을 포함해서 이분들은 어떤 사연으로 울고 웃으며 자신의 재판 순서를 기다릴까요?

박동열 변호사
●더리드 법률사무소

박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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