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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터 산후조리원까지 함께한 소송

최재윤 승인 2020.01.31 11:29:45 호수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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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출산한 지 벌써 4개월여가 지났다. 둘째 임신쯤부터 시작해서 산후조리원 생활까지 이어진 그 힘겹던 형사사건이, 이제는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그는 나와 동갑이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또래들이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준비도 없이 세상에 내던져져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그였다. 채소장사부터 시작해서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일을 닥치는 대로 해 오다가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아내와 딸까지 책임져야 했으니 그가 감당해 온 삶의 무게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지금은 직원 몇 명을 두고 광고대행업을 하고 있다.

임신 사실을 막 확인하고 싱숭생숭하던 차에 그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자신이 광고대행을 하는 업체 대표가 사기죄로 고소당했는데 자신까지 피의자 신분이 되어 조사를 받았고 기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속이 울렁거리는 입덧이 한동안 지속되던 임신 3개월 차, 첫 공판기일에 변호인으로 출석하였다. 그의 입장은 자신은 광고대행만 해 주었을 뿐 업체에서 어떠한 사기행각을 벌였는지 몰랐다는 것이고, 공동피고인인 업체 대표와 직원들은 그 또한 공범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기록 전체를 분석해 보니 그가 사기에 공모하였다는 증거는 찾기 어려웠지만, 신용불량자인 업체 대표의 부탁으로 그의 통장이 사용된 사실이 불리한 점이었다. 이를 증거로 검사와 다른 공동피고인들 모두 그가 자금관리를 담당했다고 몰아갔다. 그의 말인즉슨 업체 대표가 신용불량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통장으로 돈을 받을 수 없으니 그의 통장을 이용하고, 업체 대표의 지시대로 송금해 줄 것을 요청받아 그대로 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중요 고객의 부탁이었기에 거절할 수 없었단다.

불리한 부분이 분명 있지만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무죄를 주장하기 위한 증거들을 수집하고 논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던 중 동일 사실관계에 대한 다른 피해자 사건 2건이 추가 기소되어 병합을 앞두고 있었고, 설상가상 동일 사실관계에 대한 또 다른 피해자 사건 수사 중 검사가 그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배가 제법 불러진 임신 7개월 차, 그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고 밤늦게까지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대비한 서면을 작성했다. 그가 구속되면 그의 가족의 생계뿐만 아니라 광고대행업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직원들도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기에 결과를 앞두고 그도 나도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결과는 다행히도 기각.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배가 뭉쳐왔지만 내 개인적인 일로 의뢰인이 나에게 일을 부탁하거나 연락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수는 없기에 임신 사실을 숨기고 또 숨겼다.

그렇게 임신 8개월 차 무더운 여름, 15kg 이상 늘은 몸으로 뒤뚱뒤뚱 법원에 가 증인신문까지 마쳤다. 임신도 막달이 되어가고, 형사소송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임신 9개월 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건뿐만 아니라 별개로 그가 자신의 중요 고객의 부탁으로 성매매 사이트 관리를 3개월여 해 온 것이 드러나 피의자로 수사를 받던 사건까지 기소되어 도합 6개 사건이 병합되었다.

출산 이틀 전(제왕절개라 이미 수술 날을 잡아놓았던 터), 마지막 공판을 마친 후 그가 말했다. “변호사님,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한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무죄 주장했던 것이 유죄 판결이 나온다면 정말 제가 잘못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고일은 산후조리원에 있는 기간 중으로 잡혔다. 그의 부재로 그의 가족들과 직원들이 힘들어질 것을 알기에, 밤낮 가리지 않는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틈틈이 선고를 대비한 종합의견서를 작성하였다. 기록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내용이 있으면 하나하나 인용하고 기존 내용 또한 정리하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동안의 치열하고 고단했던 생존을 위한 삶 속에서 잘못된 일을 거절하지 못하고 범죄를 저질렀지만 아직 젊은 그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기를 간곡히 요청했다.

선고 날이 되었다. 공소사실 기재 범죄가 6개나 되어 실형 가능성이 높았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자신의 부재를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힘겹게 말해 놓은 터였다. 선고 시간인 오후 2시가 되어 조마조마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는데 아니, 울려야 하는 핸드폰은 안 울리고 수유콜이 울린다. “산모님~ 수유하시겠어요?” 애가 배고프다는데 어쩌랴. 수유실로 가서 갓 태어난 아이와 씨름을 하며 수유를 하고는 방으로 내려왔더니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 5번! 다급하게 전화했더니 그가 받는다. 울먹이며 말한다. “변호사님! 저 징역 사는 줄 알았는데요. 집행유예래요. 너무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다행이에요! 축하해요! 이제는 이런 일 없으셔야 해요! 사실 저 지금 출산하고 산후조리원이에요. 걱정하실까 봐 말 못했었어요.” “(정적 후)네????”

억울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는 분명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이는 가장이자 한 사업체의 대표로서 책임지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는 말한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그런데 죄를 짓고 구속될 위기까지 몰려보니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내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 정말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변호사님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지켜야 할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나부터 알고 이를 행동에 옮기는 것. 나부터 바로 서는 것. 이게 우리 자녀들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주말에 첫째 딸과 키즈카페에 갔다. 장난감 자동차를 타려고 앉은 딸이 갑자기 못 타겠단다. “엄마, 안전벨트가 끊어져서 차를 탈 수가 없어요.” 평소에 안전벨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어느 좌석에 타든 안전벨트를 꼭 매온 엄마, 아빠의 모습에서 배운 것이다. 가르침 이전에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운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성실하고 바르게 삶을 사는 것. 그보다 더 좋은 교육이 있을까?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겠다는 그의 다짐을 응원한다. 그리고 나 또한 내 딸과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이자 한 인간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최재윤 변호사
●법무법인 태일

최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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