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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와인의 심장, 나파밸리에 가다

이옥경 승인 2020.01.31 11:57:15 호수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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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파밸리 전경

지난 여름 우리 부부는 와인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우리 부부에게 와인은 삶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지만 정작 와이너리는 가 본 적이 없는 터였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와인’ 여행이라 하니 두 말 않고 나섰다. 고심 끝에 정한 우리의 행선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나파밸리.

온화한 기후에 파란 하늘과 드넓은 포도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 그림같은 곳이라 들었다. 내가 드디어 나파밸리 와인투어를 떠나다니,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어 왔다.

나파밸리에서 주어진 일정은 단 이틀이었기 때문에 나는 신중히 와이너리를 고르고 방문스케줄을 짰다. 그렇게 고른 첫 행선지는 ‘샤또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 길쭉한 버들가지 모양의 나파밸리에서 깊숙한 안쪽에 위치한 이 와이너리는 ‘샤또’라는 명칭에 걸맞는 작은 성 모양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와이너리 안에는 작은 호수와 오리엔탈풍의 정자로 꾸며진 정원도 있어 와인 외에도 소소한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이 와이너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그 유명한 ‘파리의 심판’ 때문이다. 지금이야 미국, 호주, 칠레 등 신대륙 와인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지만 1970년대만 해도 고급 와인은 프랑스, 이탈리아 등 전통의 유럽 국가에서만 생산되고, 그 외의 국가는 와인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던 때였다.

그러던 1976년 프랑스에서는 최고의 와인을 가리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가 열렸다. 물론 심사위원은 프랑스의 최고 와인 권위자들이었고, 모두 프랑스 와인계에 직·간접적으로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거물들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블라인드로 와인을 마시고 프랑스 와인인지 아닌지부터 평할 정도로 프랑스 와인을 좋은 와인의 기준으로 삼았다. 바로 그 대회에서 세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프랑스 와인들을 누르고 우승한 화이트 와인이 바로 샤또 몬텔레나의 와인이었다. 당시 프랑스를 충격에 빠뜨린 이 사건으로 샤또 몬텔레나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때를 기점으로 나파밸리의 와인이 프리미엄 와인으로 각광받게 된다.

이 이야기는 “와인 미라클”(원제 Bottle Shock)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샤또 몬텔레나의 오너도 원래 직업이 변호사였는데, 그 해의 와인이 모두 상한 줄 알고 와이너리를 포기하고 로펌으로 다시 들어간 날 저 대회에서 1등한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영화에서 로펌을 박차고 나오며 “다시는 여기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며 기뻐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크게 웃었다.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
샤또 몬텔레나 성

성의 왼쪽으로 난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조그만 바가 있었다. 거기서 방문객들은 40불가량을 내고 서너 잔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데, 대회에서 우승하였던 그 유명한 샤도네이부터 여러 품종의 레드 와인까지 고루 맛볼 수 있다. 시음을 돕는 직원들은 경쾌한 말솜씨로 샤또 몬텔레나의 역사부터 자랑스러운 파리의 심판 이야기까지 늘어놓으며 와인을 따라준다. 나파밸리의 몇몇 와이너리는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이 드높아져 가짜 와인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 비싼 와인에는 위조방지 스티커까지 도입하고 있다고 했다. 그 즐거운 분위기와 감탄을 자아내는 맛에 이끌려 나도 한국에서는 좀처럼 구할 수 없는 2000년대 초반 빈티지를 사서 나왔다. 영화에서만 보던 그곳에 왔는데 역시 사지 않을 수 없다.

와이너리마다 정책이 다르지만 보통 3~5시경 문을 닫기 때문에 우리는 걸음을 서둘렀다. 다음 와이너리는 그 유명한 ‘오퍼스 원(Opus One)’이다. 나파밸리의 와이너리는 대부분 예약 없이 언제든지 시음을 할 수 있는데, 오퍼스 원은 사전 예약이 없이는 입장할 수 없는 몇 안 되는 와이너리다. 이번 와인 투어에서 가장 큰 기대를 한 와이너리인 만큼 사전에 예약을 확실히 해 두었다. 와이너리 입구를 통과하자 중앙에 웅장한 현대식 건물이 보이고 양 옆으로 푸르른 포도밭이 펼쳐졌다.

보통 10월 경에 수확을 하기 때문에 9월이었던 당시 이미 포도는 짙게 영글어 있었다. 이게 그 비싼 와인을 만드는 포도라는 거지. 수확기 직전임에도 포도알이 손톱 정도로 작았다. 한참을 포도밭에 서서 포도알을 보고 있으니 와이너리 직원이 웃으면서 먹어도 된다고 하는 게 아닌가.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유명한 와인의 재료는 어떤 맛일지 기대되었다. 조금 큰 블루베리 정도의 크기인 포도알을 입에 넣었는데 예상외로 매우 달고 농축된 맛이 느껴졌다. 물이 많고 과육이 많은 식용의 포도와는 상당히 다른 맛이었다. 여행은 정말 작은 것에도 즐겁다.

오퍼스 원 와이너리

오퍼스 원은 캘리포니아 와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로버트 몬다비와 프랑스의 국보급 와이너리인 샤또 무똥 로칠드가 합작하여 만든 와인으로, 첫 빈티지가 출시될 때부터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와인이다. 이 때문에 오퍼스 원은 그 레이블에 두 가문을 상징하는 두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오퍼스 원은 한국에서 보통 한 병에 50만 원을 호가하고 빈티지에 따라서는 100만 원을 훌쩍 넘어가는 프리미엄 와인이다.

와인 자체가 고급이다 보니 시음비도 나파밸리 다른 와이너리에 비해 현저히 비싼데, 75달러에 3잔을 시음할 수 있었다. 3잔 중 2잔은 빈티지가 다른 오퍼스 원이었는데 나는 2013년과 2015년을 맛볼 수 있었다. 분명히 같은 와인인데 하나는 부드러운 감칠맛이 돌았고 다른 하나는 강인하면서 힘있는 맛이 나서 물어보니, 하나는 매우 척박한 해였고 하나는 풍족한 기후의 해여서 그러한 특징이 와인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같은 땅에서 난 같은 포도로 똑같이 만들어도 그 해의 기후에 따라 맛이 이렇게 다르다니. 과연 와인은 천지인의 산물이라는 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샤또 몬텔레나 와인/
샤또 몬텔레나

시음하는 와인잔을 들고 외부에서 풍경을 감상하며 마실 수도 있는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즐기는 와인 맛이 일품이었다. 높고 파란 캘리포니아의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잘못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파밸리를 가로지르는 세인트-헬레나 도로를 사이에 두고 수없이 많은 와이너리가 빽빽하게 이웃하고 있는데, 와이너리마다 이토록 다른 맛의 와인이 생산된다는 건 실로 신기한 일이다.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밭

나파밸리의 따뜻한 햇살 아래 포도밭 옆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와이너리에 들어가는 일도 참 즐거운 경험이다. 대부분의 와이너리는 상시 오픈되어 있고, 몇몇 와이너리는 와인과 함께 샌드위치와 치즈도 팔고 있어 포도밭을 바라보며 피크닉을 즐길 수도 있다.

그렇게 와이너리를 충분히 즐기고 배가 고파올 즈음에는 나파밸리의 중심부에 위치한 욘트빌로 간다. 나파밸리의 욘트빌은 한집 건너 한집이 미슐랭에 소개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미식의 동네이고, 그중에는 ‘음식을 맛보기 위해 여행을 해도 좋을 레스토랑’이라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도 있다. 나도 인터넷에서 평이 좋은 레스토랑에 들러 모처럼 맛있는 한 끼를 즐길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특별히 좋았던 와인은 빈병을 부엌 선반 위에 모아둔다. 그중 두 병이 지난 나파밸리 여행에서 가져온 것이다. 조심히 들고 와서 아껴놓다 소중한 자리에서 열어 즐겁게 마시다 보면 어느새 나파밸리에서의 추억이 생생해 지고 그 위에 새로운 추억도 쌓인다. 지금도 올려놓은 와인병을 한 병 한 병 바라볼 때에는 그 와인에 쌓인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이번 와인 여행은 나에게 다시금 좋은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것의 소중함을 알려준 여행이었다. 풍요로운 날씨와 멋진 풍광, 맛있는 음식과 와인까지 즐길 수 있는 나파밸리는 완벽한 휴식이었다.

이옥경 변호사

이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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