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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웠어, 페라리

김수현 승인 2020.03.02 15:01:39 호수 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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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스무 살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운전면허를 딴 것이었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너무 좋아했던 나는 면허를 딴 바로 다음 날부터 운전을 시작하였고, 모터쇼에 가서 가지고 싶은 드림카를 볼 때마다 짜릿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렇기에 지인변호사님께서 “페라리 관련 소송인데 해 보시겠어요?”라는 제안을 하셨을 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뜻 수락하였다.

일명 ‘슈퍼카’로 불리는 페라리 같은 차량의 경우 정식 매장에서 신차를 구입하는 것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동차 수리업계에서는 사고로 차량 가액의 약 70%이상 수리비가 나오는 전손차량을 매입한 후, 정식 부품이 아닌 자체적으로 해외에서 발주하여 주문한 부품 등을 이용하여 수리하고, 이를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파는 일이 왕왕 있었다. 내가 맡았던 소송의 의뢰인은 나처럼 차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자주 이용하던 수리업체 사장으로부터 “이번에 전손으로 처리될 예정인 페라리 458이 있는데 남은 차량리스대금이 약 8천만 원이고, 수리비는 우리 가게에서 한 5천만 원 정도 들여서 새 차로 수리해 줄 테니 혹시 인수해 볼 생각이 없냐. 수리 기간은 6개월이면 될 것 같다.”는 제안을 받았다. 신차 가격이 약 3억 5천만 원 하는 차량을 1억 3천만 원만 내면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귀가 솔깃해진 의뢰인은 위 제안을 받아들이고 차량을 수리업체에 맡긴 상태에서 8개월간 남은 리스대금을 꼬박꼬박 지급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의뢰인이 수리업체에 차량 수리가 잘되고 있나 방문하면 차량이 보이지 않았고, 애초에 말했던 수리 기간을 훌쩍 넘겼는데도 수리업체 사장은 이 핑계 저 핑계만 대며 차량을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 화가 난 의뢰인이 “다른 수리업체에 맡길 테니 차량을 달라. 수리비를 정산하자.”고 하자 수리업체 사장은 “차량은 내가 어딘가에 몰래 숨겨두었다. 찾아가려면 알아서 찾아가라.”며 적반하장격인 태도로 일관하였다. 어쩔 수 없이 대금도 완납하고 자동차등록증에 버젓이 차량 소유자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량을 가져오지 못한 의뢰인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당장 동산인도청구소송을 제기함과 동시에 차량인도단행가처분을 신청하고 횡령으로 고소장도 제출하였다. 그러나 가처분 담당 판사님은 차량인도단행가처분은 해줄 수 없으니 점유이전금지가처분으로 신청취지를 변경하라고 하셨고, 차량을 찾아올 수 없는 가처분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었으나 단호한 판사님의 태도에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나와 의뢰인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차량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 온전한 상태로 있는지 여부였다. 의뢰인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페라리 같은 차량은 분해해서 부품만 팔아도 꽤 이득이 되기 때문에 벌써 수리업체 사장이 이런 방식으로 해외로 팔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절도, 강도에 해당하지 않아 차량 수배도 할 수 없었기에 공권력을 통해서 차량의 행방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재판부가 “차량이 어디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수리업체 사장은 “저희 가게에 잘 있다”며 뻔뻔하게 대답하였다. 그러던 중 의뢰인은 갑자기 대전에 있는 경찰서로부터 “페라리 소유자이시냐, 얼마 전에 모처에서 드리프트를 하여 주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한 사실이 있지 않냐.”는 연락을 받았다. 알고 보니 수리업체 사장으로부터 차량을 인도받은 대전에 있는 딜러가 호기심에 차량을 운전하다 운전미숙으로 차량이 계속 공회전을 하였고, 이를 본 시민이 신고한 것이었다. 차량이 대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의뢰인은 탐정이 되어 인터넷을 뒤진 끝에 해당 딜러를 찾아냈다. 그리고 자신이 차량 소유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대전에서 딜러를 만나 “수리업체 사장으로부터 페라리를 사기로 해서 돈을 보내고 차를 받긴 했는데, 이 차량이 소송에 얽혀 있어서 명의 이전이 되질 않는다. 나도 처음 보는 차라 신기해서 운전해보다 갑자기 차가 돌아서 드리프트를 했다.”는 진술을 녹음할 수 있었다.

의뢰인이 차량의 행방을 찾기 위해 애쓰는 동안, 나는 약 90페이지에 달하는 차량감정서와 씨름을 해야 했다. 수리업체 사장이 동산인도청구소송에 대하여 수리비 청구의 반소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수리비에 대한 다툼도 치열하여 감정을 하였고, 감정기일에도 참석하여 차량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으나, 아무리 차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차량 부품에 대한 것을 다 알 수 없었다. 잘못 감정된 수리비를 정정하기 위하여 부산에 있던 차량 전문가인 지인에게 끊임없이 물어보고, 차량수리과정과 부품 관련 유튜브까지 정독한 끝에 감정서의 모순점에 대하여 하나하나 분석하고 반박하는 서면을 제출하였다.

결국 수리업체 사장은 횡령죄로 기소되었고, 감정서 상의 수리비가 아닌 내가 제출한 준비서면상의 금액으로 수리비도 책정되어 1년 반 만에 동산인도청구소송이 전부 인용되었다. 끝까지 차를 안 주려던 수리업체 사장은 형사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될 것 같은 기미가 보이자 차량이 보관된 곳을 알려주었고, 의뢰인은 나에게 차량 인도를 부탁하였다.

아직도 페라리를 마주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그토록 찾던 빨간색 페라리는 먼지가 뒤덮인 채로 경기도 가평 어느 농장의 비닐하우스 안에 있었다. 이런 곳에 페라리가 있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만한 곳이었다. 키를 꽂고 시동을 켠 순간 마치 내 차를 되찾은 것처럼 기뻤다. 이렇게 무사히 차량을 의뢰인에게 인도해 줌으로써 나의 역할은 끝났다. 이 지면을 빌려 차를 찾겠다는 의지로 함께 달려온 의뢰인에게 덕분에 자동차 관련 소송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울러 차를 찾으면 변호사님 원하실 때 빌려드리겠다던 약속도 꼭 지키기를 바란다.

김수현 변호사
●법무법인 승우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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