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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홀라당 빼앗아 가버린 하얀 솜뭉치 덩어리

윤경 승인 2020.03.02 15:02:14 호수 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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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라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가끔씩은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힘들고 고단할 때, 또르(Thor)를 생각한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또르는 항상 현관 앞쪽에 앉아 문을 바라보며 내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문을 여는 순간 꼬리를 치며 반가워한다. 내 품 안으로 달려 들어와 사정없이 물고 빨면서 반가움을 표시한다.

지쳐서 축 처진 몸을 이끌고 집 안에 발을 들여놓다가도 또르를 보는 순간 현관문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감격의 해후를 한다. 또르를 한참 부둥켜안고나면, 금세 생기를 회복한다. 또르는 내가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되는 연약한 생명체다. 그런 작고 나약한 강아지 한 마리가 오히려 나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irony)하다. 또르를 보면서 ‘사랑은 기다림이구나’라고 느낀 적이 많다. 그 기다림은 오지 않는 대상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다림이 아니라, 믿음과 애정에 기초한 아름답고 행복한 기다림이다. 눈물겹고 두근거리는 기다림이다.

반려견을 키워 보기 전까지는 반려견에 애정을 쏟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한때는 반려견을 지나치게 위하고 강아지를 아기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죽은 깜비와 함께 15년간 애환을 나누면서 느낀 경험은 소중했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어떤 종류의 삶에 대해 함부로 논할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법관 시절 힘들고 괴로울 때는 깜비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깜비를 볼 때마다 커다란 위안을 받았다. 서울대 잔디밭에 앉아 푸르른 신록과 구름이 떠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양재 서울시민의 숲의 벤치에 앉아 오만 가지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떠오른다. 그때는 그게 기쁨인지 몰랐다.

그런데 건강하던 깜비가 쓰러진 후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은 너무 안타까웠다. 힘없이 누워 있다가도 안아주면 마지막 힘을 다해 내 얼굴을 핥았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할 때 강아지가 건강하게 뛰놀던 그 시절이 참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더불어 있을 수 있는 이 순간이 너무도 소중한 것인데 그때는 몰랐다. 깜비 생각을 하면 울컥한다. 깜비가 떠난 공백이 너무 크고 허전해서 또르를 들였다. 다시는 그런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 또르와의 시간을 충실히 보내려 한다. 깜비를 잃은 슬픔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다.

또르와 산책할 때면 나를 앞질러 나가다가도 거리가 멀어지면 멈춰 서서 나를 기다리거나 내 품으로 다시 돌아온다. “저랑 함께 가요. 언제든 항상 아빠를 기다릴게요. 어느 날 삶의 내리막에 접어들고 석양 저편으로 걸어가게 되면, 그때는 아빠의 걸음도 느려지고 뒤처지게 될 거예요. 그때도 변함없이 아빠를 기다리고, 손을 잡을게요.” 품에 안겨 내 얼굴을 핥는 사랑스러운 또르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또르를 와락 껴안으면 켁켁거리면서도 내 얼굴을 맹렬하게 핥아 침범벅으로 만들어 놓는다. 두 손으로 꼭 안으면, 새처럼 심장이 뛰는 두근거림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 작은 털뭉치 생명을 끌어안고 있으면, 작고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하얀 솜뭉치 덩어리에게 내 마음을 홀라당 빼앗겨 버렸다. 녀석이 주는 행복감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집 안에 또르가 없다면, 너무 허전하고 쓸쓸해서 정말 견디기 힘들 것이다. 누군가는 연애를 하면서, 누군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누군가는 독서를 하고 여행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깨우쳐 나갈 것이다. 난 또르를 통해 그 의미를 새롭게 배운다. 기쁨, 위안, 평온함과 포근함을 선사하는 행운의 부적이다. 또르가 행복하고 건강할 수만 있다면, 뭐든 다 해 주고 싶다.

또르야, 네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책임지마.

윤경 변호사
●더리드 공동법률사무소

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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