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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억울하지 않으려면”

이호영 승인 2020.03.02 15:22:36 호수 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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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 억울합니다”

재판을 다니다 보면, 앞 사건을 방청할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법정에서 열띤 ‘변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변호사가 아니라, ‘당사자 본인’인 경우가 많지요. 구술심리주의가 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변호사들은 모든 주장을 서면에 담아 이미 제출했기에, 막상 변론기일에는 크게 할 말이 많지 않습니다. 재판부 역시 이미 서면을 읽어 봤기에, 입증의 정도가 부족하거나, 서면에 담긴 주장 내용이 모호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크게 말씀을 많이 하지는 않으시지요. 잘 준비된 재판은 조용하고 신속하게 끝나곤 합니다.

주장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고, 법원은 당사자의 주장 사실, 제출된 증거에 입각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민사재판의 원칙, ‘싸움의 룰’에 대해 의외로 일반 시민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님, 억울합니다”, “판사님은 왜 그것도 모르시나요?”하는 격앙된 말이 오가는 사건은 당사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억울한 판결문을 받아들고, 뒤늦게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싸움의 룰을 잘 모르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은 비단 서초동 재판뿐만이 아닙니다. 여의도 국회의 법안 전장(戰場)이야말로 냉혹한 싸움의 룰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법정싸움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 못하면 억울해지기 십상인 것처럼, 국회에서는 배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본 회의 표결은 4년에 한 번씩 선택받은 자들만 할 수 있으니까요. 변호사 선임이야 수임계약서를 작성하고, 선임료를 내는 간단한 절차를 거치면 된다지만, 의원의 도움은 대체 어떻게 받아야 할까요?

국회의원은 국민 다수로부터 대표권을 위임받은 공인(公人)입니다. 의원은 내 이익뿐 아니라, 다른 이의 사정을 함께 고려합니다.

세무사법 개정안의 부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박종우 회장님과 함께 얼마 전 모 국회의원실을 찾아갔을 때의 대화입니다 .

●서울지방변호사회 임원 :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모든 법률사무를 할 수 있습니다. 특정 분야업무(세무업무)를 못하도록 하는 제도는 없습니다. 변호사로 하여금 특정 세무업무를 못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대한민국에서만 생기고 있는 이상한 제도입니다.

●모 국회의원 : 대한민국에만 있는 제도들… 우리, 되게 많은데요. 의원들은 변호사 편만 들어주지 않습니다. 변호사들과 직역 다툼을 벌이고 있는 쪽 편을 들어주는 것이 오히려 정의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변호사는 강자고 그들은 약자라는 프레임이 잘 먹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변호사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줄 의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심지어 율사 출신 의원들조차도, 언제 이들이 변호사였나 싶은 태도를 보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세무사들은 이 법 통과 안 되면 자기들 다 죽는다고, 수십 명씩 매일같이 의원실에 찾아와서, 울고불고 그래요. 돌아갈 때는 의원실 후원회 가입신청서도 다들 쓰고 가고요. 그런데 변호사들은 아직 먹고 살만하지 않나요? 협회 임원들 말고는 찾아오는 변호사 하나 없던데요?”

국회 법사위 의원실의 한 보좌관이 전한 분위기였습니다. 유사직역사들은 절박해 보이는데, 변호사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고. 그러니 자기들이 누구 편을 들겠냐고.

유사직역과의 다툼. 날로 어려워지는 상황입니다. 변호사협회와 더불어, 우리 회도 직역문제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백방으로 뛰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면목이 없는 상황입니다. 대단히 송구합니다.

20대 국회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21대 국회 입성을 준비하는 변호사들이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들이 국회에 입성한 후에 본인이 변호사 시절에 가졌던 고민을 잊지 않도록, 청년변호사들이 처한 엄혹한 현실을 못 본 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21대 총선에 도전하는 회원들을 상대로, ‘법조유사직역에 대한 후보자의 소신’, ‘기타 사법제도 현안에 대한 정책질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회보 및 홈페이지에 이들의 출마소식과 후원금계좌 등을 알릴 예정입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동료변호사가 출마한다면, 흔쾌히 후원을 하면 좋겠습니다. 21대 국회에 우리 목소리를 경청해 줄 의원이 한 명이라도 더 생긴다면 참 든든한 일이 아닐까요?

ps. 유사직역 문제와 관련한 아이디어나 제언을 기다립니다.
(hy.lee@samyool.com)

 

 

 





2020. 3.
제95대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정책이사 이호영 올림

이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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