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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중아와 양키스

이현곤 승인 2020.04.02 11:32:16 호수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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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문으로 들었소(1980)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에 가면 낮은 야산 언덕 위에 펄벅기념관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펄벅여사는 1967년 유한양행의 창업주인 유일한 씨로부터 유한양행 소사 공장터를 기증받아 이곳에 혼혈아들을 위한 자립원인 ‘소사희망원’을 설립하였다. 함중아와 양키스 멤버들은 모두 이곳 소사희망원 출신들이다. 소사희망원은 더 이상 운영되고 있지 않지만 이곳 고아원 자리에는 펄벅 여사를 위한 기념관이 설립되어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우리나라에는 많은 혼혈아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외모가 눈에 띄고 가슴 아픈 전쟁의 유산물이었기 때문에 박해받고 따돌림 받는 삶을 살았다. 많은 혼혈아들이 연예계로 진출했는데 그 뒤에는 펄벅여사의 도움이 있었다.

함중아를 비롯한 소사희망원 출신의 혼혈아들이 음악을 배우려 신중현을 찾아갔고, 그 문하에서 음악을 배웠다. 이들이 ‘신중현과 골든 그레입스’라는 팀을 조직하였다가, 그 후에 자신들의 음악을 하고자 독립하였는데, 한쪽은 ‘윤수일과 솜사탕’이라는 팀으로, 다른 한쪽은 ‘함중아와 양키스’라는 팀으로 활동을 하였다. 나이트클럽 밤무대를 위주로 활동하였는데, 당시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함중아는 사실 혼혈이 아니었음에도 특이한 외모로인해 소사희망원에 보내졌다고 한다.
 


함중아와 양키스는 ‘내게도 사랑이’, ‘풍문으로 들었소’, ‘안개속의 두 그림자’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지만 1982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이민법 개정안에 서명을 하고, 아시아 혼혈아들의 미국 이민을 받아주게 되자 멤버들 중 절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리는 바람에 결국 해체가 되었다. 차별받는 한국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때 이민을 간 멤버가 한태곤(유대계), 이수한(에티오피아), 신창호(독일)이다. 함중아와 정동권(영국 스코틀랜드계)은 한국에 남아 활동을 계속하였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양키스 멤버들끼리 즉흥적으로 장난삼아 연주를 하다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리듬감이 살아 있고 노래가 반주 위에 얹혀진 것 같은 특이한 느낌의 곡이다. 후에 장기하가 리메이크한 곡이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삽입되어 다시 인기를 끌기도했다. 그리고 이 노래를 제목으로 한 드라마까지 만들어졌다.

함중아 씨는 2019. 11. 1. 세상을 떠났고, 정동권 씨도 2019. 12. 1. 세상을떠나 이제 멤버들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양키스 멤버들은 한국에 남겨진 이방인으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들 세대는 갔지만 지금은 국제결혼을 통한 제2의 다문화 가정의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이들의 자녀들이 더 이상 전세대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현곤 변호사

이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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