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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도 이긴 이야기

임제혁 승인 2020.05.07 15:22:17 호수 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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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마을 사진, 흰색 동그라미 부분인 발전시설입지 예정지역

태양광 발전은 청정에너지의 대명사가 되어 전국 방방곡곡 구석진 곳들까지 생겨났다. 강원도 A군에서도 꽤나 구석진 강원도 찰옥수수 채종단지 또한 태양광 바람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강원도는 D업체에 발전사업허가를 내주었고, D는 땅값이 비교적 저렴했던 A군의 옥수수 채종단지에 있는 둔덕을 찾아 토지를 매입하고 A군으로부터 개발행위허가를 받았다. 그 즈음부터 입지 예정지의 주민들과 D업체 그리고 개발행위허가를 내어준 A군 사이에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입지지역 내 주민들로부터 사건을 의뢰받은 시점은 최초의 개발행위허가의 허가기간을 연장하는 개발행위변경허가처분이 내려지고 관련 당사자들 사이의 대립이 격해지던 시점이었다. 주민들은 발전시설이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부터 불과 50여 미터 앞에 설치되는 데에도 불구하고 A군이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어떠한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고 아쉽게도 주민들이 문제 삼는 부분은 본건 사안에서는 행정청이 법적으로 구속되지 않는 절차들이었다. 소송의 결론은 어쩌면 시작부터 정해져 있었다.

사건을 수임하면서 소송으로는 승산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은 명확히 했다. 그렇지만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해 보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런 약속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희한하게도 이 동네 주민들은 의견이 갈리지 않은 채 주민 모두가 발전시설의 입지를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명의 이탈자 없이 힘을 모으겠다는데, 그 힘을 꼭 법원으로만 가게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사건을 수임하고, 소장을 작성하자마자 보도자료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는 선배를 통해 강원도청에서 B면 C리 주민들의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간단했다. 주민 모두가 A군을 상대로 개발행위변경허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는 것이고, 태양광 발전시설의 설치가 주민들의 생활권과 주민들이 누리는 환경적 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함에도 불구하고 A군이 주민들의 의견청취 내지 협의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에게 개발행위허가를 내어주고 개발행위허가기간이 만료되기 7개월도 전에 이들 사업자들에게 허가기간을 연장하는 처분을 내어주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강원도의 지역 언론들은 모두 이러한 주민들의 마음을 기사화해 주었다. 나름 성공적이었다.

이후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A군이었다. 법리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개발행위변경허가처분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발전시설의 주거시설 등과의 이격거리를 국토교통부가 각 지자체로 하여금 법규적 효력이 있는 조례로 규정하도록 하였고 A군 역시 군계획조례를 입안하면서 적어도 50m보다는 훨씬 먼 곳에 발전시설이 입지하도록 하는 이격거리 규정을 두었다. 그 규정을 조례로 입안할 즈음 발전사업자들은 최초 개발행위허가기간의 만료가 7개월 이상 남았음에도 A군에 허가기간의 연장을 구하였고, A군은 조례 공포 이전에 이들에 대한 연장허가를 내렸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단순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에 해당한다 볼 수는 있어도, 4년마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거쳐야 하는 행정청으로서는 떨어지는 배 하나하나가 소중한 거다.

사건 마을 위성사진

소송과정에서는 문서제출명령 등을 통해 군청에서 열린 군계획심의위원회의 자료를 요구하고, 지방환경청에는 발전시설의 입지관련 지적사항 등의 공개를 요청했다. 소장이 제출되고, 기자회견에 법원을 통한 각종 자료 제출이 요구되자 군청은 주민들에게 그전까지는 하지도 않았던 주민, 사업자 그리고 군청과의 공청회를 제안해 왔다. 주민들은 군청이 공청회를 빌미로 개발행위허가 조건에 명시한(그러나 그때까지도 거치지 않았던) 사업자와 주민들의 협의를 형식적으로 갖추려고 한다면서 공청회에 응하지 않을 태도를 취했다. 급기야는 경찰서 정보과로부터 주민들에게 전화가 가기도 했다. 경찰서 정보과에 어떤 근거로 개입하냐고 하니, 얼버무리고는 다시 연락은 없었다.

지역주민이 똘똘 뭉치니, 행정청에서도 발전시설의 건설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는지, 군의회가 추경예산을 논의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자세히 알아보니 군청이 발전시설이 입지할 지역에 발전시설이 아닌 귀농센터 등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사업시설 추진을 위해 발전사업자들로부터 토지 재매입 등을 타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이 1심은 선고되었다. 원고들의 청구 기각. 패소.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이기는 했지만,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이내 항소를 했다. 주민들도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는 데에는 마음이 조금 급해 보였다.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면서 군청이 조례에 경과조치를 두어 강원도로부터 특정 시점 이전에 발전사업허가를 득한 사업자에 대해서는 조례의 이격거리 규정이 적용되지 않도록 구성하여 결국에는 이 사건 사업자에게만 혜택을 부여한 반면, 국토교통부의 이격거리 규정을 법규적 효력을 갖추도록 하는 취지를 어겨 주민들만 불이익을 보도록 하는 위법한 경과조치에 해당하여 그 위법성에 관한 판단이 요구된다는 주장을 넣었다.

태양광발전소의 난립, 출처 : 한국일보

A군이 이와 같은 항소이유서의 내용에 영향을 받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A군은 1심에서 승소를 했음에도 추경예산 편성을 차질 없이 이어갔고, 추경안이 군의회를 통과하면서 A군은 사업자들로부터 발전시설이 입지하기로 한 토지를 매입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군청 담당자가 항소취하의 의사가 있는지 물어왔다. 주민들은 항소가 아니라 소 자체를 취하하기로 하였다.

소송을 하면서 여러 차례 지역에 내려갔었다. 주변의 현황이 궁금해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도 봤다. 산비탈에 우후죽순 생겨난 중소규모의 태양광 발전시설이 눈에 띄었다. 청정에너지의 취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 주도 사업에 무분별한, 지역과 주민의 의사는 묵살된 이면이 비쳤다. 비록 소송은 졌지만, 주민 모두가 우려하던 발전시설은 물러갔다. 이 지역에는 곧 귀농센터가 지어질 예정이다.

임제혁 변호사
●법무법인 서화

 

임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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