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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주관적인 공포담

정지원 승인 2020.06.01 15:22:18 호수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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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이라는 공간을 떠올려보면, 조용하고 엄숙하며, 근엄하기까지 한 모습이 상상될 것입니다. 저 또한 법정 대기석에서 제 차례를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재판부 앞에서 긴장하는 일개의 7년 차 조무래기 변호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가끔 엄숙한 법정 안에서 상대방 당사자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7년여의 변호사 생활 중 5년 정도를 어느 대기업의 노조원들을 상대로 한 다수의 소송에서 회사 측 대리인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은 당사자 소송이었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거나 감정적인 주장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얼마나 감정적이었던지 일례로 제가 서면에 대법원 판례의 반대해석을 주장하자, 저와 담당 변호사들 모두를 사문서 위조 및 소송 사기죄로 형사 고소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얼마 전,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재판 십분 전에 방청석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유독 법정이 붐비지 않은 터라 드문드문 사람들이 널찍하게 공간을 두고 띄어 앉아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중년의 남성분이 제 바로 옆자리로 와서는 얼굴을 들이밀며 “옆자리에 좀 앉읍시다”하고 너른 좌석을 모두 두고 굳이 제 옆에 밭게 와서 앉았습니다. 조금 이상하다는 낌새를 차리기는 하였지만, 저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한편 제가 당일 진행하였던 소송은 이미 소 제기 후 2년여나 지난 사건이기 때문에 당일 결심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원고는 이미 2년여가 지난 당해 사건에서 돌연 ‘대리인 선임을 위하여’라는 이유로 속행을 구하였고,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 대리인인 저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저는 유사 사건들에서도 동일하게 재판부를 기피신청하거나 변호사 선임을 위한 속행을 구하고, 다시 사임하는 방식 등으로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으므로 원래 약속한 대로 결심하여 주기를 요청드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방청석에서 제 바로 옆에 앉아있던 그 남성이 “재판장님, 속행해 주십시오. 억울한 주장을 다 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3번가량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면서 “법무법인 린 정지원 변호사가...(중략)...”라고 피고석에 있던 저를 가리키며 뭐라 뭐라고 큰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저는 순간 매우 당황하여 그 이후에 어떤 말이 오갔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방청석에서 소란이 날 경우, 법정 경위가 이를 제재하거나 재판장이 소란을 피운 자의 퇴정을 명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당 노조의 조합장이라고 밝힌 그 사람은 소송의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장이 기일 진행 초반에 ‘오늘 결심하겠다’고 말한 것을 번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재판장은 “요즘 모두들 힘들다. 원고도 힘들고, 판사인 나도 힘들다. 사는 것이 모두 다 힘들다”라는 말을 하면서, 원고의 사정을 봐주어 한 기일 더 속행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방청석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낸 조합장은 법정 밖으로 나와 저를 쳐다보면서 씨익 웃었습니다. 의기양양하게 법정 밖에서 원고와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입니다.

저는 그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조합장은 제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전에 이미 제가 누구인지 알면서 자리가 다수 비어있는 한갓진 법정 내에서 굳이 제 옆에 앉으려고 한 것입니다. 불필요하게 “옆자리에 좀 앉겠다”라는 말까지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제 이름도 알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제 회사명, 제 이름까지 밝힌 것이라 느껴졌습니다. 이 경험을 가지고 일종의 ‘위협’이라고 느꼈다면 제가 너무 예민한 것일까요? 실제로 해당 재판이 끝나고 사무실로 복귀하여 경험을 토로하였을 때, 남자 선배변호사님들은 크게 대수롭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하나 더, 제가 수년 전 가사사건에서 유책 배우자인 남성의 대리를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상대방은 수년간 남편의 부정행위로 우울증을 겪다가 소송 도중 자살을 하고 말았는데, 그 여성의 오빠 2명이 법원으로 찾아와 법정 앞 복도에서 기일진행을 기다리고 있던 저와 함께 대기 중이었던 의뢰인을 바로 제 면전에서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저는 당시 놀라기도 놀랐거니와 당시 주변에 법정 경위 등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서 매우 곤란하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경험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보다 강렬하게 위협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혹시 내가 여성변호사라서 그런가? 내가 남성변호사였다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라는 자책 아닌 자책도 하게 됩니다. 실제로 두 번째 사건에서 저는 상대방 오빠들의 의뢰인 폭행을 말리지 못한 것에 대하여 꽤 오래 죄책감을 느꼈었습니다.

본 지면을 빌려 법의 판단을 받는 곳이자, 법의 수호 영역 내인 법정 안팎에서도 여성변호사가 느낄 수 있는 위협들에 대해서 공유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정지원 변호사
●법무법인 린

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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