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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건, 저런 사건

정수경 승인 2021.01.05 13:59:34 호수 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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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변호사가 되고 나는 이곳저곳의 소송구조사건을 맡아서 처리하곤 하였다.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좋고 아직 수임을 잘 못하는 나에게 소송구조사건은 사무실을 유지하는 좋은 도구였다.

정신지체장애인으로 지능이 초등학생 수준인 청년이 있었다. 친구가 1,000원을 줄 테니 핸드폰을 만들자고 해서 이 청년은 자신의 명의로 여기저기 핸드폰을 몇 대 만들어 친구에게 주었다. 문제는 핸드폰 요금이었다. 5년 넘게 발생한 핸드폰 연체요금만 700만 원이 넘었다. 이 청년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이 생활했다. 같은 정신지체장애인인 누나와 미성년자인 조카(심지어 이 아이도 정신지능이 낮았다), 농아자인 어머니가 있었다. 글도 못 읽는 농아자인 어머니가 이 소장을 받아 두었다가 재판이 진행되고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사회복지사가 발을 동동거리면서 상담을 했고 나는 일단 사건을 맡았다.

그러나 이 청년의 친구는 이미 연락이 끊긴 뒤였고, 이 청년의 말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더욱이 경제적으로 극빈가정이었기 때문에 700만 원짜리 판결문이 나오면 이 청년은 돈을 갚을 방법이 없었고, 법정이자가 연 20%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런 판결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변론을 어찌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법정을 향하면서 나는 이런 묘안을 생각해 냈다. 내가 이 사건으로 받는 소송구조금이 당시 100만 원이었다. 내 의뢰인은 판결문이 나오더라도 이 돈을 갚을 가능성이 없었고 원고인 회사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원고인 통신사에 조정의견을 낼 수 있었다. ‘내가 소송구조로 받는 100만 원을 줄 테니 여기서 끝내자고.’ 이런 생각이 들자 뿌듯했다. 이 청년과 청년의 가족이 안전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법정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원고 소송대리인도 회사 측과 이야기하고 답을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판사님이 “잠깐”이라고 했다. 아니, 하셨다. 이 판사님이 우선 확인할 것이 있다고 하셨다. “피고의 대리인은 소멸시효에 대해서 서면을 내시고요, 다음 기일을 잡겠습니다.”라고. 와앗

판사님이 이 모지리 변호사를 위해, 아니 이 불쌍한 청년을 위해 민사소송법의 당사자주의와 변론주의를 집어던지신 것이다. 나는 “예”라고 대답하고 법정에서 나온 후, 핸드폰 요금 사용료는 3년의 소멸시효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청년의 최근 3년치 핸드폰 요금은 1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나는 그 재판 당일에 바로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준비서면을 제출했다.

다음 재판기일 판사님께서는 원고의 소송대리인에게 말했다. “소멸시효 고려하면 소가가 100만 원도 안 되는데 대기업에서 이 소송 계속할 거요?”라고. 원고의 소송대리인은 “이 사건 소를 취하하겠다”라고 했다. 내 의뢰인은 안전해졌다. 그리고 나는 소송구조비 100만 원을 벌었다.

법정을 나오면서 눈물이 났다. ‘하나님, 저 판사님을 축복해 주세요’, ‘아, 이렇게 실력은 없고 마음만 앞서도 되나요’, 그리고 ‘이렇게 좋은 판사님이 있는 법조계에서 누를 끼치지 않는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도 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변호사 시절을 지나 10년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지금은 이 판사님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나 또한 어떤 재판에서, 어떤 자리에서 법조계의 후배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선배가 되고 싶다.

정수경 변호사
●법무법인 지혜로

정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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