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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폴 국제공조수사

유정기 승인 2021.02.08 10:36:51 호수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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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자카르타로 30억이 넘어갔다

아무도 몰랐다. 재택근무를 열 달 넘도록 하게 될 줄은.

처음부터 큰 모니터를 살걸, 곧 끝나겠지 하며 붙잡고 있던 작은 랩톱으로 구글 지도를 확대했다. 사기 피해금액 310만 유로가 엊그제 이탈리아에서 인도네시아로 넘어갔다. 코로나가 한창 창궐하던 작년 초, 아시아에서 서방세계로 넘어간 전염병의 흐름과 함께 범죄 양상도 이동했다.

범죄자들은 늘 기회를 포착했고, 의료장비 부족은 마스크 사기 같은 새로운 유형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홍콩, 태국 등 아시아 권역에서 공조 요청이 많았는데, 갑자기 유럽 국가들 사건이 늘었다. 나라마다 은행마다 다르지만 돈이 넘어간 게 이틀 전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인다. 범죄 자금을 적시에 추적해서 목적지로 향하는 중간에 가로채는 것이 목표다. 부지런히 인도네시아 금융정보분석원에 연락을 취해 본다. 답을 기다리는 동안 이탈리아 재무 경찰 요청사항을 다시 검토한다. 이러한 유형의 공조수사는 수신 국가를 특정하고, 담당 기관과 부서를 알아 보고, 긴급 계좌 정지가 필요한 경우 일단 그러한 제도가 있는지(Provisional Measures), 있다면 어떤 요건하에 가능한지 등을 살펴보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매 사건마다 새롭게 검토하는 수밖에 없다. 절차와 법령이 나라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필요한 자료들과 사실관계가 준비되었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다양한 문화권과 서로 다른 형사사법시스템은 공조수사에서 쉽지 않은 문턱이다.

첩보를 입수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 뒤 이틀 만에 250만 유로를 확보했다. 그 나라에서 권한 있는 사람을 찾고 합당한 절차를 신속히 밟은 것이 핵심이다. 범죄 수익을 우선 확보했으니 수사를 진전시키기 위해 얼마 후 사건 공조 회의를 열었다. 해당국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회의석상에 올리는 게 중요하다. 이탈리아 현지 인터폴과 사건 담당 재무경찰, 주 로마 인도네시아 대사관 그리고 인도네시아 금융정보분석원 각 대표들과 우리 팀 범죄정보관(Criminal Intelligence Officer)들이 모여 앉았다. 미리 검토한 쟁점들을 양 측에 전달했다. 미진한 점에 대해 무엇이 보강되어야 하는지도 함께 교환했다. 수사회의를 마친 그 다음주, 인도네시아 북부 섬에서 용의자 세명을 검거했다.

인터폴은 어디에 있고 무슨 일을 할까

위와 같은 사건 공조 업무가 우리 팀의 주된 일상이다. 하지만 모든 팀이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인터폴에는 약 1,000여 명이 넘는 직원들이 주로 리옹 사무총국(IPSG-General Secretariat)과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단지(IGCI -INTERPOL Global Complex for Innovation)에서 다양한 유형의 범죄에 대응하고 있다. 그중 우리나라 경찰관은 6명이 파견 중이고 저마다 임무와 역할이 다르다.

인터폴 공용어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4종류고, 대부분 다른 국제기구들과 마찬가지로 통상 영어로 소통한다. 생각 외로 언어보다는, 기획이나 직접 수사한 경험 자체가 더 중요한 요소일 때가 많았다. 공조사건을 다루려면 서로 다른 수사 환경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금융범죄팀은 인터폴에서 금융범죄에 대응하는 가장 직접적인 부서다. 5개 대륙 13개국에서 온 15명의 동료들이 함께 일한다. 회원국과 9개 언어로 소통이 가능하고 자금세탁 수사 실무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업무로는 위 사례와 같은 공조수사, 기타 다른 국제기구들과의 협업, 국제회의 기획 및 발제 등을 맡는다. 리옹과 싱가포르에 각 사무실을 두고 시차 없는 대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금세탁 범죄 특성상 전제되는 기본 범죄(Predicate offence)가 되는 여러 분야의 부서와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 부패(Corruption), 마약(Drugs), 사이버범죄(Cybercrime) 등 내부 부서뿐만 아니라 다른 국제기구들과 협력 역시 필수적이다. 유로폴(Europol), 바젤위원회(Basel Institute on Governance), 에그몽그룹(Egmont Group, 세계 금융정보분석원 연합체), 자금세탁방지기구(FATF, Financial Action Task Force), 유엔마약부패사무소(UNODC),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등이 주요 파트너다. 가령 자금세탁방지기구는 2019년 ‘가상자산’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권고안을 제시했고(Recommendation15, 16 – 이른바 ‘Travel rule’), 이는 우리나라에서 최근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반영되었다(약칭, 특정금융정보법).

인터폴은 위 권고안을 회원국과 공유하고, 서로 다른 규제 환경을 설명하며, 관련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조율하는 데에 위와 같은 네트워크를 활용하기도 한다. 국제기구마다 공동의 목표를 갖더라도 세부적인 방법론의 틈을 메우려면 저마다의 전문성과 경험을 한데 모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굉장히 잦은 출장이 연이어졌다.

스위스 이베르동레뱅(Yverdon-les-Bains), <인공지능과 사기범죄 콘퍼런스> 인터폴 기조 발제 중(좌)
중국 충칭, 인터폴 금융범죄팀 - 중국 공안 공동 주최,<초국가 금융범죄 대응 37개국 회의>(우)


출장이 일상, 특기는 화상회의 

첫해 비행기 표를 세어 보니 서른 장이 넘었다. 일단 출장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고 또 발제를 이리 많이 하게 될 줄 몰랐다. 해외여행으로는 보통 염두에 두지 않을 만한 곳들을 다녔고 꿈꾸던 삶은 맞는데 생각보다 조금 피폐했다. 그 당연했던 일상들이 이제는 공항에도 쉽게 갈 수 없게 됐지만, 재택근무와 화상회의로도 충분히 더 많이 일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 번은 서른 시간 넘게 비행기를 갈아타 가며 중남미에 위치한 도미니카 공화국에 갔다. 대서양을 면한 카리브 바다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3일간 도미니카 경찰, 검찰, 금융정보분석원 관계자들과 함께 해외로 범죄 자금이 흘러가는 이메일 무역사기(Business Email Compromise) 범죄 대응방안을 토의했다. 이러한 유형은 그야말로 속도가 생명이다. 계좌 송금이 일어난 순간부터 영화 <캐치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을 연상시키는 추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미니카에서는 주로 공조 요청 절차를 신속하게 만드는 제도 개선에 방점을 두었다. 회원국 내부에서 재빨리 사건을 보내면 사무총국에서 곧바로 대응이 이뤄지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가령 기존에 3일이 걸리던 것을 하루 만에 사무총국에서 알 수 있다면 그만큼 대응도 빨라진다. 토의 방법은 먼저 회원국의 설명을 듣고, 인터폴 측에서 사례나 의견을 제시한 뒤, 토론을 거쳐 현지 사정을 반영하는 권고안으로 정리를 하는 식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적정한 ‘진단’을 내어 놓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우리의 시각에서 합리적인 대안이더라도 저마다의 사법환경에서 얼마나 수용되는지는 그다음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형사사법 절차가 전자화되어 있지 않거나, 일선 수사부서에서 공조수사를 요청하는 실무적인 절차와 지침이 정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늦는 만큼 범죄 대응력은 약화된다. 이럴 때 빨리빨리 강국 출신인 나로서는 이만저만 답답할 때가 많다.

보다 통상적인 출장은 국제회의에 초청되어 발표하는 경우다. 자카르타 에그몽그룹 회의, 마닐라 금융정보 분석 콘퍼런스, 서울 불법도박 자금세탁 콘퍼런스, 스위스 인공지능과 사기 콘퍼런스, 남아프리카 코로나19 경제범죄 동향, 유럽평의회 가상 자산 자금세탁 회의 등 다양한 금융범죄 관련 국제행사에 초청된다. 이 경우 준비에 대한 부담은 크지만, 간혹 국제행사에서 고국 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태연한 척해도 속으론 벌써 몇 번이나 손을 마주잡고 싶을 정도로 반가웠다. 그뿐만 아니라 상해 임시정부, 충칭 임시정부, 헤이그 이준 열사 박물관(Yijun Peace Museum) 등 출장지에 따라 뜻깊은 장소를 방문할 수도 있었다. 백여 년 전 만국박람회장, 입장이 거부된 도시의 한 박물관에서 초청국 목록에 “Corée”를 발견했을 때, 열사의 마음을 조용히 되새겨 보기도 했다.

2020년은 이 모든 행사들이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처음에는 이게 잘 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효율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더 풍부한 교류도 가능했다. 출장 시간이나 예산, 수용인원 등 물리적 한계를 넘으니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목표치가 더 확대되기도 했다. 사건 공조 역시 화상회의를 활용하면서 더욱 활성화되었다. 그래도 마주 잡은 두 손의 온기가 그리운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는 오랫 동안 준비해 온 가상자산 자금세탁 콘퍼런스를 불가피하게 화상 행사로 전환하기도 했고, 보이스피싱 주요 기획수사를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며 추진하기도 한다. 그렇게 또 우리는 적응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위기, 전화금융사기 

“당신의 계좌가 범행에 이용되었습니다. 안전 계좌로 돈을 이체해 두어야 합니다. 일시적으로 신용을 낮추어야 합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위험하니 돈을 받을 수 있도록 저희 직원을 그리로 보내겠습니다. 절대 경찰에 신고하시면 안 됩니다…. ”

전화금융사기, 흔히 보이스피싱은 그 단어만으로도 수많은 사연들이 먹먹하다. 또 막막하다. 시대가 변하며 범죄는 생성, 발전, 소멸을 거듭한다. 주거 침입이나 납치 형태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반면, 우리는 정보와 보안에 취약한 시대에 살게 되었다. 그중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각종 수법으로 사람을 속이는 범죄가 횡행한다. 특히 여러 사람과 계좌를 거쳐 종국적으로 범죄 수익이 해외로 넘어가게 된다면 문제의 해결은 더욱 난망하다. 수사하는 입장에서도 쉽게 성공을 장담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범죄피해를 두고 볼 수는 없다. 언제고 그래왔듯 우리는 방법을 찾고 있고, 이기는 중에 있다고 믿는다. 인터폴의 비전 구호는 “안전한 세상을 위하여 경찰을 잇는다(Connecting police for a safer world)”이다. 이 순간에도 인터폴 작전으로 회원국 경찰관들은 협력하고 있다. 주요 사건 해결을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각별히 조심하여 주실 것을 당부드리고 싶다. 수사기관은 결코 돈을 이체하거나 인출, 전달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제4회 가상자산 자금세탁 콘퍼런스, 인터폴 금융범죄팀 - 유로폴 - 바젤위원회 협의체 공동개최


앞으로 ‘뜨는’ 범죄는? 가상자산 자금세탁
(Virtual Assets based Money Laundering)

지금까지 금융 경제범죄 수사는 전통적으로 계좌추적을 기반으로 해 왔다. 계좌 내역을 분석하고 자금 흐름을 따라가서 계좌의 주인에게 그 인과를 따지는 것이다. 현재 이뤄지는 국제공조수사도 다른 나라에 있는 은행과 협력하여 범죄자금 이동에 사용된 계좌를 부정계좌로 등록하는 식으로 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다음에 관할국에서 추적과 신문이 뒤따른다. 그런데 계좌를 압수하거나 추적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 또는 계좌주 자체를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수사를 진행해야 할까. 이미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가상자산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Virtual Assets, 과거 가상화폐, 암호화폐, 가상통화 등 여러 용어로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자금세탁방지기구 권고안에 따라 가상자산으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반영하여 개정 특금법에도 ‘가상자산’으로 명명되었다).

가상자산에 대한 가치판단은 차치하고, 범죄 관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크게 두 가지 방식이다. 기술 그 자체에 대한 부분과 제도권으로 포섭하는 부분이다. 특히 법률가들에게는 후자가 유의미하다. 가상자산 규제에 관하여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권고안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 그간 각 나라 입법 경향이었다. 거기서 기존 은행에 대한 규제의 정도에 준하여 가상자산 거래소(VASP, Virtual Assets Service Providers) 운영자에게 고객확인의무(KYC, Know Your Customer)나 의심거래보고(STR, Suspicious Transaction Report)를 부과하는 것까지 나아갈지 여부를 입법자들이 결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권고안을 수용하여 상대적으로 선제적인 입법 환경을 정비하였다고 평가된다.

입법은 수사에 직결된다. 이 분야에서 가장 엄격한 규제정책을 펼치는 곳은 미국이다. 이미 금융기관의 하나로 간주할 정도로 가상자산 거래소 운영에 관하여 다양한 의무 부과 규정을 두고 있다. 자연스럽게 가상자산을 이용한 자금세탁 수사 사례도 축적되고 있다.

인터폴은 유로폴, 바젤위원회와 함께 위와 같은 가상자산 이용 금융범죄에 대응하고자 3자 협의체를 발족했다. 그리고 매년 콘퍼런스를 열어 학계, 사기업 그리고 수사기관이 한자리에 모여 대응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세 기구가 매년 순번을 돌며 행사를 주최하는데, 마침 이번이 인터폴 차례였다. 2019년 첫해엔 헤이그 유로폴 본부에 가서 참여만 했는데, 2020년에는 담당이 되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처음으로 온라인 행사로 치러졌다. 양일간 132개국에서 2,000여 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모였다. 참석 신청자 면면을 보니 이 분야에 대응하는 거의 모든 부서의 대표들이 모인 듯했다. 직접 엄선한 25명의 발표자들이 이틀 동안 가상자산 자금세탁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공유했다. 제도권으로 포섭하는 부분에서는 입법 현황과 수사 사례를 발표하고, 기술 그 자체에 대한 부분으로는 다크 코인 추적과 가상자산 추적 도구 등을 소개했다. 이를 통해 기존 전통적인 금융범죄 수사 방식의 과정 하나하나에 새로운 분야를 대입해서 해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 목표다.


맺으며 

인터폴이라는 다소 생경한 조직에 대해 경험을 공유해 보았다. 사실 금융범죄팀 자체도 이번에 우리나라 경찰에서 처음으로 진출한 보직이다. 그만큼 국제공조수사는 진행형이고 발전형이다. 앞으로 초국가 범죄, 국경이 무의미해지는 범죄 유형은 심화되거나 어쩌면 거의 대부분이 될지도 모른다. 또는 법제 정비가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출몰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또 계속 대응하리라는 점이다. 수사기관이든 입법기관, 변호인 또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회원님들께 마음을 다해 응원을 전하고 싶다.

 

유정기 변호사 약력
● 국제형사경찰기구 인터폴(ICPO - International Criminal Police Organization) 파견 중
● 리옹 사무총국 금융범죄팀 소속(Financial Crimes Unit), 근무지 싱가포르
● 15년 차 경찰관. 경제팀, 국제범죄수사대, 사이버수사팀, 경찰청 수사국 등 근무
● 파견 전 우리나라 인터폴 국가중앙사무국(National Central Bureau) 합류(현 외사국 인터폴국제공조과), 제87차 인터폴 두바이 총회 법률지원(현 김종양 총재 당선)

유정기 변호사

유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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