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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공룡능선의 추억이여!

조성훈 승인 2021.03.02 14:30:30 호수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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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체육시설 이용이 제한되어 운동마니아들이 곤란을 겪고 있는 것 같다.따라서 경제적인 면에서나 장소적인 면에서 부담이 적고, 자연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산행이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나도 산이 좋아, 지리산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등산 애호가들이 도전하고 즐기는 속칭 100대 명산(산림청, 블랙야크, 한국의 산하 등 세 기관에서 각각 선정한 것이 있는데, 중복되는 것 빼고 총 130개 정도)을 오르는 계획을 세워 3년에 걸쳐 마무리했다. 이 중에서도 여러 산행 중 무모한 실행으로 곤욕을 치렀지만, 설악산 공룡능선을 무박 2일로 오르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공룡능선은 설악산 마등령에서 희운각 대피소 앞 신선암까지 약 5.1km 능선으로, 공룡의 등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곳으로, 설악산의 대표적인 난코스이고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보통 설악산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등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도 5월 말쯤 날씨 좋은 날을 기다려 공룡능선 주변인 중청, 소청, 희운각 대피소를 예약하려고 했는데, 희망자가 너무 많아서인지 도저히 예약을 할 수가 없었다. 이후, 포기할까 하다가 무슨 만용이 발동했는지 무박 산행을 도전하기로 하고 계획을 세웠다.

2018년 5월 25일(토)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속초로 가는 심야 마지막 고속버스를 올라타고 출발했다. 다음날 새벽 1시쯤 속초터미널에 도착, 설악산 소공원에 이르니 출입문을 아직 개방하지 않아서 몇몇 등산객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출입문은 2시부터 개방).

2시가 되자 사찰측에서 입장료를 받으며(우리나라 유명한 산은 꼭 사찰이 있어서 대문을 지키고 돈을 받으니 조금은 불만이다) 문을 열어 줘서, 헤드랜턴을 켜고 마등령으로 오르기 위해 비선대로 향했다.

같이 모여있던 사람들은 날이 밝으면 출발하려고 하는지 소공원 안쪽 휴게소로 다 들어가 버리고 비선대로 향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는 약 3km 정도로 평탄한 산책로 수준이었는데, 혼자 가려니 약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나이에 귀신 생각도 나고).

빠른 걸음으로 가니 비선대에 새벽 3시가 안 돼서 도착했다.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올라야 하는데, 여기는 새벽 3시에 정식으로 문을 개방하는 곳이다. 공원 관리인이 불안한 표정으로 “혼자 오셨어요?”라고 묻더니, 개방시간이 좀 이르긴 하지만 그냥 올라가라고 해서 그 가파른 마등령으로 향했다.

나는 산을 주로 혼자 가는 것을 선호한다. 평상시 못한 사색도 하고, 무엇보다도 산행 걸음걸이를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혼자하는 산행을 즐기는 큰 이유이다. 물론 안전사고 발생 시 위험하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혼자 가도 주변에 산행하는 이들이 항시 있고,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서로 도움을 받을 수 있어 큰 위험은 없다. 가끔은 서로 간식도 주고받는 것을 보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음도 넓다.

비선대에서 마등령은 3.5km 정도로 그야말로 계속 오르막인 험난한 코스였다. 헤드랜턴은 켰지만 등산로만 간신히 보이는 수준으로 앞만 보고 계속 올랐다. 중간쯤 가다가 앉아서 사과 한 개를 먹으면서 먼 하늘의 별을 세고 있는데, 등산객 한 사람이 올라왔다. 이 사람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르다 보니, 같이 오르는 사람이 있어서인지 덜 외롭고 덜 무섭게 느껴졌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하니 먼동이 트고 하늘이 밝아왔다. 마등령 입구에서 여명에 모습을 드러낸 공룡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좋다. 아주 멋져!

마등령 삼거리에서 준비해 온 김밥 한 줄을 꺼내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본격적인 공룡능선 탐사에 나섰다. 저 멀리 세존봉이 운무에 뾰족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같이 오르던 등산객은 마등령에서 백담사 쪽으로 가는 것 같아서 헤어지고 혼자 공룡능선으로 들어섰다. 오르락 내리락, 나한봉, 큰새봉, 1275봉, 신선봉까지 암봉들이 이어졌다. 풍화작용이 남긴 암봉들이 변화 무쌍한 날씨와 어우러져 운무에 가려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있지만 그림같이 멋진 풍광이었다. 공룡능선 막바지 신선암 부근 고개에 길게 쓰러져 있는 고목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래 희운각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에 공룡능선을 벌써 내려오는 나를 보고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공룡능선을 마치고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하니 아침 8시경이었다. 여기서 아침으로 김밥 한 줄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나머지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 내로 집에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이어서 소청봉 오르막길, 다음 중청봉, 그리고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을 거쳐 오색까지 가야 한다. 서서히 힘이 달리기 시작했다. 소청봉까지 약 1.5km는 오르막길이라 엄청 힘들었다. 간신히 소청봉을 거쳐 중청봉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 후 대청봉 꼭대기에 올라, 지나온 공룡능선을 바라보니 과연 공룡등껍질 같았다. 내가 저 능선을 넘어왔다니!

이제 남은 오색분소까지 내리막길 5km, 설악산 대청봉까지 최단기 코스라 거리는 가깝지만 가파른 구간이다. 정말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땅을 걷고 있는 건지 허공을 밟고 있는 건지 발의 감각이 무뎌졌다. 힘들어서 중간쯤 와서 의자에 벌렁 누워버렸다.

다시 기력을 회복해서 오색 상가촌에 이르니, 온몸이 기진맥진 상태가 됐고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 배도 고팠고, 만사가 귀찮았다. 내가 왜 이리 무모한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제일 가까운 음식점에 들어가자마자 방에 드러누워 버렸다. 잠도 안 자고 20여 km를 걸었으니 당연했다.

식당 아주머니가 나의 몰골을 보더니, “아직 밥도 못 드셨어요?”, “아저씨, 뭐 하러 돈은 버세요?...”라며 한심한 투로 말했다. 더 말을 잇지는 않았지만, 아마,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보아하니 멀쩡하게 생긴 사람 같은데, 늦게까지 밥도 못 먹고 무슨 생고생이나? 이 멍청아!’ 하는 말을 하고 싶었을 거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왜 사냐건 웃지요”하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대답할 힘도 없고 귀찮아서 “빨리 밥이나 줘요” 하고 큰 대자로 뻗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무모한 산행이었지만, 앞으로는 더 여유를 갖고 체력을 안배해서 천천히 천천히 한 번 더 가보고 싶다. 그곳, 공룡의 품으로!
 


생각해 보면 등산은 우리 인생살이와 많이 흡사하다. 산에 오를 때는 정상에 빨리 가야 한다는 욕심에 오로지 앞만 보고 계속 전진만 한다. 주위 풍광은 안중에도 없다. 물론 정상에 오르면 땀을 식혀주는 바람의 시원함을 느끼며 성취감을 맛보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면서 여유가 생기면 주위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또 등산은 내려갈 때 조심해야 한다. 하산할 때 자칫 방심하는 순간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우리도 인생 내리막 길에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처럼.

어느 시인이 말 했던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조성훈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조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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