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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비판, 그보다 의뢰인

이종호 승인 2021.04.01 14:27:48 호수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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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업무의 모든 점이 배움의 연속이지만 특히 의뢰인에 대한 믿음의 정도와 관련한 부분이 저에게는 고민입니다. 의뢰인을 대리하는 입장이라는 점에서는 의뢰인을 믿고 의뢰인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대변하여야 하겠지만, 실체적 진실을 외면할 수 없고 혹시 의뢰인 주장이 사실이 아닐 경우 발생할 문제를 대리인이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의뢰인을 대하는 것이 의뢰인이나 대리인인 저에게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지 늘 고민하게 됩니다.

형사사건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기사건에서는 의뢰인을 더 경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사건이 진행되다 보면 오히려 반대로 가해자이거나 공범인 경우도 많아, 의뢰인의 말이나 의뢰인이 전해 주는 자료만을 전적으로 믿고 고소 등을 진행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들을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의뢰인의 말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의심해 보자고 생각해 왔던 제게 2020년 늦봄 찾아온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의 의뢰인은 몇 년 동안 알고 지냈던 A의 말과 A가 직접 보여주는 물건을 믿고, 지인들에게 A를 소개하며 지인들의 돈을 빌려 A에게 대여를 해 주고, 높은 이율의 이자와 원금을 짧은 기간에 돌려받아 지인들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A는 1년 넘게 꾸준히 그와 같은 거래를 문제없이 해 왔고, 여느 돌려막기 사기사건처럼 대여금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커져 최종적으로 편취액이 수백억 대인 사기사건이 되었습니다.

의뢰인은 본인의 돈을 빌려준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지인들의 돈을 본인의 통장으로 받아 A에게 돈을 전달해 줬기 때문에 공범으로 판단 받을 수도 있던 상황으로 보였습니다.

수사기관에 본인이 작성한 고소장을 제출하려 하였으나, 복잡한 사건이어서 정리를 한 뒤 고소장을 제출하기를 바라는 의견을 받고 저희 사무실을 찾아온 의뢰인을 상담하면서, 저는 처음부터 의심하며 의뢰인의 말을 들었습니다. 어쩌면 의뢰인의 말을 하나도 믿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상담하는 동안 모순되는 말을 하거나 자주 말을 바꾸기도 하였으며, 제가 묻는 말마다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숨기려고만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본인은 얻은 수익이 없으며, 지인들에게 돈을 벌게 해 주고 싶은 선한 마음으로 하던 일이 이렇게 큰 사기사건이 될 줄은 몰랐다는 의뢰인의 말은 더욱 변명으로만 느껴졌습니다.

고소장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의뢰인의 말은 새롭게 변경되었으며, 그로 인해서 고소장 작성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수정된 부분도 많았습니다. 의뢰인의 말을 제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고소보다는 의뢰인이 다른 피해자에게 고소를 당했을 때 대응하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고 판단하여, 의뢰인에게 우리가 피의자가 되어 조사를 받을 때를 대비하여 준비해야 할 것을 더 많이 설명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소인 진술 등 수사가 진행되면서 점차 의뢰인의 말이 왜 자주 바뀌었는지, 처음에는 왜 명확하게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의뢰인이 지인들에게 소개시켜 준 A가 실제로는 사기꾼이었고, 본인으로 인하여 지인들이 수십억의 돈을 잃게 되자 그 충격을 감당하기가 어려웠고, 그로 인해 그 당시에 수면제를 복용하면서도 잠을 잘 수 없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의뢰인이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했던 행동들을 저는 의심스러운 행동들이라고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특히 의뢰인이 피의자로 수사를 받은 사건에서 수사기관으로부터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뒤에는 더욱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의뢰인은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며 평소에는 ‘똑 부러지다’는 말을 많이 들을 정도로 사람과의 소통도 잘하는 성격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하여 고소를 할 당시에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그로 인해 변호사인 저와의 소통도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나중에는 그런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의뢰인은 처음부터 진실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당시 상황만을 보고 선입견을 가진 상태에서 의뢰인을 대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연락할 때마다 항상 고맙다는 말을 해 주는 그 의뢰인을 보면 의뢰인을 믿지 않았었던 처음의 그 상황이 미안하고, 그 당시 의뢰인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저를 반성하게 되며, 처음부터 의뢰인을 믿었다면 사건을 더 쉽게 진행하고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새롭게 만나는 의뢰인들을 대할 때마다 저의 시선이 아닌 의뢰인의 시선에서 그 상황을, 그 사건을 한번 더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한, 단순히 일반적인 상황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의뢰인에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기로 한 것입니다.

앞으로 만날 의뢰인들의 말을 비판적으로 듣기 전에, 의뢰인들의 상황을 고려하고 이해하는 변호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종호 변호사
● 법무법인 디딤돌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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