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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규 선임헌법연구관 인터뷰

황귀빈 승인 2021.04.01 16:10:06 호수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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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회보 인기 코너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구관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90학번으로 법학을 전공하고, 1997년 제39회 사법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하고, 2000년 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검사로 재직했습니다. 2011년 2월부터는 현재까지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연구관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4년 7월부터 2017년 3월까지는 국회 파견근무를 한 적 있고, 현재 헌법연구관 신분으로 헌법재판연구원 교육팀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Q. 헌법재판연구원은 어떤 곳이고, 교육팀장님으로서 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헌법재판연구원은 헌법재판소 산하 기관으로 올해로 설립 10년째를 맞이했습니다. 크게 세 가지로 설명이 가능한데, ① 헌법 및 헌법재판 제도에 대한 중장기적 · 체계적 연구, ② 헌법적 쟁점에 대한 선행적 연구, ③ 헌법 및 헌법재판제도 등에 대한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곳입니다. 헌법재판소에 자체 훈련 교육기관을 두는 대신 헌법재판연구원이 교육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연구원 업무는 연구 분야와 교육 분야로 나뉘는데, 연구 분야는 제도연구팀, 기본권연구팀, 비교헌법연구팀으로 구성되고, 교육 분야는 교육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교육팀의 팀장으로서 원장님과 연구교수부장님을 모시고 교육 부분의 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교육 부분은 기본적으로 우리 재판소 직원이 대상이고, 나아가 공무원 헌법교육 및 교원연수, 로스쿨 실무수습 및 실무연수, 법률전문가로 군법무관, 국선대리인, 국가송무 담당 공익법무관 등 연수, 대학생 헌법 교육, 중 · 고등학교 헌법(헌법재판) 방문 강의, 해외 헌법재판기관 초청 연수 등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헌법 및 헌법재판의 외부 교육 수요는 정말 매우 많습니다. 헌법재판연구원의 정원이 원장을 포함하여 총 직원 40명으로 헌법재판소법에 직접 규정되어 있고 설립 후 10년 동안 변화가 없었는데 헌법재판연구원의 현재 기능에 비추어 변화를 기대해 봅니다.

Q. 처음 법조인이 되셔서 연수원에 들어가실 때 어떤 마음가짐이셨는지요? 

90학번으로 1998년에 연수원에 입소했습니다. 재학 중 사법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졸업 후 군 복무를 마친 후 바로 취업을 하려다가 당시 심정은 딱 한 번만 더 시험을 보고 그 결과에 따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시험에 합격하였고, 어머니와 함께 성당을 비교적 충실하게 다녔었는데, 당시 너무 감사한 마음이고 성당에서 배운 바를 실천하는 법조인이 되자는 마음을 먹고 연수원에 들어간 기억이 있습니다.

Q. 2000년 의정부지청 검사로 법조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으셨습니다. 검찰을 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아버지께서 늦은 나이(50세)에 저를 보셨습니다. 91년 대학 2학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지요. 아버지께서는 일반 시민의 소박한 입장에서 법조인에 대한 우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법률가들이 최고의 인격자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아버지로부터 ‘검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검찰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Q. 검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검찰에서는 형사부에서만 11년을 근무했습니다. 범죄피해자지원제도 시행 초기부터 범죄피해자지원 전담검사를 맡아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은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무고죄로 구속기소 되었다가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된 분이 다시 같은 내용으로 고소한 사건도 기억이 나네요. 무혐의 처리를 하였을 때 고소인이 검사실에 찾아와 드러눕고 저와 제 가족을 저주하는 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고소인 아들에게 모시고 가라고 전화해서 고소인 아들이 모시고 갔는데, 얼마 후 고소인이 다시 검사실에 찾아와서 “이전에 욕한 것은 자신이 잘못한 것 같다”고 하며 검사님 결정도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또 구속 송치사건들 중 피의자가 대학생 때부터 대체의료 분야에 관심을 갖고 소위 기공침 분야를 연구하여 찾아오는 분들에게 시술을 해 준 사건이 기억이 납니다. 피의자를 찾아오신 분들은 비치된 함에 알아서 돈을 넣고 갔던 사건이었죠. 결국, 피의자는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의 부정의료업자로 구속 송치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피의자가 너무나 점잖은 성품이었고 심지어 검사인 저에게도 기공침 시범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형사부 사건들은 신문에 크게 보도되는 사건들 이외에 그야말로 일반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많고 사건 처리 과정에서 그들의 아픔과 한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지요. 형사부 사건이 일반 서민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므로 제가 검사로 재직하던 2000년대 초부터 늘 형사부 강화 방안 등이 거론되었습니다.


Q. 10년여간 검찰 재직 후 2011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전직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당시 나이가 40대로 접어들 때였는데 형사부 검사로만 11년을 근무하였고, 늘 시간에 쫓기면서 사건 처리를 하고 업무도 상당히 과중했습니다. 그때 헌법재판소로 파견을 다녀온 검찰 선배가 헌재 근무 시절 이야기를 좋게 해 주었습니다. 법조인으로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가치를 규명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정적으로 헌법재판소에 근무 중이던 선배와의 대화에서 전직을 결심했습니다.

Q. 검찰과 헌법재판소의 분위기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같은 부원들 간에 서로 토론하면서 업무를 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인 것은 양쪽이 같았어요. 검찰은 같은 부 검사들뿐만 아니라 검사실 직원들과도 서로 밀접하게 의지해서 보다 끈끈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건에 대한 직접적 결정권자이냐 아니냐의 문제도 업무에 있어서 다른 점이지요.

Q. 즐겨 하는 취미활동이 있으신지요?

테니스를 즐겨 합니다. 요즘 코로나19 상황이지만 주말은 토, 일요일 2회에 걸쳐 지역 내 테니스장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레슨도 받고 있어요. 지역 클럽 2개에 가입하여 테니스를 하면서 사람들과도 즐겁게 소통하고 땀도 많이 흘립니다. 음주를 조금 하는 편인데 주말에 운동을 많이 하여 그나마 건강이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취미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사무실에 철봉을 설치하고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자리에서 일어설 때 틈나는 대로 턱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Q. 법조인이 아닌 인간 박대규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만만한 사람! 부담스럽거나 무서울 것이 없어 쉽게 다가가거나 대할 만한 사람입니다.

Q. 지금까지 어떠한 가치관으로 살아오셨나요?

실제로 온전히 이렇게 살아왔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군자(君子)가 되고 싶어요. 인화(人和)에 힘쓰고 화이부동(和而不同)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삶을 살아감에 있어 주체성과 사회성을 함께 갖춘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Q. 연구관님께서 앞으로 꼭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있으시다면? 

업무와 관련된 목표도 많지만,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지금까지처럼 어머니, 아내, 3명의 자녀가 화목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Q. 연구관님이 가장 큰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은? 

다른 사람들과 마음이 맞고, 같은 생각을 하면서, 좋은 일을 이루려고 할 때인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는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친구에게 그만 나가 놀자고 제안했으나, 몇 번을 거절하던 친구가 결국 승낙했을 때였네요. 친구와 마음이 맞아 학교 도서관을 나와 정문을 나설 때의 바로 그 느낌이죠(웃음).

Q. 살아오시면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꼽자면?

2006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장기 연수하던 시절과 업무를 보고 귀가하던 도중 교통사고가 날 뻔했던 순간인 것 같네요. 경사 급커브 도로에서 운전 중 차가 중심을 잃고 미끄러져 회전하면서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도로로 갔다가, 간신히 본래 차선으로 돌아와 갓길에서 멈춘 적이 있습니다. 당시 반대편 차선에서 화물차가 오고 있어서 충돌할 뻔한 상황이었는데, 당시 큰 아이가 7살, 둘째가 3살, 막내가 돌이 갓 지났을 때였죠. 결정적인 순간이었고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Q. 다시 태어나신다면, 그때도 법조인이 되실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법조인의 일은 사회에 필요한 일이면서도 저와 같은 무난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자녀분들에게 법조인이라는 직업을 권하고 싶으신가요?

권하고 싶어요. 큰 아이는 공대에 진학을 해서 현재 군복무 중인데 여러 진로 중에 로스쿨 진학도 고려해 봤으면 좋겠네요. 고3, 고1 딸에게도 법조인의 길을 권하고 싶습니다.

Q. 시간 터널을 발견해서 의정부지청 박대규 초임검사를 딱 5분 동안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 것인가요?

술을 조금 줄이고 테니스 레슨을 열심히 해라. 관련 분야 공부를 해서 학위를 취득하라.

Q.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2021년의 후배 변호사들에 대한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의 입장에서 말씀드린다면, 후배님들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있는 위치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실천하고, 대학원을 다닌다거나 기타 다양한 방법으로 가능하면 공부에도 손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간사

황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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