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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피고인?

김성중 승인 2021.04.30 15:16:21 호수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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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민사소송에서 ‘피고인’이라니, 저 드라마 작가는 공부를 안 했네....” TV를 켜고 법정드라마를 보는 한국의 변호사들이라면 혀를 차 본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부정확한 용어를 썼다가 빨간펜으로 찔려 가며 속에서 피눈물을 흘려 본 변호사들에게, ‘검사가 피고를 엄벌에 처해 달라고 외치는 장면’은 참고 봐 주기 어렵습니다. 주인공이 잘생겼다면 정상참작은 되겠습니다만, 구구단처럼 몸에 밴 피고/피고인의 구분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좌시할 수 있겠습니까…? 3만을 넘어서는 변호사들 중에 더러는 옆 사람에게 열변을 토할 것이고, 더러는 시청자 게시판에 달려가 댓글을 달 것입니다. 단어 하나하나의 정확성에 재산과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임상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 변호사들은 그렇게 훈련받았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드라마를 같이 보던 딸아이에게 아는 체를 좀 했지요. 실제로 법정에서는 저렇게 하지 않는다는 둥, 형사사건에서는 ‘피고인’이라고 써야 한다는 둥… 그런데, “민사에서 ‘피고’로, 형사에서 ‘피고인’으로구분하는 이유가 뭐냐”라는 질문 앞에서 말이 궁해졌습니다. 이유… 뭐라고 배웠더라, 그냥 외웠던 거 말고는 학교에서도, 실무에서도 배운 기억이 없는데… 잘난 체하던 변호사의 자존심은 잠시 후퇴하고 열심히 검색을 해 봤습니다. ‘被告’에 덧붙여진 ‘人’이 형사절차를 의미하는 언어적 차이를 만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영어로는 민/형사 구분 없이 defendant가 두루 사용되고 있어서 피고/피고인 구분이 영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국가기록원에 공개된 1895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형사재판 판결문에서 전봉준을 ‘被告’라고 표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좌절하였습니다. 피고/피고인 구분은 현재 우리나라의 법조계에서 그렇게 쓰기로 한 약속일 뿐, 무슨 논리필연적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의기양양하게 드라마의 옥에 티를 지적하던 아빠 변호사는 ‘왜?’라는 질문 한방에(교과서 각주에 등장하던 그 많던 독일 법학자들은 어디로 가고) 스위스 언어학자 소쉬르 선생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게 말이지… 휴전선 남쪽에서는 오징어라고 불리는 것이 북쪽에서는 낙지로 불리는 것처럼, 기표와 기의의 결합은 자의적인 것이니 왜냐고 물으면 안 돼요. 아빠 씻을게.”

피고/피고인 용어를 둘러싼 풍경에서 변호사들이 일반시민과 마주하는 자세를 되새겨 봅니다. 이제 우리 곁의 시민들 중에는 변호사에게 ‘왜’냐고 되묻기도 할 것입니다. 설명이 신통치 않으면 댓글과 톡으로 찌르기도 할 것입니다. 아파트값 비교하듯 변호사들을 저울질하기도 할 것입니다. 달라진 눈높이의 시민들 앞에서 – 그들이 변호사가 섬겨야(serve) 할 고객이기도 합니다 – 변호사의 권위와 신뢰는 무엇으로 지탱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피고/피고인 용어 구분 갖고는 어림없겠습니다.
 

김성중 변호사
● 김앤장 법률사무소

김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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