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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 변호사 인터뷰

황귀빈 승인 2021.06.02 16:37:33 호수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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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맥킨리라이스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정우 변호사입니다.

 맥킨리라이스는 인도에 기반을 두고 있는 회사로, 인도 현지에서 매월 약 8만 명의 구직자들이 방문하고, 벤츠와 시티뱅크를 비롯한 유수의 글로벌 기업 약 2,000여 개가 이용하고 있는 채용 포털 스타트업입니다. 우리나라의 ‘잡코리아’, ‘사람인’ 혹은 ‘원티드’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Google이나 Microsoft, Amazon과 같은 초국적 기업들은 이미 인도 소프트웨어 개발 자회사를 설립하여 기술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저희가 가진 폭넓은 구직자 DB를 바탕으로, 평범한 한국 및 미국 기업들 역시 국제화된 IT 밸류 체인을 확립할 수 있도록, 인도 현지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위성 오피스를 설립하고 관리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Q. 사업의 기회, 사업 아이템은 어떻게 발견하셨나요?

 처음부터 인도에 회사를 세울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인도라는 나라에 연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요. 굳이 연고라면 제가 김해 김씨이다 보니 김수로 왕과 혼인한 허황후가 인도 공주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인도는 인구가 13억 4,000만 명으로, 대한민국의 약 27배이자 세계에서 2번째로 인구가 많다는 점, 영어가 공용어라는 점, ‘코딩’이 영어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인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많은 국가라는 점이 사업적 측면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첫 시작은 미미했습니다. 제가 처음 구상한 사업 아이템은 ‘온라인 토론 사이트’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그러한 경향이 다소 있지만, 당시 우리나라 온라인 커뮤니티들은 일반 대중들에게 그리 인식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보다 양질의 대화들이 오가고, 인류의 지식이 휘발되지 않고 축적될 수 있도록, 일종의 현재 한국의 나무위키와 미국의 Reddit의 혼합 형태의 토론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개발자를 구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국내에서 채용도 시도해 보고, 외주도 맡겨 보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해 봤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의 대표적인 프리랜서 구인 사이트인 Upwork나 Fiverr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러면서 인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국 회사들 중에서는 인도에 따로 개발팀을 운영하는 회사들이 워낙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2주 정도 여행을 떠나 인도 개발자들의 수준을 확인한다는 생각으로 인도로 떠났습니다. 그러다가 3년이 지나 버렸습니다.

Q. 회사는 인도상공회의소 가입 기업이고, 현재 직원 수도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회사의 연 매출액은 약 30억 원 정도입니다. 뉴델리와 뭄바이, 두 군데 사무실에서 약 9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고, 이렇게 되기까지는 약 3년이 걸렸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것과 달리, 실제로 인도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 및 한국인들은 생각보다 매우 적습니다. 한국 제품들(삼성, 현대자동차)은 매우 인기가 좋은 것을 보면, 인도에 한국인 숫자가 적은 이유는, 아마 생활 여건이 너무 어려워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도 정부 인사들을 만나면, 자신들이 난생처음 만나는 한국인이 저라고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웃음). 그래서인지 얼떨결에 제가 인도 현지 민간 또는 정부 단체에서 한국인 대표로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모임에 가면, 미국 대표로는 IBM이나 Xerox의 인도지사 부사장 같은 분들이 오십니다. 저를 불러 주시는 것이 영광일 따름입니다.
 


Q.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요?

 2019년 중순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거래하던 회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부도가 나서 갑자기 약 2억 원 정도를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2018년에 투자 없이 창업해서 모든 수익을 회사에 재투자하는 중이었고, 그때까지는 미지급 대금이 발생한 적이 없어 회사에 준비된 여유자금이나 긴급자금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때 통장에 900만 원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2억 원이 갑자기 부족해지면서 통장 잔고가 2주 뒤면 바닥날 상태가 온 것이었습니다. 이때 두 가지를 했습니다.

 첫째로, 부도 2주 전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지자마자, 택시를 잡고 공항으로 떠났습니다. 택시에서 휴대폰으로 가장 빨리 이륙하는 한국행 비행기 표를 구매하였고, 귀국해서 긴급대출을 받았습니다.

 둘째로, 긴급한 자금 수혈이 되자마자 다시 공항으로 이동하여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일단 급한 불은 어떻게든 껐지만, 거래처 한 군데만 더 부도나면 긴급대출로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중요성은 물론이고 거래처 다각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짤 시간도 없이,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한국에서 클라이언트를 유치했는데, 그래도 전 세계 구매력 1위 국가인 미국에서 클라이언트를 유치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유치만 한다면 수익도 훨씬 높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 정말 필사적으로 영업을 했습니다. 아무 연고도, 배경지식도 없었기 때문에 Staples에서 A4 용지 1장짜리 홍보자료를 1천 부 인쇄해서, 처음에는 무작정 미국의 대표적인 공유오피스 기업인 WeWork 지점 약 100군데를 다녔습니다. 설명회도 열고, 다과회도 열고, 인스타그램 홍보도 하고 정말 마케팅의 정석대로 모든 것을 다 해 봤는데, 처음에는 정말 아무도 관심이 없더라고요. 매일 꾸준히 하다 보니, 90일째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UCLA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미국 거래처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Q. 인도 음식은 입에 맞으셨나요?

 3년 동안 365일 삼시 세끼 카레를 먹었습니다. 한국에는 카레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아서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싶으신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간과하시는 것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인도는 국민 대다수가 채식주의자입니다. 카레에도 고기가 일절 없고, 심지어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카레를 매일 먹는 것입니다. 둘째, 인도는 문화상 카레를 손으로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카레는 매우 뜨겁습니다. 그래서 매일 손이 데입니다. 셋째, 우리나라 카레 전문점에 가면 다양한 반찬이 제공됩니다.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깍두기나 단무지는 같이 나옵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반찬도 카레입니다. 저는 한국에 들어오면 절대로 카레를 먹지 않습니다(웃음).

Q. 인도에 처음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면?

 우리나라로 따지면 강남역 사거리나 테헤란로 정도 되는 뉴델리 거리에도 길가에 야생 소가 지나가고, 하늘에서는 원숭이가 떨어집니다. 농담 같지만 정말입니다. 이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미세먼지 농도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미세먼지 농도가 100㎍/㎥ 정도 되면 안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미세먼지 농도 999+㎍/㎥의 ‘측정불가’ 상태가 자주 발생합니다.

 수질오염도 미세먼지 농도와 쌍벽을 이룹니다. 인도 거의 전역에서 폐수 오염이 심합니다. 5성급 호텔을 포함한 숙소에서도 수돗물로 양치를 하면 안 됩니다. 꼭 생수를 사용하여 양치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말씀드리다 보니 마치 제가 여행 가이드가 된 기분이 드네요(웃음).

Q. 넷플릭스 <화이트 타이거>를 보면 인도의 어두운 이면을 그리고 있는데, 직접 겪은 인도 사회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저도 <화이트 타이거>를 보았습니다. 인도의 현재 모습을 상당히 잘 반영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래된 카스트 제도부터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세트에 사용된 소품까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인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굉장히 훌륭한 ‘인도 교본’이라고 생각합니다.

Q. 로스쿨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매우 조용히 보냈습니다. 너무 조용히 보내서인지 로스쿨 3학년 때 수업에 들어갔더니 동기 한 명이 제가 같은 학교 학생인 줄 모르고 “여기 외부인 출입 금지입니다.”라고 말하며 쫓아내려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웃음).

Q. 법조인력 양성제도로서 로스쿨 제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 개인적으로는 사법시험 체제였으면 법을 공부할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로스쿨 제도 역시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을 수 있지만, 저는 로스쿨 제도에 이점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학부에서 법학을 중점적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사법시험에 비해 가장 나아진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기본적인 법학 상식은 휴대폰을 통해 누구나 24시간 검색해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IBM부터 판교에 위치한 작은 스타트업들까지 매일 법률 관련 인공지능 제품들을 새롭게 출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기계가 모방하기 어려운, 법조직역의 참된 본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법조문’보다도 ‘리걸 마인드’ 그리고 ‘암기’보다는 ‘적용’이 훌륭한 법조인으로서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법연수원과 달리 로스쿨 ‘입학’ 조건으로 법학을 전혀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대다수의 학생들이 다른 학문, 즉 다른 세계에 관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오게 됩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조인들이 양성되고, 실질적으로 ‘직역 확대’의 길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로스쿨 체제가 도입된 후에 과거 어느 때보다 다양한 출신의 변호사들이,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의욕한 것만큼 다양하지 않다는 지적 혹은 공급과잉에 대한 지적은 앞으로 개선해 나가면 될 부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Q. 변호사로서 사업을 하는 장점이 있다면?

 사실, 대표가 변호사이기 때문에 클라이언트들이 대금을 더 잘 납입한다거나, 회사가 소송에 덜 휘말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웃음). 지극히 현실적인 측면을 말씀드리면, 변호사가 대표인 경우 사업자금 대출이 잘 됩니다. 또한, ‘리걸마인드’가 경영에 있어서 상당한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의외로 ‘공법’이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들이 국회로 많이 진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입법부의 구성원으로서 ‘국가의 설계도’ 역할을 잘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사하게 사업체의 경영 역시 본질적으로 회사라는 작은 나라를 설계하고 운영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경영자가 회사의 성과급 체계를 잘 ‘입법’해 놓으면, 인사팀이 이를 정확히 ‘집행’하고, 집행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감사팀이 ‘감시’를 합니다. 이런 관점이나 접근이 회사 경영에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Q. 반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최근 법조계 풍경은 어떠신가요? 

 요즘 법조계의 최대 화두 중 하나가 ‘리걸테크(Legal Tech)’가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리걸테크 전반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혁신이라는 미명 하에 변호사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업체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변호사회 차원에서 적극 고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불법 사무장 로펌을 포함하여 불법 광고 대행사들에도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변호사회의 주도로 변호사에 의한, 변호사들을 위한, 바람직한 IT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조금 식상한 대답일 수 있으나, 넓은 시안을 기를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쌓는 데에 항상 응원해 주신 부모님인 것 같습니다. 제가 22살 때 과외로 돈을 모아 대학교를 1년 휴학하고 남아메리카에 혼자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입장에서 이를 허락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흔쾌히 제 결정을 응원해 주신 부모님 덕에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외에 많은 영감을 준 인물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입니다. 콜럼버스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투자받고, 인도를 찾아 떠났다가 미대륙을 항해했습니다. 인류의 무한한 도전정신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Q. 지금까지 어떠한 가치관을 갖고 살아오셨나요?

 도전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자.
 


Q.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저희 회사가 인도에서 매해 2번씩 자선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회사 근처에 있는 고아원에 식량과 의류, 학습교재를 전달하고, 직원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옵니다. 회사가 어려웠던 시절에도 끊임없이 유지했던 행사로 자부심과 더불어 성취감을 느낍니다.

Q. 10년 후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희 회사가 한국의 ‘잡코리아’나 ‘사람인’과 같이, 인도 최고의 채용 플랫폼으로 자리잡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입니다. 다음으로, 현지 기업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국 - 인도 간 무역을 선도하고 싶습니다.

Q. 변호사로서 사업가를 꿈꾸는 동료나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은 많이 안정되었지만, 창업이라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특별한 계획이나 공부 없이, 정말 어쩌다가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간과했던 사실은 ‘사업이라는 것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아서, 전진하거나 쓰러지거나 둘 중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업을 꿈꾸는 동료나 후배들이 있다면, 사업은 사실상 ‘휴직’이 불가능한 직업이고, ‘퇴사’라는 옵션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등산을 떠나는 일이라는 말은 해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매력적인 방향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송무 영역에 국한하지 말고 자신 있게 도전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간사

황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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