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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 그다지 멀지 않은 세계로의 여행

유승연 승인 2021.08.02 10:04:50 호수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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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글 쓰는 사람이라는 답을 하곤 한다. 몇 시간에 걸쳐 목차가 가지런히 정리된 준비서면을 쓰든, 짤막한 의견이 담긴 메일을 쓰든, 매일 글을 쓰고 있으니 틀린 대답은 아니다. 그럼에도 저 대답이 무언가 진실을 회피하는 듯한 머쓱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내가 쓰는 글이 나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자신의 가치관, 세상을 하나의 서사로 만들어 내는 작가들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더라도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특히 SF 소설을 읽을 때면 작가의 상상력이 주는 현실과의 괴리감에 자연스레 탑승하여 모니터 앞으로 다시 돌아오는 법을 잊기도 한다.

 『종이 동물원』은 켄 리우의 단편소설을 모은 책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종이동물원』은 아들에게 늘 닿고자 했던 어머니의 이야기로, 그녀의 짧은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에는 눈시울이 붉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 외에도 AI를 소재로 한 영화 <HER>이 연상되는 ‘천생연분’, 과학 문명시대의 구미호 사냥꾼 이야기인 ‘즐거운 사냥을 하길’(이 단편은 넷플릭스 시리즈인 <러브 데스 로봇>의 에피소드로 제작됨), 아버지의 가상현실 외도를 목격한 딸이 풀어내는 ‘시뮬라크럼’ 등 단골 첨단 과학 소재들이 해체되고 다른 분야의 소재(불륜, 설화, 한자 등)와 결합되어 새로운 서사로 만들어진다. 이 책에서 무언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이러한 참신함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글쟁이들이 눈여겨볼 만한 단편은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이다. 이 지적 생물종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능력을 이용하여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달한다. 이를테면, 음각으로 소리를 새긴 후 독자가 이를 읽으면 작가의 목소리가 재현되어 음성, 어조, 리듬까지 독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거나, 자신의 사유를 몸속에 돌로 만들어 그 자체로 온전히 자식에게 전하거나, 죽은 자의 육신에서 정신을 거두어 하나의 계측된 지도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만든다. 이들과 비교하면, 정리된 생각을 단지 시각화된 자료로 만들 뿐인 인류의 책은 어딘가 불완전한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소 겸허해진다.

 작가 켄 리우는 어느 인터뷰에서 가장 경이로운 인간의 속성은 우주의 진정한 상태인 무작위성에서 의미를 창조해 내고 서사를 빚어내는 우리 인간의 노력을 꼽을 수 있다고 하였다. 어떠한 방식의 글쓰기이건, 인간은 무작위로 반복되는 사건들 속에서 특정한 사건을 찾아내고, 이에 의미를 부여하여 새로운 서사와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준비서면과 의견서도 특정한 사건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논리적으로 풀어간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믿는다.

 이 책의 첨단 과학 소재를 다룬 단편들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면, 2차 대전 등 역사적으로 인접한 소재를 다룬 단편들이 현실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안전벨트가 되어 줄 것이다. 혹시 더 멀리 가고 싶다면 작가의 또 다른 단편선인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를 소지하기를 권한다.
 

유승연 변호사

유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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