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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의 무게

박지선 승인 2021.09.01 16:38:30 호수 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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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코너에서 제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건설 공사현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고, 해당 현장책임자 등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 등으로 기소된 사건에 변호인으로 참여하였던 경험입니다.

 저는 해당 사건 이전까지 주로 민사사건을 대리하였으며, 적게나마 참여하였던 형사사건들도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 또는 재판이 이뤄졌거나 집행유예 이하의 형을 선고받았던 경우였습니다. 또한 지난 연말 수습을 마치기 전까지는 아직 교정시설에 방문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위 사건은 그 사안이 중대하였던 만큼, 피고인분들이 이미 수사 단계에서부터 구속된 상태였고, 저는 결국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분들을 올해 초 항소심 단계에서부터 변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위해 구치소에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고, 불가피하게 그분들과 그곳에서 첫 대면을 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변호인 접견실이 아닌 일반 접견실에서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투명 차단막을 사이에 두고 1심 선고 후 실의에 빠져있는 피고인분들과 항소심 준비를 위한 대화를 나누었고, 그 이전까지는 피해자분들 및 그 유가족분들의 사정이 너무나 안타까워 이런 사건에 피고인의 변호인으로 참여하게 된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피고인분들을 뵙고 오니 사실 말 그대로 고의가 아닌 과실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이어서 그런 결과를 의도치 않았던 그분들께도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사건 또는 의뢰인에 이입하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여야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조언을 평소 많이 들었지만, 혹여 그렇지 못한 제 자세가 잘못되었을지라도 이 사건에 참여하면서 피고인분들과 관계를 형성하니 그것을 교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피고인분들 중 현장소장님으로부터 “신문에서 사고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을 보면 너무 괴로워 신문조차 읽기 힘들고, 검사님의 발언만 들으면 제가 천하의 몹쓸 인간이 된 것 같습니다. 변호인께서 저를 보호해 주시길 부탁합니다.”라는 취지의 말씀을 듣고, 항소이유서뿐만 아니라 항소심이 진행되며 제출할 변론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소사실에 반대되는 증거를 찾지 못할 때마다 피고인분들의 얼굴이 떠올라 더욱 괴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항소심 첫 공판기일 때 대법정을 가득 메운 사람들 앞에서 부담감과 무거운 법정 분위기에 압도되었고, 항소 이유를 구두 진술하며 변호인으로서 든든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것 같아 며칠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피고인분들의 사정에 이입되어 피해자분들을 고려하지 못하고 다소 격한 어조로 구두 변론에 임한 것 같아 너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여섯 차례에 걸친 항소심에서의 공판은 변호인들의 PT 변론, 1심에서 못다 한 증인 및 피고인신문 등으로 바쁘게 진행되었고, 지난 7월 어느 무더운 여름날 판결 선고가 있었습니다.

 판결 선고 당일 판사님의 판결문 낭독이 시작되자, 방청석에 있던 제 눈에는 피고인석에 계신 현장소장님의 호흡이 급격하게 가빠지고 자리에 앉아있음에도 몸을 가누기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자 그 심정이 제게도 전해져 왔고, 결과를 어느 정도 냉정히 예측하였던 제 심장도 갑자기 급격히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와 고백하자면,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의 선고 앞부분 내용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항소심에서는 형이 감형되었지만 그 정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다시 검사와 피고인들 양측이 상고하여 이제 대법원의 판단을 한 번 더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수용시설에 계실 피고인분들이 떠오르고, 당사자의 신변이 좌우되는 형사사건 및 그에 임하는 변호인의 무게가 새삼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포함하여 형사사건이든 기타 사건이든 결과가 아쉬울 때마다 ‘내가 좀 더 괜찮은 변호사였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종종 괴로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이 사건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상고이유서 작성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겠지요. 아무쪼록 저연차 변호사로서 미숙하거나 심지어 순진하기까지 할 수도 있는 지금 제 모습과, 이번 사건의 선고 때 그 분위기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박지선 변호사
● 법무법인 하온

박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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