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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을 ‘분석’으로

박승길 승인 2021.10.05 14:42:06 호수 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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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사건 중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 혹은 치사)사건이나,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차량)사건을 변호하게 되면, 제출되는 증거 중에 사고 당시 상황을 담은 블랙박스 영상 혹은 CCTV 영상이 있는 경우가 많고, 이를 열람하여 보면 ‘운전자가 과연 저 상황에서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까?’, ‘이런 사건까지 왜 기소하지?’라는 의문이 드는 사건이 있기도 합니다. 부족한 필자의 능력으로 딱 꼬집어 그 의문을 속 시원히 풀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운전자가 사고를 예견하거나 피할 수 없었기에, 즉 업무상 과실이 없어서 ‘무죄’일 것 같다는 ‘감’이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죄가 되기 위해서는 ‘감’을 넘는 설득력 있는 ‘분석’이 필요하고, 그때 ‘도로교통공단’에 사실조회를 신청하는 것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은 2013년 국선전담변호사 업무를 시작할 때 선배변호사님으로부터 인수받은 기록 안에 있던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 분석서’라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그 분석 내용을 토대로 사고 상황을 조목조목 분석하여 무죄의 근거를 풀어 간 변론요지서까지 접하면서 큰 배움을 얻었습니다. 좌충우돌 실수가 많았던 첫해인 2013년에 방영한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사람의 눈을 보면 속마음을 알 수 있어, 국선전담변호사인 장혜성의 변론에 도움을 주는 남주인공 ‘박수하’는 비록 현실에는 없지만, 변론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선배변호사님들’과 교통사고사건에서 면밀히 사고 분석을 해 주는 ‘도로교통공단’과 같은 전문기관이 있어 무능력자와도 같았던 필자는 차츰 갈피를 잡아갈 수 있었습니다.

 기억에 많이 남는 사건 중 하나는, 이른 아침에 공사 현장으로 출근하던 운전자가 편도 4차로 도로의 3차로로 진행하던 중 1,2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인 차량들을 사이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를 앞 범퍼로 충돌하여 보행자가 사망한 사건입니다. 사망사고이기에 운전자는 크게 자책하였으며, 수사 단계에서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고인의 명복을 빌며 미처 보행자를 피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취지로 진술하였고, 종합보험처리는 물론 형사합의까지 하였습니다. 검사는 500만 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하였으나 공판절차에 회부되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발생한 아찔한 사고 영상을 수십 번 보면서, ‘3초만이라도 시간을 멈추거나 뒤로 돌리는 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가해자도 또 피해자도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습니다.

 상담 시 피고인이 된 운전자는 강하게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벌금을 내고 조속히 마무리 짓고 싶은데, 공판절차에 회부되었다며 불안해했습니다. 변호인으로서는 무죄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도로교통공단에 사실조회 신청을 하였습니다. 블랙박스 영상을 첨부해서, 당시 사고차량의 속도, 그 속도로 주행하던 차량이 정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거리(공주거리와 제동거리의 합), 피해자가 블랙박스 영상에 등장한 시점 및 그 당시 차량과의 거리, 운전자가 피해자를 발견할 수 있었던 시점과 충돌 시점과의 시차 및 거리 등에 관하여 질의를 하였고, 정지거리는 약 36미터 정도인데, 피해자가 블랙박스 영상에 나온 시점에서 이미 피해자와 차량과의 거리는 27미터 정도에 불과해 일반적인 운전자의 위험회피능력 및 자동차 성능을 고려했을 때 피해자와의 충돌을 회피하지 못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분석자의 소견이 담긴 회신을 받았습니다. 이례적인 무단횡단까지 운전자가 예견하여 운전할 주의의무는 없다는 판례는 많으나, 실제 사안에서 운전자가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오히려 기소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렇게 당시 상황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분석해 주는 보고서가 있다면 변론에 큰 도움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무죄 판결을 받아 확정되었습니다.

 다른 사건은, 뛰어서 무단횡단하던 보행자가 편도 7차로 중 3차로를 진행하던 사고차량에 치이고 나서 바로 다시 인도로 돌아가 걸어갔고, 운전자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멈추었다가 좌회전을 해서 그대로 갔는데, 다음날 보행자의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를 하고 2주 진단서를 내면서 사건화되었고, 운전자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차량)으로 벌금 7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사건입니다.

 운전자는 정식재판을 청구하였고 벌금보다 도주차량이기에 운전면허가 4년간 취소되는 것에 대해 큰 불편을 호소하였습니다. 이 사건 증거기록에는 블랙박스 영상이 아닌 도로 CCTV 영상이 있었고, 필자는 CCTV 영상으로도 사고분석이 되는지에 대한 경험이 없어 분석이 안 되는 경우를 대비해 국민참여재판까지 신청하여 두었으나, 결과적으로 교통사고분석 회신을 받았습니다. 당시 차량의 속도, 보행자의 속도, 정지가능거리가 CCTV 영상을 통해 분석되었고, 블랙박스 영상이 없으므로 조사원이 이마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승용차를 운전하여 사고 장소에서 전방의 시각범위를 촬영하였고, 그 결과도 보고서에 포함되었습니다. 보고서에는 CCTV에 촬영된 것처럼 사고 차량 우측 차로 옆에 RV차량이 서 있는 경우 보행자의 신장과 관계없이 시야가 가려져 운전자가 육안으로 보행자를 인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조사자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 역시 운전자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결국 도주차량에 대해서도 무죄 판결을 받아 확정되었습니다. 2019. 8. 말에 발생한 사고인데, 2020. 9.에 1심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였다가 갑작스러운 코로나19 확산으로 그 신청을 철회하면서 판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린 것도 있으나, 수사와 재판을 받는 긴 시간 동안 임시면허기간도 끝나고 운전자는 리스차량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매월 백만 원 이상의 리스료를 계속 부담하는 경제적인 손실도 입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형사사건이 진행되는 도중에 운전면허 취소처분에 대한 행정심판을 청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무죄 판결 확정 이후 형사보상청구를 하였으나 여비로 20여만 원만 지급받았습니다.

 이미 위와 같은 방법을 알고 계신 변호사님들도 많으시겠으나, 새로 시작하는 새내기 변호사님들께 작은 도움이 될까 하여 선배변호사님으로부터 값없이 받은 노하우를 이 지면을 통해 전해 봅니다. 그리고 필자는 주로 기소된 이후 형사재판에서 변론을 담당하지만, 변호인으로서 수사 단계부터 개입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운전자 과실에 대해 무죄의 ‘감’이 온다면 기소 전부터 수사 기관에 사실조회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하고 요청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과속 상태에서 교통사고 상해사건이 발생한 경우 수사기관은 수사 단계에서 사고차량의 속도를 확인하기 위해 도로교통공단이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실조회를 보내고 그 결과를 증거로 제출하기도 합니다. 위와 같이 운전자의 과실이 모호한 경우 수사기관이 애매하게 약식기소를 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이런 사실조회 등을 통해 객관적인 분석을 받아본 후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면, 이처럼 무죄를 받을 만한 상황에서 사고를 낸 운전자들이 사고 이후부터 판결 확정 시까지 형사합의의 부담, 운전면허취소의 불이익,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되는 중압감 등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형사변호 및 수사 단계에서 위와 같은 객관적인 분석의 방법이 확대되어 사용되길 바라 봅니다.

 

 
박승길 변호사

박승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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