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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유승연 승인 2022.03.31 17:40:20 호수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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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것들 그러나 위대한 세계에 대한 생각


 어렸을 적 나에게 글씨를 작게 쓴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초등학생 때 네모 칸 공책에 글씨를 쓰면서 네모 칸의 가장자리를 건드리지 않고 글씨를 채워 넣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였다. 이런 나에게 글씨를 작고 또박또박 쓰던 사촌들은 영웅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글씨를 작게 쓰면서도 똑바르게 쓰는 것인지를 물어보는 나에게, 한 사촌은 너도 크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염원하던, 글씨를 작게 쓸 수 있는 능력은 생각보다 빨리 획득하게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교과서의 글자는 점점 더 작아지고 덩달아 나의 글씨도 작아졌다. 책의 작은 여백에 글씨를 쓰기 위하여 크기는 물론 자간, 장평까지 자유자재로 조절할 능력이 생겼다. 대학교에서 컴퓨터로 리포트를 작성하면서는 손수 획을 긋지 않아도 몇 번의 클릭만으로 글자 크기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사회인이 되고 보니 글씨만 작아진 것이 아니라, 어쩐지 나의 세계도 작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된 벗들은 나의 일이 바빠 여유가 없어져서 그렇다거나, 이제 중요한 일에만 집중하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큰 세상 속에서 작은 것들을 위대하고 소중하게 바라보던 시선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선생님이 쓴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도 한때는 어린이였기에 책 속 어린이들이 사소한 것들에 대해 가졌던 생각과 감정이, 마음속 깊이 감추어 두었던 우리의 기억을 스치며 와 닿는다. 신발 끈 묶을 때의 고된 수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 그 물건의 추억까지 잃어버린 듯하여 홍수처럼 밀려들던 슬픔(그러나 새것을 사면 슬픔은 금세 잊히곤 했다), 선생님이 마흔 살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숫자가 주던 요원한 느낌 같은 것들 말이다.

 어린이들이 작은 것들에 대해 가지는 이런 새롭고 소중한 감정은 어린이들의 견문이 넓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인 글쓴이는 어린이들을 ‘이성으로’ 가르치겠다는 다짐을 하고 어린이 한 명 한명을 존중하며 그들의 지적 성장을 돕겠다는 목표를 세운다(151p). 하지만 글쓴이는 이내 어린이들이 주는 사랑의 크기에 압도당하고 대신 ‘우정’을 주기로 한다. 어린이들은 작은 것들도, 사소한 것들도, 어려운 어른도 사랑을 가지고 대한다. 어린이들은 신발 끈을 묶는 것 같이 매일 반복되거나 사소한 일이라도 정성을 다해 애정을 가지고 수행한다. ‘사랑하는 선생님께’(비록 이것이 관용구일지라도)를 쓰고 아빠에게 그림을 같이 색칠하자고 하며, 모르는 어른에게 선뜻 도와달라고도 한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이 있다지만, 어린이들이 대상을 불문하고 베푸는 이런 사랑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또 어린이들은 다 알고 있다. 상황을, 맥락을, 관계를, 어른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반말을 쓰는 쪽은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고 전달한다. 반면 존댓말을 쓰는 쪽은 자기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상대가 표현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대응한다(191p). 그런데 어린이는 어떤가. “저 오늘 생일이다요?”와 같이 반말과 존댓말을 교묘히 활용하여 친근하면서도 뽐내는 기분을 어른에게 예의 바르게 전달한다.

 어쩌면 작은 것들을 위대하고 소중하게 바라보던 마음가짐은 잃어버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글씨가 작아지면서 잠시 좁아졌던 견문을 다시 넓히기 위해서는 우리네 직업처럼 계속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작은 것들 그러나 위대한 세계에 대해 계속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는 훈련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스승은 바로 옆에 있다. 세상에는 늘 어린이가 있다.

 

유승연 변호사

유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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