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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Russia with no Love...

이재경 승인 2022.04.05 10:24:22 호수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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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토의 왕국 러시아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1965년 냉전시대 우리의 가슴을 녹이던 영화 <닥터 지바고>의 사랑과 전쟁 속에서도 영화 배경인 시베리아 설원은 모리스 자르의 영화음악 ‘라라의 테마’ 선율과 함께 그저 아름답기만 했다. 제임스 본드의 007 시리즈 <From Russia with Love(007 위기일발)>의 발표 당시만 해도 러시아에는 공산주의 혁명의 장막 뒤에 크렘린 궁의 음흉한 미소가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유구한 역사와 함께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각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본인 러시아에게 우리의 분노를 잠시 제쳐 두고 모스크바, 시베리아로 음악여행을 떠나자.

 러시아는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출신 작곡가로서는 발레곡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으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차이콥스키를 비롯하여, 보로딘 등 민족주의 5인방 등은 서양음악사의 큰 획을 긋고 있다. Emerson Lake & Palmer가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편곡하여 더 유명해진 ‘전람회의 그림’ 작곡가 무소륵스키도 빼놓을 수 없다. 쇼스타코비치는 2차 세계대전 히틀러의 공격으로 인하여 900일간 봉쇄된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를 헌정하였고, 이 곡의 초연 기간에 러시아 전역에 총성이 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평화의 상징곡으로 꼽힌다. 그 외 국내외 피아니스트들의 단골 레퍼토리 라흐마니노프의 애절한 피아노 곡들이나 스트라빈스키, 루빈스타인의 오묘한 교향악곡들은 러시아 특유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냉전시대에 꽁꽁 얼고 닫혀있던 러시아 음악시장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반드시 ‘빅토르 최’라는 이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고려인의 후손인 그는 반항적인 메시지를 담은 록 음악으로 당시 소련(Soviet Union) 젊은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록의 불모지였던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던 국수주의적 뮤지션들이 공산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대접받았지만, 레닌그라드 출신의 빅토르 최가 이끄는 록밴드 키노(КИНО)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1980년대를 주름잡는다. 키노의 1982년 데뷔곡 ‘엘렉트리치카(Elektrichka, 소련의 광역 전철)’는 정처 없이 끌려가는 전차를 다루면서 소련 사회를 은유적으로 비판하였기 때문에 소련 당국에 의하여 금지곡으로 묶인다. 이에 굴하지 않고 발표한 키노의 ‘내 집을 비핵화 지대로 선포한다’라는 곡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동원된 젊은이들의 희생에 반감을 가진 대중에게 큰 공감을 이끌어 낸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키노는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1990년 모스크바의 레닌 스타디움에서 6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콘서트로 인기를 입증한다. 그러나, 1990년 8월 15일 소련 치하 라트비아에서 빅토르 최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KGB가 반전, 평화를 내세우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빅토르 최를 살해했다는 음모론이 오늘날까지 이어오지만, 러시아 당국의 통제 때문에 그 진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빅토르 최가 생전에 퍼뜨린 숭고한 메시지만큼은 그 누구도 명명백백하게 알 수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인들이라면...
 


 서방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러시아 뮤지션으로는 1999년부터 활동했던 여성 2인조 t.A.T.u(타투)가 꼽힌다. 러시아 전역에서 오디션으로 선발된 율리나, 레나로 이루어진 타투는 ‘Я сошла с ума(Ya Soshla S Uma(난 미쳐 버렸어)’로 러시아에서 데뷔하여 인기를 얻은 후, 2003년 동명 곡을 번안하여 미국에서 ‘All the thing she said’로 세계를 넘나들면서 성공의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데뷔 당시부터 레즈비언 콘셉트를 들고 나와서 화제가 되었고, 그들의 뮤직비디오나 CF 등에서 18금의 선정적인 장면은 노이즈마케팅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율리아는 양성애자, 레나는 LGBT 지지자로 알려졌고, 실제 무대에서도 이 두 사람은 무척 찐한 키스신을 자주 연출하곤 했다. 2010년대 이후 이들은 사이도 나빠지고, 멤버들의 성대 결절 등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간간이 무대에 서는 경우를 제외하고 휴면 중이다.

 러시아는 냉전시대부터 서방 뮤지션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Beatles는 ‘Back In The U.S.S.R’에서 동유럽 여성들에 대한 장난스러운 호기심을 드러낸다. 제목에 소련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었지만, 막상 정치적 비판은 전혀 없다. “Well the Ukraine girls really knock me out...”라는 가사처럼, 우크라이나 여자들에 대한 환상도 담겨있다.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 시절부터 모스크바 공연을 그토록 원했지만 막상 그의 러시아 공연 소원은 비틀즈와 소련이 모두 해체된 이후에야 이루어졌다. 매카트니의 2008년 러시아 공연 때 오늘날 세계인들의 밉상으로 손가락질 받는 푸틴 앞에서 ‘Back In The U.S.S.R’을 부르는 아이러니는 우크라이나 여성들에게 수치스럽다.

 스팅은 1980년대 불렀던 ‘Russians’을 오늘날 다시 부르며, 반전의 반전을 외치고 있고, 독일 록그룹 Scorpions는 소련의 해체와 변화를 희망스럽게 노래한 ‘Wind of Change’에 염원을 담았다. Michael Jackson이 세상을 뜨기 직전에 발표한 ‘Stranger in Moscow’가 더욱 쓸쓸히 들리는 이유는 푸틴이 더 잘 알지 않을까?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보드카 외에 극도의 도박성을 담은 러시안 룰렛 게임도 유명하다. 1/6 확률로 총알 하나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바로 그 게임... 2000년대 제일 잘 나갔던 흑인 여성 Rihanna의 ‘Russian Roulette’, 2020년대를 접수하고 있는 우리 레드벨벳의 ‘러시안 룰렛’은 도박보다 더 중독스러운 멜로디를 담고 있다.

 몇 주 전 빌보드 음악 시상식에서 보니 레이트를 비롯한 많은 팝스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우려를 표하면서 평화를 제창하였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는 키이우 클래식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독립광장 콘서트가 전 세계에 평화와 공조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폴란드, 루마니아 등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도 간절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 푸틴과 러시아 강경 세력에게도 그 간절함이 전해지기를...

 

● 이재경 변호사 / 건국대 교수

이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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