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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살아 흘러가다

황적화 승인 2022.05.02 14:27:46 호수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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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선약수(上善若水)’의 뜻을 모두들 알고 있을 것이다. 노자(老子)는 도(道)를 물로 비유했다. 해석은 다양할 수 있으나 사람의 삶에 빗대어 적용해 보면,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은 일곱 가지의 덕이 있다고 한다. 즉, 겸손(謙遜), 지혜(智慧), 포용(包容), 융통성(融通性), 인내(忍耐), 용기(勇氣), 대의(大義)다. 이번 글에서는 이와 같은 물의 덕을 지니고 산 분들의 행적을 더듬어 본받을 점이 있는지 살피고자 한다
 

 상류(上流) : 맑고 순수하게 출발하다(겸손과 지혜)

 사람이 철이 들어 독자적인 삶을 시작할 때는 선현이나 스승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조선 초기의 명재상인 맹사성(孟思誠)은 약관 16세에 대과에 급제한 후 파주 군수가 되었다. 소년등과(少年登科)한 터라 그의 가슴에는 교만이 꿈틀거렸고 세상천지가 눈 아래로 보였다.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어느 절에 행차하여 고명하다는 노승에게 이 고을을 어찌 다스리면 좋을지 물었다. “그저 악한 일을 피하고 착한 일을 하면 됩니다.” 스님의 설법에 삼척동자도 아는 그런 말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며 화를 냈다.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그의 찻잔이 철철 넘치도록 찻물을 부어 주었다.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그에게 스님이 일갈했다. “찻물이 넘쳐 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모르시는구려.” 그는 분함을 못 이겨 자리를 박차고 나가다가 그만 방 문틀에 이마를 부딪쳐 눈앞에 별이 번쩍했다. 그의 등 뒤로 스님이 한 마디 화두를 던져 전송했다. “머리를 숙이면 부딪치는 일이 없소.” 그 후 맹사성은 이 교훈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다. 높은 벼슬을 거듭하면서도 평생 겸허하고 진솔한 자세로 공평무사하게 일했다. 말년에는 누추한 집에 살면서 소를 타고 다니며 고결한 향기를 남겼다. 아무나 노승의 말에서 가르침을 얻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의 잘났다고 으스대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느꼈다면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맹사성이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자아성찰을 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겸손과 지혜가 담긴 순수함으로 인생을 출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큰 강도 깊은 산속 맑은 샘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중류(中流) : 힘차고 의연하게 흘러가다(포용, 융통성과 인내)

 상처 없는 영혼은 없고, 고난 없는 인생도 없다. 사노라면 순풍만 있는 것도 아니요, 화창한 날만 이어지지도 않는다. 인생 중반전은 누구나 치열하게 달려가는 시간이다. 그 과정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자주 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명대사처럼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는 법이다. 중국의 혼란한 전국시대에 홀로 인의(仁義)를 주창했던 맹자(孟子)는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굶주리게 하여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어지럽게 한다. 그것은 타고난 본성을 인내로써 담금질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그 역량을 키워 주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깊이 음미할 만한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견디기 어려운 삼중고에 시달리면서도 자기 인생에 행복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고 회고한 헬렌 켈러,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박해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순교의 여정을 완주한 사도 바울 같은 사람들이 살아간 길은 담대하고 의연한 강물의 덕을 닮았다. 탁한 지류도 받아들여 정화하고, 휘어진 여울목도 지침 없이 돌아가며, 가로막는 바위도 타고 넘어가는 강물처럼 살아 보자. 사는 동안 고난이 닥쳐도 그것에 무슨 뜻이 있으려니 믿고 굳세게 나아가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다.
 

 하류(下流) : 유유히 흘러 흘러 마침내 바다에 이르다(용기와 대의)

 인생을 잘 살고 말년을 맞이한 분들의 주름살에는 애틋한 사랑과 헌신이 아로새겨져 있다. 아름다운 석양과도 같은 온화한 표정이다. “백발은 영광의 면류관이니, 이는 의로운 삶을 통해 얻어 진다”는 성서의 구절은 참으로 가슴을 울린다. 이순신 장군을 한번 생각해 보자.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중략)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이것은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이다. 장군의 장렬한 최후를 암시하는 것 같다. 조선을 침범하여 강토를 유린하고 죄 없는 백성들을 도륙한 왜적들의 퇴로를 가로막아 섬멸하는 마지막 전투에서, 장군은 탄환이 빗발치는 전함의 갑판에 우뚝 서서 생을 마감하였다. 훗날에 있을지도 모를 모함과 권력투쟁의 오욕을 피하고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 어찌 장엄하지 아니한가. 인생을 가치 있게 살고 간 사람들의 뒷모습은 슬프면서도 찬란하다. 음악으로 치면 교향곡 4악장의 피날레와 같은 벅찬 감동과 여운이 있다.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의 장례식에서는 ‘말러의 교향곡 5번’이, 아인슈타인의 영결식에서는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슈베르트와 쇼팽의 장례식에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연주되었다. 남겨진 사람들의 사무치는 애도를 받는 망자의 영혼은 행복하리라.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긴 여정을 마감하고 소멸한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에 목 놓아 부르던 졸업식 노래의 마지막 가사(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처럼 우리네 인생도 굽이굽이 흘러 흘러 마침내 평화롭게 바다에 이를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큰 축복일까.

 청운의 꿈을 품은 홍안의 소년이었던 필자도 어느덧 머리에 서리가 내렸다. 돌아보며 아쉬움도 많지만 그렇다고해도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지금의 시간도 참으로 소중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등의 주제넘은 설교를 늘어놓으려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그저 물처럼 사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성현의 말씀을 같이 생각해 보자는 뜻이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황적화 변호사
● 법무법인 허브

황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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