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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 변호사 인터뷰

황귀빈 승인 2022.06.03 13:33:49 호수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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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회보 인기 코너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 30년간 재판하다가, 변호사가 되어서 11년간 재판을 받아 온 이재홍 변호사입니다. 법조인으로만 살아온 인생이었습니다(웃음).

Q. 법관이 되시기로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자연스럽게 흐름에 따라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적록색약이라 이과 진학을 할 수 없었고, 성향도 문과 성향이라 자연스럽게 문과를 택했습니다. 문과에서 상대와 법대가 있었는데, 경제기획원에 가서 국가 경제를 이끌어 나가는 관료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지만, 부친의 의사도 있었고, 저도 법을 공부하고 법조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자연스럽게 법대로 진학했습니다. 당시 법조인이 되면, 김앤장에서 한두 명씩 뽑기도 했고 저도 오퍼를 받긴 했습니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임관하지 않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판사나 검사가 되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검사가 판사보다 더 권력직이고, 출세직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선배들 세대에서는 검찰이 더 선호되었던 것 같고요. 검사의 사회적 권한이 상당하던 시절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검사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하였고, 조언을 구한 선배법조인께서 ‘판사가 법조인의 본령이 아니겠냐’는 취지로 말씀해 주셔서 자연스럽게 흐름에 따라 판사직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Q. 약 28년의 법원 생활 동안 한마디로 자평하면 법관으로서 어떤 법관이셨나요?

 그래도 법정에서는 변호사님들이나 당사자에게 따뜻한 판사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법정에서 웬만한 증거신청은 다 받아 줬습니다. 법원이 왜 저렇게까지 할까 싶을 정도로 요즘 증거신청에 대해서 너무 각박하잖아요. 실질적으로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은 너무 심합니다. 저는 증거신청은 네거티브 시스템, 그러니까 원칙적으로는 다 받아 주되, 특별한 경우만 제외시키는 쪽으로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민사에서 당사자신문도 많이 했습니다. 새로운 시도였죠. 그래도 비교적 판사로서의 직분을 잘 수행하려 노력했습니다. 잘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80점 정도는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웃음).

 법원 선후배나 동료들이 기억하기에는, 나쁘게 말하면 튀는 판사일 수도 있겠습니다. 특이한 판결을 많이 했습니다. 심재륜 고검장 사건 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정판결(事情判決)도 했고, 행정절차법에서 행정처분 자체를 완전히 취소하는 판결도 했습니다. 판결문에 인문학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고요.

 사회봉사명령을 다양화해서 그 사람의 특성에 맞게 실질화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청소하거나 어린이를 돌보는 것 말고도, 가령 변호사라면 법률상담이나 변론을 몇 시간 하도록 하는 식으로요. 사회봉사명령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조건부 집행유예 제도를 판결을 통해 도입하려는 시도도 했었죠. 실형과 집행유예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잖아요. 그 갈림길은 미세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일종의 절벽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그 간극을 메꾸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조건부 집행유예 제도입니다. 2007년에 판결을 통해 조건부 집행유예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습니다. 일종의 무리한 시도라는 것을 알았고 결과적으로도 대법원에서 파기되긴 했지만, 저 나름대로는 판결을 통해 이 제도를 정착시켜 보려고 했습니다.

Q.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변호사들이나 판사들도 이해를 못 했을 것 같습니다. 연구관보고서에도 그런 부분이 나와 있지 않았고요. 그렇지만 지금도 조건부 집행유예 제도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기범죄는 애매한 경우가 많고, 돈을 갚지 못하면 실형이 나오지만 갚으면 집행유예인 경우가 있지요. 교통사고가 났는데, 피해자와 합의가 되지 못하면 실형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조건부 집행유예 판결은 ‘집행유예를 해 줄 테니까 네가 돈을 벌어서 언제까지 이 돈을 합의금으로 지급해라. 못하면 너는 다시 감옥으로 간다’라는 것인데, 조금 비인간적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집행유예가 사실은 윈윈 게임(win - win game)이 될 수 있어요. 사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이 사람을 감옥 보내는 것보다 돈을 받는 게 더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피고인이 감옥에 가는 것보다, 밖에서 돈을 벌어서 피해를 보전해 주는 게 더 좋지요. 우리나라에는 조건부 집행유예 제도가 정식으로 도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봉사명령이라는 제도를 도구로 활용해서 판결로 조건부 집행유예 제도를 도입하려고 애썼던 겁니다. 피해자와 피고인 모두가 구제받을 수 있는 윈윈 게임이 될 수 있고, 판결로 실효적 구제가 되는 것입니다.

Q. 행정처에 계실 때 사법보좌관 제도를 만들고 초안까지 기초하셨는데, 법조인이 아닌 법원 직원들이 사법보좌관으로서 관련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사법보좌관 제도는 역사적 연원이 있습니다. 1993년 윤관 대법원장 시절에 사법 개혁기구 사법제도발전위원회라는 것이 만들어지면서 여러 가지 주제가 나왔습니다. 당시에 나온 주제들이 행정법원과 특허법원의 신설, 법관이 연수원을 나와서 바로 판사가 되는 것보다 경력을 갖춘 다음에 판사가 되는 예비판사 제도를 비롯해서 10가지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0가지 모두 판사와 관련된 주제였어요. 그러다 보니 당시 법원의 직원들은 왜 우리의 권익은 보장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있었고, 일본처럼 법원 직원이 간이재판소 판사를 하게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일반 재판소(법원) 직원들 중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들을 뽑아서 간이재판소 판사를 만들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헌법은 일본과 달리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어서 간이재판소 도입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떻게든 법원 직원들의 권익을 보장해 달라는 압력이 굉장히 강했고, 결국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결정 권한은 일부 주되 재판은 하지 않도록 하는 사법보좌관 제도가 도입된 것입니다.

 그 당시엔 변호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법원 직원들 중에 사법보좌관을 임명하는 제도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변호사가 워낙 많아졌기 때문에 사법보좌관도 사실 법조인으로만 충당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지금도 현행과 같은 사법보좌관 제도가 필요한지는 의문이지만, 그 도입 연원을 이해해야 지금의 사법보좌관 제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타협의 산물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변호사 수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맞습니다. ‘그때는 옳고 지금은 그르다’고 할 수 있겠지요. 행정처에서 관련 제도 변경을 담당하고 있을 때 뉴욕 법원에 소위 제도 시찰을 하러 갔는데, 미국 판사가 법원 참여관을 변호사라고 소개해서 깜짝 놀랐어요. 변호사가 왜 참여관을 하고 있냐고 물었는데, 미국에는 변호사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우리나라는 법조인이 적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법조인이 참여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만약 변호사가 많아지면 참여관도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법보좌관도 변호사들이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도 변호사들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법원의 참여관들이나 사법보좌관들이 이제 변호사 자격을 갖춘 사람들로 채워지고, 그중에서 판사를 선발하는 시스템도 앞으로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행 법원조직법은 사법보좌관을 법원 일반 직원들 중에서만 뽑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변호사 중에서도 사법보좌관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법원 직원들은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방향이 역사의 발전이고 자유 경쟁이라는 자연스러운 흐름에도 부합합니다. 사법보좌관, 판사의 자질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Q. 김앤장에서는 주로 어떤 사건을 하고 계신가요?

 판사 생활하면서 민사재판을 70%, 행정재판을 20% 정도 한 것 같아요. 이상하게 형사재판은 적게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관련된 업무에 주로 관여하고 있는데, 행정팀, 건설팀, 관세팀, 중견기업팀, 조세전심팀 순서로 관여하고 있습니다. 좌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건을 하고 있지만, 다섯 분야를 제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업무를 하는 것이 저글링(juggling)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Q. 프로필상 취미는 ‘운동’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30년 동안 테니스, 볼링, 달리기에 탐닉했는데, 무릎이 안 좋아져서 전부 그만두었습니다. 지금은 수영, 헬스, 걷기, 골프, 스트레칭, 이 다섯 가지를 조금씩 조금씩 합니다. 여러 가지 운동을 해 보니, 몸에 제일 좋은 운동은 수영입니다. 두 번째가 스트레칭이고요. 세 번째가 실내 자전거, 그다음이 걷기, 마지막이 골프인 것 같습니다. 골프는 너무 재미있기는 한데 몸이 아파요. 치고 나면 허리도 아프고, 무릎에도 안 좋은 것 같고, 몸에 안 좋다는 걸 스스로 자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선행 인터뷰에서 보면 ‘행복’에 관심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럼요. 평생 그랬죠. 서른까지는 열정이나 삶의 예술성 같은 것을 추구했습니다. 성공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 이후부터 이순(耳順)까지는 사랑과 행복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던 것 같아요. 성공보다 ‘행복’이나 ‘사랑’이 훨씬 더 높은 가치더라고요. 그런데 60이 넘으니 행복을 추구하기가 조금 힘이 듭니다. 한계효용체감이랄까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경험해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좀 들어요. 요즘은 더 이상 그 이전만큼 행복하거나 재미있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신체적인 것도 전과 다르고요. 그래서 요즘은 ‘행복’을 ‘감사’로 바꾸고, ‘사랑’도 ‘존
중’으로 바꿨습니다. 예전만큼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더라고요(웃음). 전에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지향하면서 제법 근접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안 되더라고요. 여행도 그렇고요.

Q. 제일 좋았던 여행지는 어디였나요?

 맨 처음에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상당히 감동적이었지요. 너무나 다른 세계라고 느꼈으니까요. 그다음은 미국에서 1년 살면서 아이들이 조그마할 때 차 뒤에 태우고, 밥통 하나와 김치를 싣고 미국 여행을 하던 때가 기억에 남아요. 조그마한 아무 시골 마을에 가서 자고, 로키산맥을 건너고, 캐나다까지 갔던 경험들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알래스카나 뉴질랜드, 발리, 양쯔강 크루즈, 몰디브 정도가 좀 특이한 여행지로 기억에 남습니다.

Q. 요즘 가장 큰 만족을 느끼시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수영장이나 목욕탕에서 막 물속에 들어갔을 때 편안하고 만족감을 느낍니다. 또 손자들과 놀이터에서 놀거나, 가족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순간적으로 큰 행복감을 느끼지요. 깨질 것 같은 행복이지만 가장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밤에 혼자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와인 한잔할 때 정말 행복하지요.

Q. 다시 태어나신다면, 그때도 법조인이 되실 건가요?

 예, 법조인은 좋은 직업이잖아요. 상당히 보람도 있고, 사실 사회적 혜택도 많이 받죠. 운동이나 예술 분야는 타고난 자질이 필요하지만, 법조인은 그렇지 않죠. 사업가나 정치가는 아무래도 부침이 상대적으로 큰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꼭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법조인은 크게 성공하지도 않고 크게 몰락하지도 않는, 어떻게 보면 인생의 풍랑이 비교적 적은 직업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은 것 같아요. 판사든 변호사든 마찬가지죠. 다시 태어나면, 기업인이나 금융계 진출같이 이왕이면 다른 직업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법조인이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서는 만족합니다.

Q. 시간 터널을 발견해서 1983년 초임 판사 이재홍을 딱 5분 동안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으신가요?

 인생을 최대한 즐기고, 남에게 행복을 최대한 줘라. 이 말은 실제로 제 인생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자기 인생의 순간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특히 자신의 일을 즐기라고 이야기해 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사건의 당사자(혹은 의뢰인)에게 행복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Q.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2022년의 후배변호사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첫째는, 이제는 전문분야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변호사 개개인이 나름의 특성과 장점을 가져야 합니다. 두 개 분야 정도에서 전문성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의 분야만 전문으로 하면, 그 분야가 수요가 없어지거나 끊어질 수도 있고, 개인의 경쟁력이 상실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한두 개 정도로 자신의 전공 등과 관련하여 강점을 가지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둘째는, 자신의 일을 즐기고 보람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변호사 일이라는 것이 돈만 벌기 위해서 한다면 너무 비참합니다. 앞선 답변이랑 같은 말이지만, 변호사 일 자체가 자신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하고, 타인에게도 도움이나 행복을 줘야 합니다. 그래야 당사자의 일을 내 일 혹은 내 가족의 일이라는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해 줄 수 있겠지요.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간사

황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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