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V 감염인 장애등록 소송
2024년 4월, 대구지방법원 앞. 대구지역의 HIV/AIDS 인권단체들과 장애인권 단체들이 모였다. HIV 감염인도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인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소송을 시작한 것이다. HIV/AIDS 인권단체들은 오랫동안 HIV 감염인에 대한 장애 인정의 필요성에 대해서 논의해 왔다. 외국의 경우에는 차별금지 · 구제의 대상으로서 ‘HIV 감염’을 ‘장애’로 인정하여 HIV 감염인에 대한 보호를 두텁게 하는 방향으로 법리 및 제도가 발달되어 왔다. 한국의 경우에도 아직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 전이고,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을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장애인 차별로 인정받기 위해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제기한 사례가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국립재활원에서 HIV 감염을 이유로 입원을 거부당한 사건에서, 이를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장애인 차별로 인정하여 시정권고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이번 소송은, 직접적으로는 HIV 감염인에 대한 장애등록 인정을 위한 소송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현재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인 등록체계에 대한 문제제기의 의미도 있다. 현재 장애등록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규정된 장애 유형에 한정해서 인정되고 있으며, 장애 유형을 다 포괄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래서 장애인권 단체들은 오랫동안 현행의 일률적인 장애등록 체계가 아니라, 복지서비스별 개별 등록체계로 변경해서 복지서비스 지원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HIV 감염인의 경우에도, 신체적 · 정신적 · 사회적 상태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장애인정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HIV/AIDS가 1990년대까지는 면역체계의 악화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질환이었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치료제가 획기적으로 발달하면서, 꾸준히 치료하면 바이러스 미검출 상태까지 유지할 수 있는 ‘만성질환’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HIV 감염을 이유로 한 신체적 · 기능적 장애 보다는 사회적 낙인과 차별로 인한 사회적 제약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소송 당사자인 H 씨는 상대적으로 고령이고, HIV 감염과 직 · 간접적인 합병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고, 보행 장애를 겪고 있다. 무엇보다 HIV 감염인은 신체적 증상이 없어도 의료영역, 고용영역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고, 사회적인 고립으로 인한 우울증 등 정신적 장애를 겪기 쉽다. H 씨 역시,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지원뿐만 아니라 장애수당 · 장애인일자리 · 장애인직업재활시설 · 장애인자립자금 대여 등의 복지서비스를 통해 자립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HIV 감염인 당사자들은, 이번 소송을 통하여 건강악화로 인한 장애를 가질 상황을 대비하고, 다양한 복지정책을 통해 삶의 질이 향상되길 바라며, 의료 · 고용차별의 완화와 사회적 낙인이 완화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소송을 계기로, 장애 범주에 대한 질문과 복지서비스에서 배제된 HIV 감염인의 현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복지서비스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닿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장서연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