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살아가면서 가급적이면 만나지 말아야 하는 변호사분들인데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웃음). 안녕하세요! 밴드 레이지본입니다!
Q. 언제, 어떻게 밴드를 시작하게 되셨을까요?
1997년도에 지금은 탈퇴한 보컬 노진우가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밴드가 시작되었고, 이후 약간의 멤버 교체를 거쳐 정식 원년 멤버 격인 노진우, 준다이, 임준규, 안경순, 김석년으로 멤버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뭔가 프로페셔널하게 음악을 하겠다기보다는 ‘친구들과 공연하면서 즐겁게 놀자’라는 생각이 더 컸어요. 놀다 보니 역사적인 펑크 라이브 클럽 ‘Drug’에서 크라잉넛, 노브레인에 이어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앨범을 만들고 발매했죠. 그때부터 정식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레이지본은 ‘게으름뱅이’라는 뜻이죠. 이름이 무색하도록 너무 성실하게 활동하고 계신데요. 팀 이름을 짓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밴드 이름을 지은 노진우의 말에 따르면 계기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정말 별거 없습니다. 영어 사전을 무작위로 펼쳐서 보였던 글자가 바로 Lazybone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우리와 결이 비슷했던 크라잉넛, 노브레인, 쟈니로얄 같은 팀들 이름이 4글자로 되어있었기에 잘 됐구나 싶었습니다. 거기에 알파벳 ‘Z’가 들어가니 뭔가 그게 멋있었습니다.
Q. 레이지본 하면 공연에서의 마르지 않는 에너지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젊은 감성과 에너지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즐거움 아닐까요. 저희가 공연을 대하는 태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신나고 즐겁자’입니다. 무대에서 관객들과 함께하는 웃음을 좋아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장난스럽다보니 그런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이는 들어도 철은 안 드는 것 같고, 서로 짓궂은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면 그냥 어린애들 같죠.
Q. 4월에 ‘원더랜드’와 7월에 ‘나비야’를 발표하셨어요. 새로운 곡을 발표하면서 고민이 있었다면 어떤 것들일까요?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먼 옛날 맨 처음 곡을 만들었을 때부터 새로 만든 곡을 작업하는 오늘까지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좋은 음악의 기준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에 가까운 고민부터 ‘너무나 다양해져버린 음악시장과 너무나 빨리 변해버린 음악산업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같은 현실적 고민까지, 종류는 다르지만 매 순간이 고민의 연속입니다.
최근에는 보통 밴드를 처음 만들 때 하는 ‘우리가 진짜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인가?’라는 고민도 다시 해봤습니다. 그런데 보통, 고민들은 뚜렷한 답은 없죠. 그래도 꾸준히 움직여야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경험상 답도 명확하지 않은 고민 때문에 멈춰버리면 아주 안 좋은 상황으로 번지더라고요. 그래서 레이지본은 매일매일 고민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Q. 신곡 ‘나비야’의 ‘나비야 내가 가시를 빼줄게’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입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셨는지 알려주세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뜻하지 않게 상처받고 여기저기 다치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씩 우리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날카로워지고, 이빨을 드러내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공격적인 방어기제로는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가 마음을 열고 감싸안아 줘야 하죠. 이 곡은 그런 우리들에게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Q. 많은 분들이 레이지본 하면 떠올리는 ‘Do It Yourself’나 ‘어기여차’ 같은 곡들은 삶의 방식에 대한 메시지가 뚜렷한 편이라고 생각됩니다. 멤버들 각각의 삶의 태도나 방식을 소개해 주신다면?
준다이 -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주의입니다. 삶은 힘든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우리가 고생하는 이유는 행복하고 즐겁기 위해서입니다. 놉시다!
안경순 - 락앤롤 앤 피싱!!!
임준규 - 저는 삶의 태도가 불성실한 것 같습니다(웃음). 어제보다 조금 더 성실해지면 내일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특히 영화나 드라마 등 다양한 OST 활동을 많이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오래전 영화 ‘킬러들의 수다(2001년 장진 감독 作)’부터 최근 ‘해치지 않아(2020년 손재곤 감독 作)’까지 영화와 드라마 OST 작업을 종종 진행했습니다.
저희가 리메이크한 핑클의 루비라는 곡을 영화 ‘후아유(2002년 최호 감독 作)’ 음악감독님이 듣고 너무 재미있고 좋다며 이런 분위기로 소방차의 ‘사랑하고 싶어’를 편곡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도 있었죠. 보통 OST 작업은 이미 발표된 음원을 사용하거나 새로운 곡 의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영화 ‘똥개(2003년 곽경택 감독 作)’ OST 작업은 음악감독님이 만든 노래를 저희가 편곡, 연주했던 기억도 나네요.
Q. 20년이 넘게 활동하시면서 정말 수많은 곡들을 발표하셨죠. 공연마다 레퍼토리를 결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기준을 살짝 공개한다면?
‘신나고 즐겁자’라는 공연의 모토대로 관객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관객의 연령대와 성향을 고려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연령층이 좀 높으신 분들이 많다면 그분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설운도 형님의 ‘사랑의 트위스트’같은 레이지본 표 리메이크 곡들을 좀 더 추가시키는 편입니다. 물론 록 페스티벌이나 라이브 클럽 공연 같은 경우는 온전히 저희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레퍼토리를짜게 되죠. 언젠가 여력이 된다면 법적인 음악도 만들어서 변호사분들이 모인 공연에서 법적인 노래로 레퍼토리를 구성해 보겠습니다(웃음).
Q. 산업재해를 주제로 한 ‘피라미드’ 같은 노래를 생각해보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 레이지본의 펑크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에는 즐거움이나 행복 말고도 말하기 민감한 주제의 분노와 슬픔도 존재합니다. 과거에는 문화, 사회적 규제 때문에 민감한 주제에 대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는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자기 규제가 더 많이 작용하여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졌죠. 때문에 가뜩이나 힘든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더 외롭게 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중이 반기지 않을 수도 있다거나 안 팔릴 거 같다는 이유로 세상에 존재하는 일들을 외면하거나 마음의 소리를 표현하지 않고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Q. 그동안 수많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셨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었다면 언제일까요?
무대에 오른 횟수가 많다 보니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고, 기억에 남는 공연들도 정말 많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연을 뽑자면 아무래도 2002년 월드컵 당시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거리응원전 공연입니다. 시청 앞 광장부터 대한문까지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연주하는 월드컵 응원가 ‘우리의 힘을 - go west’에 맞춰 뛰기 시작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앞쪽 관객들과 뒤쪽 관객들의 점프 타이밍이 달랐어요. 그 광경을 무대에서 보는데 마치 파도처럼 보였어요. 그때 그 붉은 물결은 아직도 잊지 못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영상에서만 보던 해외 록 페스티벌도 부럽지 않은 규모였어요. 모든 공연에서 관객들의 에너지가 저희에게 전달되는데, 그날의 에너지는 정말 엄청났습니다. 무대에서 딱 한 곡을 하고 내려오는데 목은 다 쉬고 흥분 상태에서 진정이 안됐던 기억이 남아 있네요.
Q.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신곡 언제 나오냐’와 ‘다음 공연 언제냐’라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어요. 신곡은 얼마 전에 나왔으니, 다음 공연은 언제 예정이신가요?
7월에 신곡 ‘나비야’를 발매했기 때문에 다음 신곡은 좀 늦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공교롭게도 지금 열심히 준비 중에 있습니다.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말할 수 있죠. 조만간 또 다른 신곡으로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신곡 발매에 맞춰 저희가 올해부터 만들고 있는 ‘요절복통 레이지본’ 시리즈 공연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물론 그 사이에 크고 작은 클럽 공연들과 지방 공연들도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레이지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일정은 저희 공식 홈페이지나 SNS 계정을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 처음 결성 후 벌써 25년이 훌쩍 지나, 30주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30주년을 앞두고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워낙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보니 지금부터 미리미리 뭔가 준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마 지금 엄청 멋진 무언가를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해도 그때가 되면 엄청 촌스러워지거나 쓸모없어지지 않을까요? (웃음) 30주년이 되었을 때 이 세상이 AI와 전쟁을 하고 있을지, 외계인과 같이 살고 있을지, 아니면 지금과 별다르지 않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때 가서 상황에 맞는 적절한 무언가를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Q. 언젠가 서울지방변호사회의 행사에서도 레이지본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변호사분들을 만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짜릿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각종 송사에 휘말려서 변호사분들을 만나게 되는 그런 일은 절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공연장에서만 뵙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다양한 곳에서 우연히 저희를 만나면 “회보에서 인터뷰 봤어요!”라고 말씀하시면서 다가와 주세요. 물지 않습니다. 생긴 건 이래도 착한 애들이랍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 변호사라는 직업이 곤란한 상황에 처한 의뢰인을 대변하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저희도 팬들의 감정을 대변할 수 있는 음악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변호사 같은 밴드가 되어보겠습니다. 다가오는 공연들과 신곡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리며, 인터뷰 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연장에서 만나요!
● 인터뷰/정리 : 김유중 본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