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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국민참여재판 이야기

장경아 승인 2019.07.31 10:06:29 호수 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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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처음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소재로 한 ‘배심원’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그 영화를 보다보니 문득 2년 전 처음으로 국민참여재판에 공동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참여했었던 일들이 떠올라 그 기억과 경험에 대하여 써보려 한다.

2년 전인 2017년 3월 어느 날 평소 친분이 있는 선배변호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는데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남편을 살해한 살인사건의 공동변호인으로 참여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연수원을 수료한 이후 형사사건 중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사건은 거의 수행해 본 적이 없었고 여러 변호사들이 모여서 함께 공동변호인으로 참여하는 사건이어서 선뜻 참여하겠다고 답하였다.

사건의 내용은, 30년이 넘는 결혼생활 동안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피의자가 허락을 받고 친구를 만나고 온 사건 당일에도 남편으로부터 또다시 가정폭력을 당하게 되자, 집에 있는 수석으로 남편을 내리쳐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었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발생한 강력사건으로, 여타 지역보다 보수적이라는 평이 있었던 그 지역에서는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고 경찰수사단계였던 터라 일부 변호사들은 먼저 선임계를 제출하고 일정상 조사입회가 가능한 변호사의 입회와 사건진행 보고 등으로 공동변호를 시작하였다.
이 사건은 총 6명의 공동변호인단으로 꾸려졌고, 공동변호인단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는 조사입회 당시의 구체적인 메모와 접견 후기가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공동변호인단은 당번을 정해 여러 차례 피의자를 접견하였고, 필자도 다른 변호인들과 함께 직접 접견을 하기도 하였다.

수사단계에서부터 사실인정 여부와 법리 주장에 대하여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친 끝에 이 사건에 대하여 정당방위 주장, 과잉방위 주장, 심신 미약 등 책임감경사유 주장 등 변론 방향을 정하였고 공소가 제기되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을 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공소가 제기되고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는 의견서를 제출하니, 사건은 국민참여재판 관할 법원으로 이송되었고, 이송된 법원에서 여러 차례 공판 준비 기일을 거쳐 증인신청 및 전문심리위원에 대한 의견, 정신감정신청 등 쟁점이 정리되었으며, 피고인 측에서 신청한 정신감정신청이 받아들여져서 피고인이 정신감정을 위하여 감정 병원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당시 형사사건에 대한 많은 경험이 없었던 나는 피고인에 대한 정신감정을 신청하면 모든 피고인이 공주치료감호소에 수용이 되어 정신감정이 진행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재판 과정 중 알게 된 사실은 공주치료감호소에 여성 피고인을 감정 유치할 곳이 없어서 법원 감정 병원 중 보호시설이 있는 곳에서 정신감정을 진행하게 될 것 이라고 재판부에서 알려주었다. 피고인에 대한 정신감정은 약 한 달에 걸쳐 진행되었고 정신감정 의견서가 법원에 도착한 이후에 국민참여재판 일정을 잡기로 하였다.

기다리던 감정의견서가 법원에 도착하고 국민참여재판 일정이 잡혔다. 배심원 선정을 위한 질문지 작성, 증인신문사항 작성, 전문심리위원에 대한 질의사항 및 감정 증인에 대한 질문사항 작성, 기록 및 관련 동영상과 녹음 파일을 다시 검토하여 국민참여재판 당일에 사용할 PPT 완성 등 여러 차례 회의와 함께 본격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재판 전날에는, 공동변호인들과 다음날 재판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회의를 밤늦게까지 하고 헤어지기도 했다.

국민참여재판을 준비하면서 특히, 검찰 측에서 증거로 선혈이 낭자한 살인사건 현장 사진, 부검 사진, 보고서 등을 PPT로 띄워 배심원에게 보여 줄 것을 예상했던 터라, 이에 대하여 일반인인 배심원들에게 좀 더 효과적으로 피고인 측에서 주장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하여 PPT의 내용에 대하여 고민을 많이 하였고 의논도 많이 하였다.

재판 당일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 국민참여재판이 열리는 법원으로 출발하였다.
재판 일정은 하루. 오전 9시가 되자 법정에는 배심원선정 절차와 방청을 위해 오신 분들로 법정이 가득 찼다. 재판부에서는 배심원선정 절차를 진행하기 위하여 배심원 후보자로 오신 분들 외에는 법정 밖으로 퇴정을 요청하였고, 드디어 배심원 선정 절차가 시작 되었다. 검사 측과 피고인 측 변호인들이 번갈아 가면서 질문을 하여 배심원으로 배제할 사람 등에 대하여 재판부에 의견을 제시한 후 최종배심원과 예비 배심원 1명을 선정하는 절차가 마무리되었고, 본공판이 시작되었다.

변호인단에서 PPT를 준비했던 것처럼 검찰 측에서도 PPT를 준비해 왔고, 형사 재판 절차에 따라 국민참여재판도 진행이 되었다. 검찰 측에서는 법정 안의 스크린에 PPT를 띄운 상태에서 공소사실을 진술 하였고, 이에 대하여 변호인 측에서도 모두진술을 하면서 변호를 시작하였는데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고, 점심시간 이후 오후부터는 증거조사와 증인신문 절차를 진행하기로 하여 법원 부근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였다.

재판부에서는 서울에서 출발한 변호인단을 배려해 주셔서 조정실 한 곳을 당일 변호인단이 사용할 수 있었고 이곳에서 오후 증인신문 절차를 준비하였다.
오전 재판을 진행하면서 배심원단 중 피고인 측 주장 내용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는 배심원 몇 분이 계셨는데, 특히 젊은 여성 한 분은 변호인이 의견 진술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하는 모습이 역력하여 저분이 예비배심원이 아니기를 바라기도 하였다.
오후에는 증거조사가 진행이 되었는데, 증거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배심원석의 연세가 지긋하신 배심원 한 분이 졸음을 참으며 감기는 눈을 뜨려고 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였고, 이어지는 증인신문과 주변호인 의견 진술 시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배심원도 보였다.

이 사건에 전문심리위원으로 이수정 교수가 참여하였었고, 국민참여재판 당일에는 변호인 측의 증인으로 출석하였다.
평소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에서 형사사건에 대하여 이수정 교수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더욱 그분의 증언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마주 보이는 배심원석에서도 모두 그분의 증언에 집중하고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변호인 측, 검찰 측의 질문에 대하여도 빠른 말투로 명확하게 답변을 해 주었고 재판부의 질문에도 기록과 진료 기록, 면담 내용 등을 언급하면서 막힘없이 명쾌하게 답변을 해 주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역시 그알(그것이 알고 싶다)의 요정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저녁시간에는 양형 증인들에 대한 신문절차가 끝나고 검찰 측의 구형과 피고인 변호인단의 최후 변론을 끝으로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변론이 종결되었고, 평의 시작 전에 평의에 참석하지 않는 예비배심원이 누구인지 알려주었는데, 하필 재판 내내 피고인의 주장에 공감해 주던 그 젊은 여성분이 예비배심원이었다.

그분이 예비배심원이라는 사실에 실망과 안타까움이 더해진 상태로 배심원단의 평의가 시작되었다.
배심원단의 평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과연오늘 안에 판결이 선고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가 ‘2시간 남짓 남은 오늘 안에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다가 ‘오늘 안에 판결 선고가 안 나와도 되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한참 머리가 복잡하다가 오늘 안에 판결 선고가 안 나올 경우를 대비하여 주변 숙소 예약 확인을 하기도 하였다.

밤 12시가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법정으로 들어오라는 실무관의 말을 듣는 순간 피곤함과 졸림도 사라졌고 조정실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배심원들의 만장일치된 평결로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는 판결 선고가 나오자 피고인은 울기 시작하였고 피고인의 가족 또한 눈물을 글썽거렸다.
판결 선고를 듣자 한편으로는 안도감에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은 채, 피고인의 가족들과는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서울로 돌아오니 새벽 3시였다. 사건은 그 후로 검찰의 항소와 상고로 항소심, 상고심까지 진행이 되었고 대법원의 상고기각 판결로 종결이 되었다.

나의 첫 국민참여재판의 기억은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긴장감과 안타까움, 그리고 안도감으로 생생히 남아 있고, 앞으로 다시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다시 한번 하게 된다면,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열심히 준비하여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지 않도록 피고인을 변호해 보고 싶다.

장경아 변호사
●법무법인(유) 효성

장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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