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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를 H.O.T.라 부르지 못하고...

이재경 승인 2019.07.31 10:48:25 호수 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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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그 옛날 조선시대에서나 가능했었던 서자 홍길동의 기구한 사연이 2019년에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니... 1990년대 중반부터 가요계 천하통일을 이룩했던 아이돌의 원조 H.O.T., 그들의 이름은 대한민국 가요계의 팬덤 문화를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1995년 갑작스레 은퇴한 서태지의 팬덤이 잦아들 무렵 H.O.T.는 서태지의 후예처럼 ‘전사의 후예’로 혜성같이 등장하여, ‘캔디’, ‘행복’, ‘We are the Future’ 등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수많은 소녀팬들을 웃고 울렸다. 짧고도 굵게 각종 차트와 상을 석권한 H.O.T.는 소속사와의 계약문제 등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2001년 해체하였으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2018년 재결합하여 콘서트까지 성황리에 개최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콘서트에서 ‘High FIve Of Teenagers’라는 풀네임만 사용해야 했고, ‘H.O.T.’라는 애칭 약어는 사용할 수 없었다.

‘H.O.T.’라는 상표-서비스표권은 당시 SM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였던 김모 씨가 1996년 경 5명 멤버들의 동의하에 출원 후 지금까지 권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문희준, 강타, 토니 등의 멤버들이 자신들의 이름인 ‘H.O.T.’ 이름을 사용하려면 김 씨의 허락, 즉 사용료의 지급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름에 대한 사용료를 내지 못하면 H.O.T.를 H.O.T.라 부르지 못하는 기상천외의 촌극에 H.O.T. 멤버들도 그 팬들도 과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콘서트 기획사는 김 씨에게 로열티를 지급하고 H.O.T.를 사용하려고 했으나, 서로 간극이 컸기 때문에 사용료 가격을 합의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김 씨는 방송 프로그램 등 팬들을 위한 비영리목적이라면 대가 없이 사용하게 했으나, 유료공연, 굿즈 판매 등 영리 목적이라면 사용료의 지급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개인방송의 홍보를 위하여 H.O.T.라는 이름을 무단으로 사용한 멤버 장우혁에 대해서는 콘서트 기획사와는 별도로 상표권 침해로 고소했다. 과거, 함께 한솥밥을 먹으면서 거대한 SM제국을 건설했던 식구들끼리 너무 볼썽사나운 꼴이 아닐 수 없다. 소속사와 결별 시 아이돌, 밴드의 이름을 둘러싼 분쟁은 신화, 비스트, 티아라 등에게도 발생하였다. 신화는 2012년 상표권자인 기획사를 상대로 제기한 양도소송을 통하여 2015년에서야 어렵게 ‘신화’ 이름을 돌려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룹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다른 이름으로 변경해야 하는 촌극을 벌였다. 비스트는 ‘하이라이트’라는 생뚱맞은 이름으로 바꿔 활동을 시작했어야 했다. 조선시대 서자 홍길동의 불명예가 일부일처제가 확립된 현대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셈이다.

 트랜스젠더 가수 1호인 ‘하리수’가 2003년 소속사와의 전속계약관계를 정리하게 되자, 소속사는 ‘하리수’라는 이름을 상표 등록하였으므로 다른 이름으로 활동할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하리수의 소속사는 하리수라는 이름에 대한 상표권을 확보한 후 다른 트랜스젠더 연예인을 하리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할 계획이었지만, 소속사의 상표 등록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하리수는 자기의 이름을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 걸그룹 티아라의 경우, 전 소속사가 티아라(T-ARA) 상표권 출원을 신청했지만 특허청은 “‘티아라’는 널리 알려진 저명한 연예인 그룹 명칭으로, 소속사에서 출원한 경우에 해당되는 상표이므로 상표법 제34조 1항 제6호에 해당하여 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결정하여 소속사의 횡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돌의 경우, 기획사들이 기획하는 단계에서 이름, 정체성을 정하여 육성하므로 아이돌에게 그만큼 자본과 노력을 투자한 기획사가 법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이름 소유권/사용권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육성 과정을 견뎌낸 멤버들의 지분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며, 형평성과 윤리적 측면을 따진다면, 멤버들에게도 일정 부분의 권리가 있을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표준계약서를 비롯하여 실제 체결되는 전속계약서에 상표권 관련 조항은 연예인에게 전적으로 불리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이는 기획사의 투자 및 육성 노력을 감안할 때 현행 관련 조항은 그다지 불공정하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그러나, 작금의 H.O.T.사태는 분명 합리적이지 않다. 이를 거울삼아 앞으로는 아이돌의 구성 단계에서부터 미리 소속사와 멤버 사이에 상표권 등 무형자산에 대하여 공정하면서 명확한 계약을 체결하는 풍토가 자리잡아야 한다. 사용료 없이 무단사용하는 행위도 허용될 수 없지만, 그룹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거나 그 가능성이 없는데도, 상표를 등록한 권리자라는 이유만으로 고가의 사용료를 요구하는 자세도 권리의 남용으로서 비난받게 된다. 그 이름을 절실하게 사용해야 하는 멤버들이 사용하지 못함으로 인한 공백은 사회 전체적으로 엄청난 마이너스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무엇보다 팬들의 가슴에 홍길동의 설움보다 더 크고 더 뼈아픈 대못을 박는 것이다.

도메인 남용행위인 사이버스쿼팅에 대한 규제와 같은 조항이 없는 이상, 현행 법률의 잣대만으로 H.O.T. 분쟁은 H.O.T.멤버들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양 측이 한걸음 물러나서 원만히 분쟁을 해결한다면, 추후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본받을 선례가 될 것이다. 그룹 이름을 둘러싼 다른 분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법률이나 공적 기관에서 권리남용과 상표권의 활용 공백에 대하여 일일이 간섭하기 전에 당사자들이 먼저 건전한 상식에 입각하여 사회적 효용을 상호 극대화하는 배려의 자세로써 상표권의 진정한 가치와 역할을 찾아주는 풍토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특허청이나 법원에서 굳이 “호형호부를 허하노라” 를 판단하는 광경은 보고 싶지 않다...

이재경 교수
● 건국대 글로벌융합대학

이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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