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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교수 인터뷰

임나진 승인 2020.01.31 13:34:51 호수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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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및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1993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년간 판사로 근무하다가(판사 12년, 사법연수원 교수 1년, 부장판사 7년), 이화여대 로스쿨에서 2018년부터 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석사는 보건학 석사(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와 법학 석사(컬럼비아 로스쿨)를 마쳤고, 박사는 법학 박사(고려대학교 대학원)를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고교 졸업 후 받은 4개의 학위를 서로 다른 대학에서 받게 되었습니다.

보건학을 전공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사법연수원 수료 이후 의료보험에 관련된 분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제도와 의료정책에 많은 기여를 하신 우초 문옥륜 교수님과 인연이 닿아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정책을 전공하여 보건학 석사(Master of Public Health)를 받게 되었습니다. 문 교수님은 제가 결혼을 할 때 주례를 맡아 주셨고, 지금도 종종 뵙고 있습니다.

판사 시절 Columbia University로 유학을 간 것이 계기가 되어 경제법을 전공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저는 미국 유학이 외국에 처음 가 본 것일 정도로 해외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미국 로스쿨에서 보건법(Health Law) 수업을 듣는 한편, 호기심으로 독점금지법(Antitrust Law)을 수강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에서 의료분야에 대한 독점금지법 연구가 활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석사과정에서 보건학을 전공한 후 다시 법학을 하고 싶었는데, 박사 논문 주제로 의료분야에 대한 경쟁법을 쓰게 되면서, 보건학과 법학이 조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박사과정에서 경제법을 전공하였습니다.

재판하신 사건 중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2013년부터 2016년간 공정거래사건을 전담하면서 많은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가장 기억이 남는 사건은 비료 판결(서울고등법원 2013. 10. 18. 선고 2012누15632 판결), 라면 판결(서울고등법원 2013. 11. 8. 선고 2012누24223 판결), 잠수함 판결(서울고등법원 2013. 8. 30. 선고 2012누14325 판결) 등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위원 모임

 특히 비료 판결은 경성카르텔과 관련시장의 문제에서 종전의 수입차 판결이나 음료수 판결이 가진 난점을 극복하고 우리 판결이 국제적인 정합성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고, 경제학자들의 관심도 많았던 판결이라서 기억에 남습니다. 라면 판결은 정보교환과 부당한 공동행위에 관련된 저의 고민이 반영된 판결이었습니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수용되지 않게 됨에 따라 정보교환을 이용한 부당한 공동행위가 인정되기 어렵게 되었고, 대법원 판결이 학계나 실무에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배경에서 정보교환에 관련된 내용이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포함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일종의 회피 사유가 있어서 이 부분 개정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잠수함사건은 잠재적 경쟁관계론과 입찰에서 경쟁제한성의 내용에 대한 저의 고민이 대법원에서 수용되어 새로 법리가 형성된 사건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공정거래법사건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조언 부탁드립니다.
다른 법률사건과 마찬가지로 법률의 이해와 선례의 적절한 인용이 중요하다는 점은 같아요. 그런데 공정거래법에서 주로 논의되는 경쟁이나 경쟁제한성의 개념은 시장을 전제로 한 개념이어서 법률가들이 처음 접할 때는 잘 다가오지 않아요. 이 점에서 시장과 경제에 대한 거시적인 시각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다른 법과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러한 차이는 조금만 경험이 쌓이면 쉽게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지식재산권법 분야 변호사들이 공정거래법을 공부하는 것을 보면 두 법이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판사 시절 서울고등법원 공정거래전담 이후 지식재산권 전담부를 맡으셨는데, 두 분야가 연계되는 지점이 있는지요?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두 법을 같이 연구하는 학자나 실무가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Hoven kamp 교수나 Posner 판사 같은 분들이 두 분야를 모두 연구하는 분입니다. 제도적 독점을 허용하는 특허법 등 지식재산권법은 독점을 경계하고 그 남용행위를 제한하는 경쟁법과 서로 교차하게 됩니다. 과거와 달리 지식재산권의 확장과 발전이 이루어지고, 다른 한편 경쟁법이 적극적으로 집행됨에 따라 이러한 현상은 더 강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여러 나라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글로벌 기업의 경우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게 됩니다. 애플과 삼성의 소송사건, 모토로라와 애플의 소송사건, 퀄컴사건 등이 모두 이러한 흐름 속에 있습니다.

한편, 공정거래법은 지식재산권 분야뿐 아니라 다른 분야와 접점이 많은 분야입니다. 손해배상, 금지청구에서 민사법과 연결되고, 형사집행에서 형사법과, 경제력 집중에서 상법과, 소송절차에서 행정법과 관련성이 높고, 세부적인 쟁점에서는 조세법의 법 원리도 공정거래법에 많이 수용되어 있습니다.

 『공정거래법 소송실무』(육법사, 2017)는 변호사들 사이에서 스터디 교재로 사용될 정도로 법리에 대해 쉽고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다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변호사들에게 이 책의 활용법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공정거래법을 담당하는 실무가들은 공정거래법 교과서가 기본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실제 사건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 스스로도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이 책은 실무가나 실무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를 위한 책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이론적 체계보다는 실무가들이 편하게 참조할 수 있도록 작성했습니다.

이 책은 앞으로도 개정판이 나오게 됩니다. 개정될 때마다 책이 두꺼워지지 않도록 종전의 내용을 빼고,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전에 나온 책을 버리지 마시고 구판과 신판을 함께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신판이 구판의 개정판이 아니라, 독립된 책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대규모유통업법 주석서』(로앤비, 2019, 공저)도 집필하셨는데, 그 주석서의 활용법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공정거래법의 특별법으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대규모유통업법입니다. 그동안 많은 실무 사례가 쌓였는데도, 연구가 부족한 분야입니다. 최근 주석서가 발간되었고, 저도 일부 조문의 주석을 작성하였습니다. 관련 법령이 문제 될 때 그 조문의 주석에 나온 사례나 쟁점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사내변호사들은 공정거래법 이슈에 관한 업무를 해야 합니다. 특히 저년차 사내변호사들이 공정거래법 이슈에 관한 전문성을 함양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연수원 등 변호사협회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경제법 판례 연구회, 서울대 경쟁법센터나 고려대의 ICR 센터에서 주최하는 세미나 등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를 포함한 일부 변호사들은 경제학 또는 회계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편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필요한 지식을 보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경제법에서 회계학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편입니다. 반면, 경제학, 특히 산업조직론은 공정거래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문제 되는 경제학은 높은 수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기본 개념을 이해할 정도면 충분합니다. 제가 법원에 근무할 무렵, 경쟁법 분야의 권위자인 미국의 David J. Gerber 교수가 한국에 왔을 때, 법경제학이 발달한 미국에서, 판사들이 어느 정도 전문적인 경제학 지식이 있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Gerber 교수의 말씀으로는 미국의 판사들이 독점금지사건을 많이 처리하지만, 경제학의 전문가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부담을 갖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산업조직학회 등 경제학자들의 학술행사에 가능한 참여하여 교류하는 편입니다.

2019년 한 해 동안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논의가 활발하였는데 교수님께서는 “공정거래법제 개선(전면 개편) 특별위원회 위원”(2018. 3.~ 2018. 7.)으로 활약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의 핵심은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2016년부터 최근까지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 자문위원을 맡아서 자문을 했습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위촉되어 위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비상임위원의 업무가 상당히 과중하여 위촉을 수락할지 고민을 했습니다만, 경쟁법을 연구하고 강의하며, 법원과 공정
거래위원회에서 모두 사건을 처리하는 경험을 갖는 것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드문 일이라서 수락을 했습니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 과정에 참여하면서 여러 의견을 제시했고, 특히 평소 지론인 불공정거래행위 개편에 관하여 독자적인 안을 위원회에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개정안에는 공정거래법 집행 절차를 개선하고, 형사집행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등 개선 방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스트레스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지나가고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스트레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제가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 연수생들에게 영화 ‘바람과 라이온(The Wind and The Lion)’에 나오는 대사인 “Nothing is certain in the world”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심리적으로 힘든 그 순간을 버티고 넘기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교수님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학자로서 늦게 시작했지만, 남은 기간 동안 경쟁법을 충실히 연구해서 이론과 실무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이해를 하였으면 합니다. 오래전부터 농담 삼아 하던 말인데요, 제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경쟁과 경쟁제한성의 개념을 더 잘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제법에 관심 있는 변호사님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매주 조금씩 관련 논문이나 판례를 읽거나, 세미나에 참여하는 방법을 권유하고 싶습니다.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많으니, 가끔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를 살펴보는 방법도 좋습니다. 보도자료, 의결서, 관련 법령이나 행정규칙이 나와 있습니다. 전문학술지는 아니지만 경쟁법 관련 주요 국내외 동향을 소개하는『경쟁저널』을 참조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인터뷰/정리 : 임나진 본보 편집위원

임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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