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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mantic Classic : 슈만의 혼인허가 소송 & 슈만 판타지 OP.17

박선영 승인 2020.05.07 14:51:59 호수 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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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로맨틱한 소송 중 하나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역시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 1839년 7월 미성년자였던 연인 클라라 슈만(1819~1896)과 결혼하기 위하여 클라라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비크를 상대로 제기하였던 혼인허가 소송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클라라를 슈만의 와이프 정도로 기억하지만, 당대의 클라라는 요즘 블랙핑크의 제니를 능가하는 수준의 클래식계의 아이돌이었다. 아름다운 10대 소녀의 화려한 연주에 전 유럽은 열광했고 팬들이 넘쳐났으며, 아버지이자 매니저이던 비크는 딸의 활동으로 쏟아지는 수익을 빠짐없이 쓸어 담았다. 반면 슈만은 비크의 수많은 제자중의 하나일뿐이었고 심지어는 손가락을 다친 피아노 덕후에 팔리지 않는 작곡가였다.

이 클래식계의 아이돌님께서 20살이 되던 1839년 돌연 9살 연상의 빈털터리 작곡가와 결혼을 하겠다고 세상에 선포하고 아빠 앞에서 드러눕는 사태가 벌어졌으니, 비크는 당연히 뒷목을 잡고 “나는 이 결혼 반댈세”를 외쳤다. 동시에 팬들 역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클라라의 남자친구를 가만두지 않겠노라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으며, 언론은 클라라의 가십으로 불타올랐다.

슈만도 슈만인 것이 1819년 9월 13일생인 클라라와 결혼“만” 하기 위해서라면 계속 연애하며 1년 6개월 동안 기다리면 미래의 장인어른과 법정에서 얼굴을 붉힐 일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보다시피 클라라는 클래식계의 아이돌로 너무나 유명했고, 슈만은 그녀와의 사랑을 만천하에 알리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 결과 슈만은 ‘혼인허가 소송’ 그 헬게이트를 열고야 만다.

이렇게 시작된 ‘혼인허가 소송’이 당대에 유명했던 것은 슈만과 클라라의 순수한 사랑 그 로맨틱함 때문이 아니라 슈만과 비크사이의 아침드라마 뺨치는 소송 진행 때문이었다.

혼인허가 소송의 진행과정에서 비크는 중재를 신청한 슈만에게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세워 중재를 무산시키기도 하고, 미성년자인 딸을 슈만이 부적절하게 꼬여냈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딸의 일기장을 훔쳐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였으며, 심지어는 딸의 연주회장에서 슈만을 비난하는 유인물을 뿌리는 등(실제로 비크는 이 사건 때문에 명예훼손으로 18일간 옥살이까지 하게 된다)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진흙탕 싸움의 진수를 보여줬다. 심지어 슈만 측 증인으로는 슈만의 X-girl friend가 등장하기까지 하며 슈만이 괜찮은 남자라고 증언을 하는 등 세상은 실시간으로 살아 숨 쉬는 막장 법정 드라마의 열기로 가득했다. 이 막장 드라마는 장장 1년 하고도 58일간 이어졌고, 애청자들마저 혀를 내두르며 지쳐 나가떨어질때 즈음 결국 슈만이 승소했다.

슈만의 최종 승소가 선고된 날은 1840년 8월 1일, 즉 클라라가 성인이 되기 약 43일 전이었고, 슈만은 굳이 클라라와 클라라의 생일(9월 13일) 딱 하루 전 날인 1840년 9월 12일에 라이프치히 교외의 작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누가 보더라도 그날 교회의 축하 종소리는 슈만과 클라라가 비크와 세상을 향해 울리는 사랑의 승전보였다.

혼인허가 소송이 승소한 후 슈만은 1840년 평소 별로 작곡하지 않던 가곡을 엄청난 양으로 작곡하였고, 1840년을 슈만의 ‘가곡의 해’라고 불렀으며, 클래식을 사랑하는 많은 로맨티시스트들은 이 가곡들을 클라라와 결혼하게 된 기쁨과 사랑에서 터져 나온 찬가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슈만의 혼인허가 소송과 관련된 곡으로 많은 사람이 이 시기에 작곡된 슈만의 가곡을 추천하곤 한다.

하지만 로맨틱 필터를 제거하고 냉철하게 바라보자. 다수의 연주자를 요구하는 교향곡이나 오랜 기간 전문적 트레이닝을 요구하는 기악곡과는 달리 ‘노래+반주’의 간단한 형태를 요하는 가곡은 비교적 작곡이 용이하고, 구매자 역시 접근이 쉽다. 즉 빠르게 만들고 쉽게 팔리는 박리다매형 상품인 것이다.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던가, 1840년 ‘가곡의 해’는 남편이 된 후 클라라를 부양하기 위해서 가곡을 작곡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가장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나갔던 ‘생계의 해’로 보는 것이 낭만적이진 않지만 합리적인 해석이라는 것이 음악학자들의 견해다(물론 가곡이 슈만의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이었다고 해서 슈만의 가곡에 클라라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이를 부양하기 위한작곡이라고 하여 그 곡에 사랑이 담겨있지 않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슈만의 혼인허가 소송을 상징하는 곡을 한 곡 고른다면, 가곡보다는 슈만의 클라라에 대한 격정이 듬뿍 담긴 R. Schumann Fantasia Op. 17.(슈만 판타지 오푸스 17)을 추천하고자 한다.

슈만 판타지는 크게 3악장으로 구성되는데, 1악장은 비크의 반대로 클라라와 떨어져 지내던 1836년에 작곡된 부분으로 슈만의 설렘, 사랑, 불안, 슬픔과 격정의 감정이 폭발하는 가운데 선율이 그의 감정과 같이 폭풍처럼 흘러가는 곡으로, 가사사건 서면을 쓸 때 감정이 휘몰아치는 창의적 기술이 필요하다면 추천하는 노동요이다. 1839년에 작곡된 슈만 판타지의 2악장은 분위기가 확 바뀌어서 개선장군의 앞길에 꽃을 뿌리는 모습이 연상되는 희망차고 발랄한 곡으로 슈만이 클라라와의 사랑을 얻고 그녀와의 관계가 만천하에 공표되면서 “그래 그녀는 내 사랑이다”라는 자신감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곡이다. 같은 1839년에 작곡된 마지막 3악장은 잔잔하고 평화로운 곡으로 슈만이 클라라와의 사랑 속에서 확신을 가지고 서로의 앞에 놓인 어려움을 조용히 헤쳐 나가고자 하는 고요한 결심으로부터 나오는 안정감이 느껴진다.

클라라의 존재가 슈만의 끊임없는 예술적 영감과 열정의 근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록 슈만을 오랜 기간 괴롭혀왔던 정신병과 1854년의 자살 시도로그 예술의 여정은 멈추는 듯했으나, 슈만 판타지는 그들이 사랑했던 시간과 1839년 법정에 섰던 그들의 뜨거운 결기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뒷이야기를 알게 된 김에 한번 가볍게 들어보길 모두에게 추천한다.

박선영 변호사
●법무법인 해마루

 

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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