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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변호사 인터뷰

김인회 승인 2020.06.30 17:41:24 호수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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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덕수의 박수진 변호사는 여성인권과 젠더폭력에 관하여 사회적으로 큰 반향과 변화를 이끈 사건들을 맡아 피해자 대리를 해 오고 있다. 낙태죄 헌법소원, 영화계 성폭력사건, 최근엔 텔레그램 성착취사건 공동대책위 참여까지. 2019년에는 ‘미래의 여성지도자상’을 수상하기도 한 박수진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법무법인 덕수의 박수진 변호사입니다. 여성인권과 젠더폭력 관련 사건에 관심을 두고 피해자 대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Q 본래 전공이 인문학과 여성학이던데, 변호사가 되기로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대학 때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하면서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여성학 공부를 하고 싶어졌죠. 한 언론사에서 수습기자 생활도 잠깐 했는데, 원래 하고 싶었던 여성학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성학과 대학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여성학 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실천하며 살 수 있을까, 나의 문체와 지향을 지키면서 사회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내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무래도 전문성과 전문적인 직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무엇보다 제가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잘 살릴 수있는 일이 변호사라고 생각했습니다.

Q 특별히 관심을 둔 여성인권 관련 사안이 있으셨나요?
제가 여성학 논문을 쓰려고 계획했던 주제가 낙태죄였습니다. 2011년 즈음에 ‘프로라이프’(prolife, 낙태반대운동) 활동이 활발했고, 낙태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습니다. 로스쿨에서 공부하던 2012년에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합헌 결정이 나오는 것을보고, 변호사가 되면 낙태죄에 관한 소송에 참여하거나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Q 작년 낙태죄 헌법소원에도 참여하셨죠.
낙태죄가 헌재에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여성위원회에서 여성인권 측면에서 사건을 변론하기로 하면서 저도 대리인단으로 참여했습니다. 헌재의 낙태죄에 대한 결정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2012년 헌재 결정의 소수 의견에서 낙태를 처벌하는 것이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의견은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른 기본권 침해를 주장해서 판단을 받아보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임신 중지 결정을 할 수 없음으로 인해 침해되는 평등권, 건강권, 사회권적 모성보호에 관한 권리 등 우리 헌법에서 침해되는 기본권을 최대한 도출해서 주장하기로 했습니다. 국내 연구는 많지 않아서 6개월 정도 해외 사례들로 세미나를 하며 공개 변론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을 때는 정말 좋았습니다. 헌재 의견에서 저희가 기재한 것들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낙태죄를 바라볼 때 생명권과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깨고, 두 권리가 배타적인 충돌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봐야 한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들이 태아의 생명을 경시했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그러한 죄의식을 주입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는 확인을 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지금은 올해 12월 말인 입법 시한에 맞춰 입법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여성 시민단체와 같이 작업하고 있습니다.
 

Q 미투사건도 많이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계 성폭력사건들, 대표적으로 김기덕 감독 사건 등의 피해자를 지원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라는, 성평등한 영화산업현장을 만들자는 의미에서 설립된 센터에 신고된 사건 피해자 지원을 하고, 고소나 소송사건을 맡고도 있습니다.

Q 미투 운동 이후에 법정 풍경에 변화는 있나요?
지금은 과도기 같습니다. 성희롱·성폭력사건 심리에 있어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가 판결문에 등장한 지 몇 년 안 되었고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검사나 재판부에 따라서 편차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야 할 때, 피고인 퇴정을 신청하면 ‘차폐막만 설치하면 되지 않냐’며 피고인의 방어권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남아 있고 피고인이 별실에서 실시간 중계 장치로 듣고 있기 때문에 퇴정했다 해도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피고인과 한공간에 있는 것에 엄청난 공포를 느낍니다. 특히 불법촬영 피해자의 경우 차폐막 뒤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진술을 듣고있는 상황 자체가, 피고인이 자신을 몰래 찍은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한다고 합니다. 피해자의 이러한 심리적인 어려움을 이해시켜야만 피고인 퇴정을 허락해 주는 재판부도 가끔 있습니다. 반대로, 오히려 피해자 증인신문 전 판사님이 먼저 피고인 측 변호인께“피해자 인격권이나 사생활 침해, 성적 수치심을 느낄수 있는 2차 가해성 질문은 승낙하지 않겠다”라고 하거나, 증인신문 사항을 보고 2차 가해성 질문, 부적절하거나 계속 추궁하는 질문을 빼도록 하는 등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 소송지휘를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많이 변화되었죠.

Q 성폭력사건 피해자 대리를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나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친족 성폭력 피해자이자 아동학대 가해자였던 지적장애 여성의 사건입니다. 친족강간으로 인해 출산한 아이를 학대해서 아이가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 사망사건의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봤더니, 이 여성이 지적장애가 있는데도 혼자 조사를 받았더군요. 조사 내용 중 본인 발 사이즈를 묻는 질문에 “265”라고 대답한 게 있었습니다.
직접 만나보니 키가 145cm도 되지 않는 작은 체구에 발도 훨씬 작았습니다. 이 분은 법적인 조력을 받을 필요성이 너무 컸고, 이전까지 문제가 많은 상태로 조사를 받았다는 게 단적으로 보이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건을 맡아 무료변론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조사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변호인 조력을 한 번도 받지 못했고,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어려운 문장과 단어를 사용한 답변이 조서에 담겨 있었고, 조사 시간이 휴식없이 연속 6~7시간에, 다음날 또 6~7시간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저는 재판에서 이 조서들의 증거능력을 모두 부인했습니다. 특신상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 분이 등록 장애인이 아니었기에, 감정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기존 진료기록이 없어 감정 필요성을 더 소명해야 한다며 받아주지 않았죠. 문제는 당시 구속된 상태여서 정신과 전문의가 이분을 진료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심리상담가 접견도 신청하고, 지적장애 여성의 성폭력 관련 감정 경험이 많다고 알려진 정신과 전문의들에게 연락을 돌렸습니다. 다행히 한 분이 사건 기록만을 보고 지적장애가 있는 것으로 의심되니 감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써주셨고, 그것을 재판부가 받아줘서 감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1심에서 검찰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은 인정되었지만, 항소심에서 계속 다퉈서 추가 감정을 신청하고, 이 정도 지적 능력을 가진 분이 이런 빈도로 휴식 없이 조사를 받았을 때 온전한 진술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추가 감정 결과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항소심에서 검사 작성 피신조서 증거능력이 부정되었습니다. 검찰 피신의 증거능력이 ‘날아가는 것’은 사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1~2년 차 변호사였는데 피해자의 상황도 특수하고 이중적 지위에 있었기에 소송법적 쟁점이 많은 사건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Q n번방사건 공동대책위에서 현재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성폭력사건의 양상이 나날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변호사로서 사건의 변화에 맞춰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디지털 성폭력 범행 수법이 굉장히 빠르게 진화하고있는 데 비해 입법적으로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현행 성범죄 규정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일이 많죠. 법조계 안에서는 판결이 나와야 문제가 논의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법이 부족한 부분에 대한 지적과 개정 논의는 법조계 밖에서 좀 더 빨리 나옵니다. 최대한 현실에 발맞춰 연구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분들이 시는데, 시민단체 활동가나 연구자들입니다. 이 분들은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먼저 만나기 때문에 디지털 성폭력이 얼마나 무한 반복되고 피해가 확장되는지,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도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법조인으로서 늦지 않게 이런 변화를 포착하려면, 법조계 밖에 있는 연구자나 활동가들과의 교류와 협력이 중요합니다.

Q 공익적 사건을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공익사건을 전담하는 변호사가 아닌데 활동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공익전담인 변호사가 없는 사무실임에도 공익적인 사건에 비중을 많이 둔 변호사님들이 다수 있다는 환경적인 여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고용 변호사로 있을 때도 제 양심에 어긋나는 사건을 배당받지 않았고, 민변여성위원회 등 대외활동도 적극 지지를 받았었거든요. 그리고 공동대리인단 등 여러 변호사님들과 사건을 같이 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훌륭한 선배와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제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Q 여성인권, 젠더폭력 분야에 관심을 두고 활동을 하고싶은 동료 변호사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제가 로스쿨 학생이었을 때는 ‘나중에 변호사가 되면 낙태죄 등 이런 사건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실제로 할 수는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하고 싶은 일만 명확하면, 나와 마찬가지로 그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동료 법조인은 꼭 있고, 또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고, 그걸 주변에 알리면 좋은 동료를 분명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Q 여성신문 2019 ‘미래의 여성지도자상’을 받으신 소감과 앞으로의 목표나 꿈이 있다면?
상 이름이 ‘미래의 여성지도자’인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하라고 격려 차원에서 주신 상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성 평등에 관심 있는 젊은 분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요즘은 여성분들이 사회에 관심이 많고 공부도 많이 하지만 무엇보다 본인이 배우고 생각하는 것에 걸맞은 삶을 살기 위한 실천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미래는 여성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를 만드는 건 결국 실천이니까요. 미래에는 조금 더 여성이 공적 영역에서 제자리를 찾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것이 조금 더 한국 사회에서 빨리 실현될 수 있도록 변호사로서의 제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변호사로서의 일과 활동 사이의 균형을 지속 가능하게 일구고 싶습니다.

● 인터뷰/정리 : 김인희 본보 편집위원

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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