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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성희롱 심의위원회에 참여한다면

김인희 승인 2020.09.01 17:08:00 호수 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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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은 아니지만 나름의 유사한 역할을 하는 ‘법정 밖’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양성평등기본법에는 국가기관 등(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각급 학교, 공직유관단체, 이하 ‘공공기관’)이 성희롱 예방교육 등 방지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기관 내 성희롱이 발생하면 관련 법령과 여성가족부 지침 등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에 설치된 성희롱·성폭력사건 처리 기구에서 실무를 하기도 했고,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나 병원 등 공공기관의 고충심의위원회의 심의위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는데요. 기관 내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심의할 때 객관성과 전문성 담보를 위해 외부 전문가로 변호사를 찾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의 경험을 토대로, 변호사님들이 공공기관의 심의위원회에 외부 전문가로서 참여하게 되었을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두면 좋을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관 내부의 사건 처리 및 심의 절차는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양성평등기본법과 여성가족부 지침 등을 토대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공공기관이든지 성희롱·성폭력 상담과 조사를 담당하는 고충상담원이 지정되어 있는데, 규모가 있는 곳은 상담소나 인권센터 같은 별도의 조직이나 기구가 설치되어 있기도 합니다. 기관 내에서 성희롱·성폭력사건이 발생하면 이 고충상담기구에 사건이 접수되고, 고충상담원이 당사자 진술을 받는 등 조사를 진행합니다. 조사가 완료되면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성희롱·성폭력 판단 등을 하는 심의위원회가 열리고, 이 심의위원회의 외부 전문가로 변호사 등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의위원회는 주로 내부 위원에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형태로 구성되는데, 일정한 임기가 있는 상설 기구도 있고, 매 사건마다 별도로 위원회가 구성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부 기관은 조사 단계에서부터 외부 조사위원으로 변호사를 위촉해 조사를 진행하기도 하고, 심의 단계에서만 위촉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공공기관 성희롱·성폭력 심의위원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곳일까요. 위원회에 참여하는 심의위원은 고충상담원이 조사한 내용을 검토하고, 당사자들과 참고인들의 진술을 듣기도 하며, 성희롱·성폭력 사실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물론, 피해자 보호와 예방을 위한 조치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기관 내에 존재하는 작은 법정과도 같은데, 다만 행위자의 잘못의 판단과 처벌만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와 기관의 조치, 향후 예방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하며, 대부분은 ‘권고’ 기능을 가진 연성기구입니다. 이러한 심의위원회에서 성희롱·성폭력 판단이 나오면, 기관의 징계위원회를 거쳐 징계권자가 최종적으로 행위자의 징계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런 공공기관 심의위원회에서 외부 전문가로 변호사님들을 모실 때는 통상 기대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내부 고충상담원이 주의를 기울여 조사를 했더라도, 아무래도 법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추후에 있을 징계에 하자가 없는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심의위원회에서 성희롱·성폭력 판단을 내릴 때에도 법적 기준과 배치되지 않는지를 우려하곤 합니다. 위원으로 참여했을 때 기관 내 실무자와 다른 심의위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도 이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변호사님들이 심의위원으로 참여하셨을 때 이 부분들을 잘 검토해 주시면 기관의 사건 처리에 많은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조사 기록을 검토하고 사실관계 확정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보충해 주세요.

기관 내 고충상담원들은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겸임을 하거나, 전문 상담원이더라도 상담 전공을 한 경우가 많아서, 통상 변호사님들이 보던 수사기관의 기록에 비해 내용의 구체성이 다소 떨어질 수 있습니다. 심의위원회에서 사건 당사자나 참고인으로부터 진술을 받을 기회가 있다면, 기존 고충상담원의 조사에서는 빠졌지만 사실 관계 확정에 도움이 될 만한 진술을 추가로 받아 주면 좋고, 직접 진술을 듣지 못한다면 고충상담원을 통해 진술과 증거 등을 보강하도록 조언을 해 주셔도 좋습니다. 다만, 징계를 위한 증명은 형사 재판과는 다르게 ‘고도의 개연성’ 정도이기 때문에(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참고), 너무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하면 기관 내부의 사건 처리가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 유의하셔야 합니다.

둘째, 법적 판단 기준과 징계 예시 등 법적인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담당 고충상담원뿐 아니라 비법률가인 다른 심의위원들이 변호사인 심의위원에게 공통적으로 궁금해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문제가 된 행위가 법정에 가게 된다면 어떤 판단을 받게 되는가? 다른 기관에서는 어느 정도 징계를 내리는가?’하는 것입니다. 직장 내에서 성희롱으로 판단되는 행위가 동시에 강제 추행이 될 수도 있고, 민사 책임을 물을 수도 있기 때문에, 변호사님들이 평소 알고 있던 정보를 토대로 재판으로 간다면 이 행위가 어떤 죄에 해당하고,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진다는 것을 알려주면 심의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생각보다 이런 정보가 부족한 상태로 심의에 들어오는 분들이 많고, 성희롱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때로는 “라떼는~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어~”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에게, 법률 전문가로서 최근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법의 판단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판례가 무엇이라 말하는지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관 입장에서는 징계양정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기 때문에, 징계 재량과 한계, 다른 사례에서의 징계의 정도 등의 정보를 공유해 주셔도 큰 도움이 됩니다.

셋째, 기관 내 판단은 법정과 같지 않음을 알려주세요.

심의에 참여하다 보면 비법률가인 위원들이 ‘형사사건에서 무죄 나오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을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이런 우려로 인해 형사상 범죄가 되지 않는 성희롱 행위에 대해 징계하는 것을 꺼려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기관의 심의위원회는 형사 법정이 아니라는 점, 성폭력 ‘범죄’와 달리 성희롱은 형사상 무죄 판단과 무관하게 기관에서 징계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물론, 위원으로 참여한 변호사 역시, 이 점을 주의하여 너무 경직되고 방어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일례로, 한 심의위원회에서 피해자 출석 진술을 받을 때 외부 전문가로 참여한 변호사님이 너무 꼬치꼬치 사실 관계를 반복해서 캐물어서 이에 충격을 받은 피해자가 과호흡으로 진술이 중단되고, 기관이 가해자 편을 들고자 피해자를 의심했다는 민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기관은 피해자 보호 의무도 지고 있기 때문에, 자칫 사실 확인과 판단에 매몰되어 피해자 보호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관계 확인은 개연성 확인에 필요한 정도와 판단 역시 징계 처분을 위한 정도이면 됩니다.

결국 기관 내 심의위원회에 변호사로서 참여한다는 것은, 법적인 판단 기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과 동시에, 이곳이 법정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내부 절차에 걸맞은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것입니다. 기관의 고충상담원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외부 전문가로 모신 변호사님들로부터 법적 조언을 받아 큰 도움을 얻지만, 때로는 너무 법적인 기준에만 포커스가 맞춰져서 그와 다른 판단을 내리기가 조심스러워지고, 사실 판단과 처벌 이외에 어떤 대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걱정을 듣곤 합니다. 기관 내 성희롱·성폭력사건 처리는 가해자의 행위에 합당한 징계에도 목적이 있지만, 동시에 피해자를 잘 보호하고 공동체가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하는 데에도 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사건 발생 시 기관의 대처에 대한 많은 연구와 논의가 있었고, 그에 따라 심의위원회와 같은 절차를 두는 기관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마 점점 많은 기관에서 이 절차에 외부 전문가로 변호사를 찾는 경우가 많아질 것입니다. 아직은 다소 낯선 ‘법정 밖’ 영역일 수 있지만, 법률 전문가의 자문이 필요한 곳에서 많은 변호사님들이 좋은 역할을 해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인희 변호사

김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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