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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소해도 기쁘지 않았던 소송

권정효 승인 2021.02.08 10:53:11 호수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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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서울회생법원의 법인파산관재인으로 활동 중이다.

법인이 파산선고가 나면 채무자가 파산선고 시에 가진 모든 재산은 파산재단을 구성하고, 이러한 파산재단의 관리·처분권은 파산관재인에게 이전된다.

법인 파산선고가 나면 사실상 파산채권자들은 배당을 받기 힘들므로, 파산채권자들은 파산재단의 환가 및 배당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인파산관재인들은 전체 파산채권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배당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환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 노력 중의 하나가 부인권 행사이다. 부인권이란, 채무자가 파산선고 전에 파산채권자들을 해하는 행위를 한 경우 그 효력을 부인하여 일탈된 재산을 파산재단으로 회복시키기 위하여 행사하는 권리로 파산재단의 충실을 기하기 위하여 인정된 제도이다. 일탈된 채무자의 재산을 환원시키는 점에서 채권자 취소권과 유사하지만 편파변제도 부인권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법인파산관재인으로 처음 사건을 배당받고 열의에 차서 밤새 기록을 검토하였지만 혹시나 놓친 부분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 채무자 대표이사와 면담을 하기로 하였다. 면담 과정에서 대표이사가 파산선고 직전에 거액을 특정 채권자에게 변제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대표이사는 대출기한 연장이 불가능하게 되자 법인파산을 신청할 것을 마음먹고 이를 근로자들에게 알렸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채권자들이 달려와 변제를 요구하여 문제가 될 것을 알았지만, 가장 극성스러웠던 특정 채권자에게 변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검토해 보니 명백히 편파변제로 부인대상 행위였고, 변제한 돈을 회수할 경우 파산채권자들에게 일부 배당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법원에 보고드린 후 부인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자, 소송과정에서 변제받은 채권자는 자신은 정당한 채권자로서 그 권리를 행사한 것뿐인데 왜 소송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소송을 당하니 자신이 매우 나쁜 사람인 것 같아서 억울하다고 항변하였다.

법인파산관재인으로서 소송을 제기하였지만 채권자의 항변이 감정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하였다.

채권자들 입장에서는 허위의 채권도 아니고 정당한 채권을 가지고 있었고, 채무자가 파산을 신청하려고 하여 급박한 마음에 채권을 회수한 것뿐인데 이것을 반환하라고 하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대법원 판례는 부인대상이 ‘사해행위’인 경우 현재 자신의 변제자력이 부족하다는 사실과 그 행위로 인하여 채무자의 일반재산이 감소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만으로도 부인대상이 되나, ‘편파변제’의 경우 거래안전과의 균형을 도모하기 위해 파산절차가 개시되는 경우에 적용되는 채권자평등의 원칙을 회피하기 위하여 특정 채권자에게 변제 혹은 담보를 제공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부인대상이 된다 하여 요건을 조금 더 엄격히 보고 있다.

따라서 파산관재인들도 ‘편파변제’로 부인하는 경우 억울한 채권자들이 없도록 최대한 신중하게 검토하여 부인권을 행사하고 있다.

위의 사례의 경우는 파산선고 직전에 다른 채권자들에 우선하여 변제받아 갈 생각으로 변제받은 것이 너무나 명백하여 승소 판결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다.

변제받아 간 돈을 반환해야 하는 채권자는 판결이 나자 필자에게 와서 하소연을 하였다. 변제받은 돈으로 직원들 월급 주고 사업 운영비로 다 써버렸다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 경기가 어려워 사업이 잘 되지 않는데, 그 돈을 어떻게 구할지 막막하다는 것이었다.

소송을 수행한 사람으로서 승소 판결만큼 기쁜 소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채권자의 이러한 하소연을 들으니 승소를 하였음에도 기쁘지 않았다.

침울해 있는 채권자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면서, 대부분의 채권자들이 한 푼도 변제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정 및 전체 채권자들에게 평등하게 변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차분히 설명드리고 협조를 요청드렸다.

다행히 처음에는 강하게 항의하셨던 채권자도 다른 채권자들과 평등한 배당을 위해서라는 점을 이해하시고 협조해 주시기로 약속하셔서 무사히 소송과 집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법인파산관재인은 전체 파산채권자들의 이익을 위해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므로 편파변제를 받은 채권자의 입장이 딱하다고 하여 부인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게을리하는 것은 선관주의 의무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송을 수행하는 법인파산관재인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법인파산관재인의 숙명인 것을!
 

권정효 변호사

권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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