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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과 팩폭 사이에서 ∞

이재경 승인 2021.04.01 13:43:09 호수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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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학교폭력) 논란으로 연예, 스포츠계가 어수선하다. 올해 2월 중순 여자배구 스타 이다영, 이재영 쌍둥이 자매의 중학교 시절 학폭 사실이 피해자들의 폭로로 드러나며, 다른 스포츠 종목으로 표적이 옮겨가더니, 연예계마저 학폭 가해자로 지목받은 당사자들이 활동을 중단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걸그룹 ‘아이들’ 멤버 수진은 학폭으로 인하여 뷰티 브랜드 SNS 모델에서 사라졌고, ‘스트레이키즈’ 현진과 미스트롯 참가자 진달래는 학폭을 인정하고 중도 하차해야만 했다. ‘아이오아이’ 출신 김소혜, ‘이달의 소녀’ 츄, ‘세븐틴’ 민규, ‘몬스타엑스’ 기현, ‘에버글로우’ 아샤 등도 진실게임을 벌이는 중이다. 학폭 문제가 비단 어제오늘만의 폐단은 아니겠지만, 음악계가 학폭 예방을 위하여 애쓰는 노력이 우리의 귀에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2019년은 처음으로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 학폭의 그림자가 무겁게 내려깔린 순간으로 기억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그룹 잔나비의 건반 멤버의 학폭 논란이 증폭되자, 해당 멤버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팀에서 탈퇴하는 것으로 사태는 그나마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노래하던 잔나비는 한동안 활동무대를 잃고 스스로 주저해야만 했다. 시원시원스러운 각선미만큼이나 “Ma Boy”, “Lovin You” 등의 거침없는 음악으로 인기의 정상 가도를 달렸던 ‘씨스타’도 학폭 오명 속에서 대중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멤버 효린이 학폭 가해자 논란에 대하여 명예훼손 고소 등 법적 대응을 통해 강경책을 내세우면서, 결국 다행히도 양 측의 협의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학폭 이후 씨스타의 건강한 이미지가 예전과 똑같을 수는 없었고, 그들의 히트곡 “나 혼자(Alone)”처럼 고독의 나날을 보냈다. 걸그룹 ‘베리굿’의 다예도 초등학교 시절 학폭 스캔들에 발목이 잡히기도 했다.
 

학폭을 주제로 하여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일으켰던 대중가요들은 상당히 일찍부터 등장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H.O.T.의 1996년 데뷔곡 “전사의 후예”는 가장 대표적인 학폭 노래로 꼽힌다. 학폭 피해자의 처절한 외마디 외침으로 시작하면서 거침없이 퍼부어댔다. “아~ 니가 니가 니가 뭔데♪ 도대체 나를 때려! 왜 그래 니가 뭔데 힘이 없는 자의 목을 조르는 너를 나는 이제 벗어나고 싶어! 싶어! 싶어! 그들은 날 짓밟았어♬ 하나 남은 꿈도 빼앗아갔어. 그들은 날 짓밟았어. 하나 남은 꿈도 다 가져갔어” 랩 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스며있는 학폭의 심각성은 갓 데뷔한 문희준, 장우혁, 강타 등의 풋풋한 춤과 함께 청소년들의 가슴을 흔들었다. 1999년 거리의 시인이 내뿜던 “빙”과 2012년 뉴이스트의 신곡 “Face” 등이 잇따르면서 전사의 후예를 뒤따르는 후예로서 학폭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김윤아의 애절한 보컬도 학폭의 잔인한 최후를 노래하였다. 자우림의 “낙화”는 학폭으로 인하여 자살한 여중생의 유서를 담담하게 담아내면서 우리의 눈망울과 마음을 적신다. 친구들이 자기를 부정하고, 자신마저 자신을 부정하고, 엄마한테 미안해 하면서도, “사실은 난 더 살고 싶었어요 이제는 날 좀 내버려 두세요”라는 후렴구에 충격받을 수밖에…
 

외국 팝송에서도 학폭의 팩폭은 집요하다. Pearl Jam의 1991년 “Jeremy”는 텍사스 어느 작은 마을의 학교에서 벌어진 16세 Jeremy Wade Delle 학생의 학폭 자살사건을 꾸밈없이 다루고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제레미의 자살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여 미국에서조차도 잔인성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깡패스러운 외모만 보면 학폭 가해자 같은 인상이지만, 시애틀록의 시조새로 불리는 Nirvana도 “School”에서 학폭의 참상을 거칠게 다루고 있다. Christina Aguilera는 틴아이돌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제목만큼이나 아름다운 발라드 “Beautiful”을 들려주면서 학폭에 얼룩진 영혼을 어루만져 주었다. 크리스티나의 뒤를 이어서 디바 계보를 잇고 있는 Taylor Swift도 “Mean”에서 학폭 등 모든 종류의 폭력에 대한 저항 메시지를 담고 있다.
외국 톱 가수들 중에는 어린 시절 학폭, 왕따에 시달리다가 노래를 부르며 역경을 용케 극복하고 팝차트 정상에 오른 사례들이 적지 않다. “Thinking Out Loud”, “Shape of You” 등을 노래한 Ed Sheeran, 요즘은 영화배우로서 더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Lady GaGa, 청춘 아이돌 Shawn Mendes, Demi Lovato는 학폭 피해를 견뎌낸 용기로 더 많은 박수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Musicians Opposed to Bullying(M.O.B.)”라는 자발적인 민간 조직이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학폭에 대처하고 있다. 가수들이 꾸준히 학폭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학폭 노래도 발표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학폭의 심각성과 폐해를 널리 알림과 동시에 더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큰 귀감이다.

학폭은 이 사회가 더 나아지기 위한 진통이자 필수적인 통과의례이다. 다만, 불순한 목적의 무분별한 폭로는 팩폭이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일지도 모른다. 학폭과 팩폭 사이에서 우리가 더욱더 냉정해져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학폭은 마땅히 근절되어야 한다. 학폭 고백의 뒤늦은 용기도 당연히 박수받아야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폭로에만 의존해야 하는가? 우리는 ‘과거’와의 전쟁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팩폭이 빠진 여론몰이 마녀사냥이라면 바로잡아야 한다. 오늘날 학폭 사태가 온라인 폭로사이트 피해자들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인지, 아니면 폭로만능주의와 결합한 미디어의 먹잇감인지.. 이 순간, 그 누군가는 또다시 팩폭의 사냥감, 장난감일 뿐이다.

● 이재경 변호사 / 건국대 교수

이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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