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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숙 변호사 인터뷰

김인희 승인 2021.05.03 09:42:37 호수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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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1호의 공익전담변호사, 지금은 국내 최초로 대학 내 개설된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의 지도변호사. 공익변호사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오진숙 변호사를 만나 보았습니다.

Q. 군인에서 공익변호사가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생활을 5년 했고 대위로 제대했어요. 제대한 이유는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어서 결정한 것이었죠. 그 시기에 우연히 작은 기사를 하나 보게 되었는데, 지금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만들어지고 얼마 안 되었을 때 공익을 전업으로 하는 변호사를 소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변호사가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로스쿨에 가서 공익변호사가 되어야 겠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로스쿨이 각 지역 거점마다 생기는 것을 보고 로스쿨이 지역에서 할 역할이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지역 로스쿨에 가서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익변호사가 되자고 생각해서 충북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Q. 입학 전부터 공익변호사의 진로를 계획하셨군요. 로스쿨 재학 중에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로스쿨 1학년 때 ‘공감’ 인턴을 했어요. 당시에는 로스쿨 학생 대상 실무수습이 없었고, 대학생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6개월 기간의 인턴(자원활동가)이 있었거든요. 지역에서 일하는 공익변호사가 되고 싶은데, 공익변호사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금요일 수업을 빼고 청주에서 금요일마다 서울로 출근해서 일하고 돌아왔어요. 그리고 인권법학회를 만들었고, 인권법학회 회장을 하면서 지역 시민단체들과 연계해서 활동을 했습니다. 지적장애여성 성폭력상담소의 활동가분들이 판결문을 이해하기 어려워 하셔서 동기들과 함께 판례를 정리해 알려 드리기도 했고, 장애인 학대사건에 결합하기도 했고, 노동인권센터에서 필요한 정보공개청구서를 리걸클리닉에서 같이 쓰기도 했습니다. 당시 장애인 의무고용 사업장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청구를 했다가 영업비밀이라고 받지 못했는데,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청구를 하면서 학생들이 장애인 미고용 사업장이 고용부담금을 성실하게 납부했다며 부상을 받은 내역을 인터넷에서 찾게 되었죠. 이 자료를 바탕으로 이미 공개되었기 때문에 영업비밀이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해서 그 사건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활동은 ‘빵과 장미’를 만든 거였습니다. 로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익활동 공모전에 저희 인권법학회가 참여했고, ‘빵과 장미’가 우승을 했습니다. ‘빵과 장미’는 청소년노동인권 프로그램을 만들고, 직접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교육을 하고, 이를 매뉴얼로 만들어서 전국 로스쿨에 배포하고, 각 지역에서 이를 바탕으로 노동인권교육을 할 수 있게 하는 활동이에요. 강원대 로스쿨 인권법학회와 강원도 교육청과 저희 팀이 함께 노동인권 강사진이 될 활동가들과 1박 2일 프로그램도 진행했고, 사법연수원과 로스쿨 인권법학회 연합인 ‘인연’에서 팀을 만들어 서울에서 ‘빵과 장미’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활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서 보람을 느껴요.

Q. 충북 1호 공익전담변호사로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요?

변호사 실무수습이 끝날 즈음 남편이 독일로 교육을 받으러 가게 되어서 함께 2년 동안 독일에 가 있었어요. 2015년 여름에 귀국해서 본격적으로 지역 공익변호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익전담변호사도 일반적인 사건들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초반 1년 정도는 지역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반사건과 공익사건을 같이 했습니다. 특히, 지역에서는 변호사의 고유 업무인 송무에서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렇게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건의 원고 1,064명을 대리하기도 했고, 성폭력 피해자 지원이나 아동학대사건 등 여러 사건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충북 1호 공익전담변호사가 된 건 2016년에 제가 청주노동인권센터라는 시민단체에서 상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노동인권센터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청소년 노동자, 이주노동자들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을 지원했습니다. 법률상담은 상시로 했고, 사무실이 노동청 바로 옆에 있어서 진정사건이나 산업재해사건, 불법 파견사건 등 다양한 노동사건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저에게 들어오는 사건들이 있었는데, 아동학대 피해자나 장애인이 피해자가 된 사건, 여성단체에서 온 사건 등이 있었습니다.

제가 일했던 센터에서 일하겠다는 변호사들도 여럿 생기고, 상담도 사건도 많이 하면서 일은 성공적으로 잘 되었던 것 같아요.

Q. 공익전담변호사가 되면서 고민했던 점이 있으셨나요?

제가 지역 공변이 되려고 했을 때는 공익변호사가 어떻게 자립할 것인가에 고민이 필요하던 시기였어요. 저는 3가지 방안을 고려했었는데, 첫 번째는 NGO센터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1년 정도 사무실과 집기를 지원받으며 단체를 설립하는 방법, 두 번째는 시민단체에서 상근하는 방법, 세 번째는 지역 로스쿨 리걸클리닉과 연계해서 공익사건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정 기간 동안 펀딩을 받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당시 저는 풀뿌리 지원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지역 후원자를 통해 운영되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Q. 로스쿨 리걸클리닉을 통한 공익활동을 전부터 생각하셨던 거군요.

네, 맞아요. 청주노동인권센터를 나와서 2019년에 철도공사 사내변호사로 일하고 있을 때였어요. 서울대 로스쿨에 공익법률센터가 생기는데, 리걸클리닉과 함께 지역사회 공헌과 법률구조를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이곳의 청사진이 제가 생각했던 로스쿨의 역할과 맞기도 했고, 공익변호사가 리걸클리닉을 통해 활동하는 모델을 실현해 보지 못했던 아쉬움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공익소송도 중요하지만 취약계층에 대한 개별적인 법률구조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리걸클리닉을 통해 학생들과 같이 사건을 하게 되면 학생들에게도 많은 공부가 되고 사회적 취약층에게는 직접적인 법적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익법률센터 학내 법률상담 진행(좌) / 공익법무실습 공익활동 보고대회(우))

Q.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로스쿨에서 전담교수와 전담변호사를 뽑아서 공익활동과 리걸클리닉을 운영하도록 만든 게 전국에서 처음이었습니다. 리걸클리닉을 중심으로 공익활동과 사회공헌 활동을 결합하는 모델로 만들어졌죠.

임상법학(리걸클리닉) 수업을 다양하게 개설하고 실제 사건과 연계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법률구조클리닉에서는 지역사회 취약계층에 법률지원이 필요한 사건을 임상교수와 지도변호사가 수임하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기록 검토, 리서치, 서면작성 등을 하면 임상교수와 지도변호사가 서면을 검토 · 수정해서 제출하고, 재판을 참관하는 등 소송실무도 익힐 수 있게 해 줍니다. 기본적으로 지도변호사들은 공익법률구조활동을 하는데, 법률지원이 필요한 학내 구성원과 지역사회 취약계층에게 법률상담을 제공하고, 공익성과 교육적 목적에 부합하는 사안들은 학생들이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학생들이 사건에 참여하거나 법률상담, 기타 법률지원활동을 할 수 있는 프로보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미혼모단체와 함께 미혼모 · 부들이 자주 부딪히는 법적인 문제들을 모아 법률지원매뉴얼을 발간하기도 했고, 농업이주여성노동자들의 임금체불에 대한 근로기준법 위반사건 불기소 처분에 항고하고 재정신청하는 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해 해외자료 리서치를 하고 서면 작성을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역사회법률구조클리닉 수업으로 연계하여 학생들과 재정신청서를 작성하였는데, 최근 심리기일이 지정되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울대 1학년 학생 전원을 겨울방학 때 필수적으로 공익 관련 단체들에서 실무수습 할 수 있도록 한 동계공익법무실습도 진행하고, 공익변호사를 양성하기 위한 ‘공익펠로우변호사’ 제도, 공익진로를 희망하는 재학생들을 위한 ‘공익조교’ 제도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익진로탐색을 위해 특강 형식의 ‘공익테이블’도 운영합니다.

Q. 로스쿨에서 학생들과 함께 공익활동을 하는 의미와 보람이 있다면?

학생들이 지역자활센터에서 직접 법률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취약계층인 의뢰인을 직접 만나서 상담을 해 보면서 본인들이 배운 것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또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리걸클리닉에서 실제 사건을 다루며 경험한 절차는 한두 번뿐이라 해도 정말 안 잊어버리더군요. 학생들과 같이 사건을 하거나 현장에 나가면, 저희가 알려 주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이 배우고 느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함께하는 공익단체에서도 리서치나 학생들의 새로운 아이디어 등으로 실제 도움이 된다고 말씀해 주시고, 학생들이 연대해 준다는 것에도 힘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학생들이 나중에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될 텐데, 취약계층을 한 번이라도 접해 본 법조인과 아닌 법조인은 차이가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로스쿨에 오는 경우가 많아서 사회 경험이 적고, 워낙 공부에 매진하던 학생들이다 보니 취약계층을 만날 기회도 많지 않습니다. 이주노동자를 처음 봤다는 학생도 있고, 농업이주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 사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요. 공익변호사가 되겠다는 지향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좋든 싫든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법조인으로서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건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법조인이 되고 나서는 본인의 업무에 따라 취약계층의 사건을 평생 해 보지 않을 가능성도 큽니다. 로스쿨에서의 공익활동이 취약계층을 돕는 일평생의 유일한 사건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전국 로스쿨 학생들에게 이러한 경험의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서울대 공익법률센터가 모델이 되어 전국 로스쿨에 확산시키고, 지역사회와 취약계층에 법률가들이 공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한국리걸클리닉협의회와 공동으로 ‘예비법률가 공익인권프로그램’을 진행했었어요. 서울대가 서울지방변호사회와 함께 했던 것처럼, 각 지방변호사회에서도 그 지역 로스쿨과 함께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0 서울마라톤(좌) / 겨울 한강변 마라톤(우)

Q. 개인적인 생활에서의 즐거움은 어디서 찾으시는지요?

독일에서 2년 동안 지내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유럽 100개 도시를 여행하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결과적으로 108개 도시를 여행했고, 블로그에 각 나라와 도시마다 여행기를 올렸죠. 요새는 코로나19 때문에 해외로 여행을 가지 못하다 보니 가족들이 그 블로그 포스팅을 다시 보는 게 큰 즐거움이에요. 큰 아이가 중3, 작은 아이가 초2인데,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같이 지내는 게 너무 즐겁습니다. 요즘은 아이들과 ‘수요탐험대’를 만들어서 수요일 저녁마다 서촌, 인사동, 현대미술관 같은 명소들과 맛집들을 찾아 서울 곳곳을 다니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마라톤도 시작했는데, 요즘은 아침마다 한강변과 벚꽃길을 뛰고 있습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여행하듯이 즐겁게 살자는 생각이고, 지금도 서울을 여행하듯 가족들과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Q. 앞으로의 계획과 꿈꾸는 10년 후의 모습은?

‘하루하루는 열심히,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라고, 이동진 평론가가 한 말이 있는데, 여기에 공감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는 외국어고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는데 공군사관학교를 가서 군인이 되었고, 지금은 변호사가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양하고 어떻게 보면 일관성 없을 수도 있지만, 어느 위치에서든지 제가 잘 쓰일 수 있는 곳에서 즐겁게,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박사논문 심사가 목전에 있어서 잘 통과하면 좋겠습니다(웃음).

그리고 10년 후에는 여행지에서 마라톤 하는 게 꿈입니다. 작년에 마라톤을 시작한 이유가 사하라 사막마라톤에 나가고 싶어서 훈련을 한 것이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지금은 못 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사막마라톤을 완주하고 싶고, 10년 후에는 일 대신 여행지에 있으면 좋겠네요(웃음).

Q. 공익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동료나 후배변호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공익활동이 거창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공익변호사라는 말 자체가 동어반복 아니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도 동감합니다. 변호사라는 이름에 공익적 사명이 들어 있는데 공익변호사를 따로 지칭한다면 공익활동을 하는 변호사와 아닌 변호사가 구분되고, 공익변호사가 아니면 공익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으니까요.

공익활동은 모두 다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활동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공익단체로 지정한 곳에 기부하면 공익활동시간을 인정해 주는 것처럼, 사건을 직접 수행하고 연대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안 되면 상담이라도, 안 되면 기부라도, 작더라도 무엇이든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공익활동을 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많은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고, 환영할 것이라고, 동료로서 만나고 싶고 함께하고 싶다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 인터뷰/정리 : 김인희 본보 편집위원

김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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