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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ing Nun - 도미니크 Dominique(1963)

이현곤 승인 2021.07.05 17:25:38 호수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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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미니크님은 오로지 한결같이 여행을 하며, 초라한 차림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느 길에서나 어떤 곳에서나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밖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벨기에 도미니크회 피셰르몽 수녀원에 자닌 데케르(Jeanine Deckers)라는 수녀가 있었다. 자닌은 1959년 브뤼셀의 한 악기점에서 기타 하나를 사서 수녀원에 들어갔다. 수녀원에서 자닌은 맑은 영혼으로 노래를 만들어 불렀고 동료들은 이를 아주 좋아했는데, 주위의 권유로 이 노래들은 음반으로 제작되었다.

 이 음반에 실린 ‘도미니크(Dominique)’라는 노래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히트를 하였고, 1963년 12월부터 무려 4주 동안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앨범에는 이름 대신 ‘미소 짓는 수녀(Soeur Sourire)’로만 적혀 있으며, 이 노래는 엄청난 히트를 하였지만 수익은 모두 음반사와 수도회로 들어갔다.

 1965년 자닌 수녀는 다시 신앙생활에 몰두했지만 엄청난 히트곡을 만든 후에 노래에 대한 열정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었고, 결국 수녀원을 떠나 가수의 길로 나갔다. 이때 사용한 이름은 ‘룩 도미니크(Luc Dominique)’였는데, ‘Soeur Sourire’라는 이름은 사용이 허락되지 않았다.

 자닌은 1967년 ‘황금 알약(The Golden Pill)’이라는 곡을 발표하는데, 피임약을 인간에게 선물한 신을 찬양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이 피임을 금하는 교단의 방침과 대립하면서 그녀의 신앙심은 도마 위에 오르게 되고 교단의 간섭으로 콘서트까지 취소된다. 수녀일 때와 달리 그녀는 세속으로 나온 후 가수로 성공하지 못하였고, 결국 신경쇠약증에 걸렸다. 이후 그녀는 수녀원으로 다시 돌아가려 했지만 교단 측의 반대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음악도 잃고 종교도 잃은 그녀에게 1979년 벨기에 정부는 음반 수입에 대한 엄청난 세금을 독촉한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수익은 수도회에서 모두 가져갔기 때문에 세금 납부 의무가 없다고 항변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엄청난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1985년 4월 자닌은 52세의 나이에 친구이자 동성 연인이었던 아니 페셔와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닌과 아니는 자폐증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는데, 재정난과 체납 세금 문제로 엄청난 압박을 받았고 파산 직전의 상태였다고 한다. 그녀는 유서에 자신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자신들이 죽은 후 성당에서 장례식을 한 다음 함께 묻어달라는 글을 남겼다.

 “우리는 영적으로, 재정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로 돌아가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파산으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습니다(자닌과 아니의 유서).”

 자닌은 수녀원에서 순수한 신앙을 노래하다, 피임 찬성, 동성애, 자살로까지 이어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녀의 삶이 어떻든 간에 어릴 때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듣고 참 청량하고 순수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순수하고 순백한 아름다운 곡이다.
 

이현곤 변호사

이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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