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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따라가는 세상

최지영 승인 2021.08.02 13:30:58 호수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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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단어는 아마 ‘집’과 ‘투자’일 것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화끈하게 값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코인’은 몇 십억 단위의 ‘벼락부자’를 만들어 내었고, 자연스레 이른 나이에 평생 벌 돈을 모두 벌고 은퇴하는 ‘파이어족’을 실현시켰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일까? 차근차근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하겠다는 사람들도 갑자기 집을 사기 시작했고, 투자에 대해 무지하던 사람들도 갑자기 주식과 코인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집을 사고 투자를 해야 한다는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것 같다.

 경제학은 ‘모든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주어진 자원을 고려하여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공급에 대한 공포로 제대로 구경도 못 해 본 부동산을 위해 계약금부터 입금하기도 하고, 평소에 잘 메지도 않는 고가의 명품을 사러 ‘오픈런’을 하기도 한다. 또한, 재미로 만든 도지코인을 구매하여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리기도 한다. 얼핏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위들로 보이나 정말 오롯이 효용 극대화를 위한 선택인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 예일대 경제학 교수 ‘로버트 쉴러’는 우리가 왜 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지에 대하여 ‘이야기의 전염성’을 주목하고 있다.

 비트코인을 예로 들어보자. 어느 날 그 실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비트코인을 구매했다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러다, 비트코인으로 차를 샀다, 집을 샀다, 은퇴했다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 자극적이고 짧은 이야기는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전달된다. 사람들은 비트코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도 차를 사고 집을 살 수 있다는 기대로 비트코인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며 비트코인 가격은 상승한다. ‘이야기’는 어느 순간 소멸되기도 한다. 비트코인보다 더 자극적인 이야기로 관심이 옮겨졌을 수도 있고, 비트코인 이야기가 진부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다양한 이유로 ‘이야기’가 소멸되면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며 비트코인 가격이 내려간다. 로버트 쉴러 교수는 이러한 과정이 마치 전염병이 전염되고 소멸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느새 우리는 주변의 ‘이야기’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우리가 무슨 이야기든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는 바람에 우리 기억 속에 남는 이야기들은 자극적인 것들뿐이다. 다음 달에 명품백 값이 오른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명품을 사기 위해 오픈런 줄이 길어지고, 도지코인으로 많은 돈을 번 사람들 이야기가 슬슬 들리자 도지코인 값이 오른다. 기억에 남는 단어는 ‘값이 오른다’와 ‘돈을 벌었다’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 휩쓸리다 보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은 사라진다. 이야기들 속에 묻혀 정작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잊히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집’과 ‘투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스갯소리지만,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면 원하는 결혼 상대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부에 집중하기도 하고,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면 잘릴 걱정 없다는 이야기를 좇아 공무원 준비를 하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 정말 공무원이 되고 싶은지에 대하여 ‘나’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미 유명해진 사람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정말 관심이 있고 좋아하는 취미를 찾는 사람들, 자신의 소신으로 기부와 봉사를 하는 사람들, 정말 원하는 일을 시작해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선택에는 그들만의 이유가 있으며 그들만의 판단이 있다.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소신을 찾아가는 그들을 보면 절로 멋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마치 전염병처럼 여러 이야기가 돌아다니고 있는 지금, 나도 어떤 ‘이야기’에 이끌려 온 건 아닐지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제는 나의 선택이 합리적인지 따지기 전에 나의 선택이 맞는지를 따져 봐야 할 것 같다.

※ 본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한국은행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최지영 변호사
● 한국은행

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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