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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 이야기 되는 판결문 없을까요?”

이은지 승인 2021.09.01 16:30:35 호수 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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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된다’라는 말은 ‘기삿거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법원을 출입하는 기자들의 주 업무 중 하나는 ‘이야기 되는 판결문’을 찾는 것이죠. 형사사건에서는 주로 죄질이 좋지 않은 피고인에게 중형이 내려진 ‘유죄’ 판결이 이야기 되는 것으로 꼽히곤 합니다. 독자들에게 법원은 죄에 상응하는 벌을 내리는 정의 실현 기구라는 인식이 크기 때문에 쉽게 말해 ‘나쁜 사람이 큰 벌을 받는’ 기사가 주목도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 친한 변호사들에게 본인이 수임한 사건 중 기사로 쓸 만한 유의미한 판결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건네받은 건 하나같이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거나 무죄를 받은 판결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본인들이 승소한 사건이었죠.

 “무죄 나온 것 말고 죄질이 악하고 형량이 더 세게 나온 건 없을까요?”

 변호사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제가 졌다고 여기저기 광고할 일 있어요?” 맞는 말이었습니다. 기자들은 무거운 형이 나온 판결을 원하지만, 피고인을 변호해야 하는 변호사에게는 감형이나 무죄를 받은 판결이 가장 ‘이야기 되는’ 것이죠. 서로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판결의 거리는 그렇게도 멀었습니다. 법원에 배치 받고 형사재판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저도 모르게 검사의 입장이 되어 피고인이 엄벌에 처해져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법원 출입 3개월 만에, 억울한 사람이 한 명도 없도록 죄만큼의 벌을 받고 죄가 없다면 무죄를 받는 것도 재판의 의미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이야기 되는 판결’이라는 말을 가지고도 기자와 변호사의 입장이 다른데, 피고인의 살갗 위에 판결문이 적힌다는 형사재판에서 당사자 간의 간극과 법원의 고뇌는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공판 기사를 쓰면서도 매체에 따라, 기자에 따라, 또 사안에 따라 ‘이야기가 되는’ 내용은 천차만별입니다. 누군가는 검찰의 입장에서, 누군가는 변호인의 입장에서, 누군가는 판사의 입장에서 기사를 씁니다. 재판은 검사와 변호인의 공방 사이에서 판사가 결정을 내리는, 이른바 ‘삼륜(三輪)’의 작용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용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쓰는 것이 언론의 임무인데, 어느 순간 각자의 이해와 논조에 따라 한 쪽의 입장에 무게를 싣는 기사를 쓰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매몰돼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이른바 ‘역지사지’의 자세가 부족하지 않았는지. 저부터도 이 질문에 떳떳할 수 없었습니다.

 법원은 기자뿐만 아니라 그 안에 참여하고 있는 검사, 변호인, 판사 모두에게 각자 서로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더없이 적격인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정은, 검사는 혐의 입증을 위해, 변호인은 피고인의 무고한 부분을 변호하기 위해, 판사는 그 사이에서 진실을 밝히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場)이기 때문입니다. 판사와 검사가 공직에서 물러나고 난 이후 변호사로 다시 법정에 서게 되는 법조계 생태계 구조상 서로의 입장에 직접 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큰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한 검사는 사석에서 “판결문이 누구보다 좋은 선생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비슷한 사건에 대해 검사가 어떻게 공소장을 썼고, 변호인은 어떤 논리로 반박을 했는지, 그리고 판사는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공판에 들어가기 전 ‘내가 변호인이라면 어떻게 변호할까’, ‘내가 판사라면 어떻게 판단할까’에 대해 수없이 생각해 본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하나에 매몰되는 우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고 말이죠.

 얼마 전에는 한 부장검사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 검사와 피고인 신문을 놓고 공방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질문을 하겠다고 고집했고, 부장검사는 그것이 무의미하다면서 일체 답변하지 않겠다고 맞섰습니다. 만약 그가 검사석에 섰더라면 아마 검사 측의 주장과 똑같이 피고인 신문을 하게 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는 요즘, 결국 역지사지의 자세가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은 아닐까요.

 검사복을 벗고 갓 변호사 개업을 한 전직 차장검사와의 식사 자리. “이 기자, 변호사들이 어떤 사람인 줄 알아요? 남자를 데려다가 얼굴에 화장을 하고 옷을 새로 갈아입혀서 여자라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때 옆에 앉아 있던 기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검사님도 이제 변호사잖아요.” 우리는 그 말에 한바탕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법정에서 공수를 바꾸며 싸우고 ‘역할 바꾸기’가 이뤄지는 법조계는 역지사지의 기회가 자주 찾아오지만, 언론은 늘 당사자가 아닌 제3자 입장에서 관찰하는 입장이기에 더 어려운 과제인 것 같습니다. 법정에 드나든 지 1년을 넘긴 시점, 중형이 내려진 판결보다 무죄 선고로 이야기 되는 기사를 쓰는 일에 더 욕심이 나는 이유입니다.
 

이은지 문화일보 기자

이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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