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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코리아 정교화 정책·법무총괄 인터뷰

황귀빈 승인 2022.01.04 13:39:13 호수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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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회보 인기 코너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1999년에 사법연수원을 28기로 수료하고 법원에서 법조인 생활을 출발했습니다. 2003년부터는 법원을 나와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16년 가까이 근무하였습니다. 약 20년을 전통적인 법조 영역에 있다가, 2018년에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하면서 굉장히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올해부터는 넷플릭스에서 정책·법무 업무를 총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넷플릭스에서 지금 하고 계신 일에 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넷플릭스는 Entertainment Media 분야와 Tech 분야에 한 발씩 걸치고 있는 회사입니다. 기본적으로 회원의 즐거움(Member Joy)을 최우선으로 하는 Entertainment Media 회사이지만, 콘텐츠는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전달되다 보니까 기술적인 이슈들도 있는 것이죠. 종전에 없던 신사업이다 보니 방송통신위원회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같은 정부 기관들에서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정부 기관들을 상대로 하는 업무와 회사와 관련된 정책 및 법안들에 관한 업무, 소송 업무, 콘텐츠의 제작에 관한 계약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는 팀들을 총괄해서 아우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법조인 자격을 갖추고 법률가의 전통적 송무, 자문 영역을 넘어서 조직을 관리하고 회사 경영에도 참여하고 계신데, ‘변호사’라는 직업(혹은 자격)에 관한 생각을 자유롭게 듣고 싶습니다.

 Trusted-adviser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딸들이 중학교 다닐 때, 제가 진로 체험 시간 강사로 간 적이 있습니다. 변호사가 하는 업무를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더라고요. 드라마를 보면 변호사라는 직업이 좋게 그려지기도 하고, 안 좋게 그려지기도 하지만, 결국 변호사는 전문가로서 남을 진정으로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남이라는 것이 개인이 될 수도, 회사가 될 수도, 다른 여러 가지 형태의 조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변호사 업무의 본질은 신뢰감과 믿음을 줄 수 있는 조언자라고 생각합니다.

Q. 그 신뢰의 대상이 클라이언트인가요, 퍼블릭인가요?

 둘 다겠지요. SNS가 굉장히 발달된 요즘은 기업 입장에서도 Reputation, 브랜드 가치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의 작고 얕은 이익을 얻기 위해 가면 안 되는 길을 간다면, 장기적으로 잃는 것이 너무 많지요. 그래서 저는 기업을 위한 조언이 퍼블릭을 위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다고 보지 않습니다. 만약 정말 배치되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현업에 있는 분들은 아무래도 단기적인 수익이나 특정 기술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뛰던 방향으로 계속 뛰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요. 인하우스 변호사의 역할은 그런 상황에서 “그 길은 조금 아닌 것 같은데, 이 길은 어떠세요?”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대두되고 있는 ESG가 굉장히 중요하고, 기업 내에서 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기업이 계속 사랑받고 지속가능할 수 있으려면 말이죠.

Q. 법조인으로서 첫 시작을 법원에서 하셨습니다. 법원에서의 경험은 어떠셨나요?

 저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4년입니다. 법적인 문제에 관한 질문들이 ‘이게 법원 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법원 가면 이길 것 같아?’, ‘법원에서 어떻게 할 것 같아?’라는 내용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여전히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법원에서의 경험은 사실 굉장히 소중하지요. 법원에서 모셨던 부장님들과 같이 일했던 배석 판사님들로부터 너무 많이 배웠고요.

Q. 법원을 나와 재야에서 바라본 법원과, 법원 안에서 알던 모습 사이에 다른 점이 있었다면, 어떤 부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법원에 있을 때는 기록을 열심히 보았습니다. 내가 기록을 열심히 보고, 판례도 잘 찾아보며, 어디 휘둘리는 것 없이 최선의 결정을 하는데도, 당사자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법원을 나와서 보니, ‘진짜 저 판사님이 기록을 다 보셨을까?’, ‘우리 서면은 꼼꼼히 보셨을까?’, ‘똑같은 말이어도 준비서면을 한 번 더 내야 되지 않나?’, ‘왜 법정에서 열심히 안 듣고 계시는 것 같지?’, ‘왜 법정에서 합의부 둘이서만 얘기를 하지?’ 같은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까지 다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정의’에 관한 말 중에, 실질적으로도 정의로워야 하지만, 정의롭게 보이는 것(perception)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법원에 있을 때도 이 말을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정말 몸소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웃음) 그래서 법원 안과 밖을 모두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Q. 김·장 법률사무소에 합류하시고 나서는, 국제 중재팀에서 크게 활약하셨는데, 비결이 있으셨나요?

 국제 중재사건들은 다국적 당사자들과 다국적 변호사들, 다국적 중재인들 앞에서 분쟁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고려할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준거법이 한국법이 아닌 경우도 많은데, 한국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경우라도 한국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 내용을 설명해야 합니다. 굉장히 도전적인 이슈들이 많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Q. 기억에 남는 사건들이 있으신가요?

 많은 사건들이 기억에 남지만, 용인 경전철 사건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캐나다 등 다국적 투자자가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경전철을 지었는데, 최소수입보장 문제 등으로 인해서 준공이 안 되었어요. 저희가 투자자를 대리해 중재를 했는데, 1년 반도 안 되어서 완승해서 경전철 운행을 하게 한 사건이 기억에 남습니다.

 2015년 하노칼과 IPIC 인터내셔널이 한국 정부와 벌인 2,000억 원대 투자자 · 국가 간 소송(ISD) 중재사건에서 한국 정부를 대리한 경험도 기억에 남습니다. 정부를 대리하면서 각 부처별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정부 입장에서는 어떤 부분이 중요한지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상대방인 투자자가 중재 신청을 취하하면서 이례적인 승소를 하였습니다.
 


Q. 스캐든(Skadden, Arps, Slate, Meagher & Flom) 파견근무 시절도 궁금합니다.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는 회사였지요. 당시 스캐든의 중재 팀장님이 여자분이었어요. 물론 여자가 여자한테만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 변호사가 헤드로 있는 팀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여성 변호사가 적었습니다. 제 나이 또래의 다양한 국가의 여성 변호사들을 사귈 수도 있었고,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남성 중심적인 터프한 업계에서 소위 인정을 받기 위한 어려움과 가정에서의 역할과 육아와 같은 고민이 서양이라고 훨씬 더 나은 것도 아니고, 같이 이야기하면서 많은 것을 공감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업무적으로도, 지금은 정부를 상대로 하는 투자자 중재가 제법 많지만, 당시까지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캐든이 투자자를 대리해서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하는 투자자 중재사건을 하고 있어서 그런 업무들도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세상의 중심이 무너지는 것을 그 중심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2008년 9월에 리먼 브라더스가 넘어지면서 국제 금융위기가 왔습니다. 변호사들도 정리 해고를 많이 당했고요. 그때 ‘어느 로펌에서 하루에 몇십 명을 잘랐대’ 같은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물가와 환율이 두 배로 뛰는 상황이었지요.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내가 세상의 중심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작년 변협 양성평등 심포지엄 좌장을 맡으시는 등 오랜 기간 우리 사회 내 양성평등 문제에 관심을 두고 계시고, 여성 변호사들의 워너비 멘토이시기도 합니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양성평등을 둘러싼 갈등에 관하여 혹시 어떻게 보시는지요?

 얼마 전 젊은 변호사님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한 남자 변호사님이 “우리는 육아를 함께 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롤 모델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남자 선배들은 거의 주중에는 하루에 20시간씩 일하고, 주말에는 클라이언트와 골프 치러 나가는 선배들이었어요. 가정은 배우자에게 다 맡겨 두는 그런 시대였고요.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서 다 맞벌이를 하고, 육아도 같이 하잖아요. 그 변호사님 말이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은 오히려 멘토들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우리는 롤 모델이 없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맞벌이를 하는 젊은 변호사들이 육아나 가정적인 부분과 변호사로서의 업무를 함께 하는 것은 정말 너무 힘든 일입니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사회적인 차원에서 잘 다루어야 하는지는 함께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가 ‘그냥 너희가 알아서 해’라고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저출산율 문제와도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지요.

 젊은 남자 변호사들일수록 육아와 가정에 관한 생각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에게 측은지심을 가지고, 서로에게 멘토가 되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경쟁 상대로 느끼면서 ‘나도 먹고살기 힘든데, 누가 소수자야?’라고 접근하기보다, 서로가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보면, ‘이런 점은 남자들도 힘들겠다’, ‘이런 점은 여자들도 힘들겠다’라고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수의 여성들이 일을 함으로 인해서 남성들과 나눠 갖는 짐도 있고, 남성들이 가정과 아이와 가까워지면서 얻는 즐거움들도 있지요.

Q. 법조인이 아닌 인간 정교화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헛똑똑이.
 사실 저는 구멍이 많은 사람인데, 주변 사람들이 보완해 주고 있습니다. 구멍이 없어 보이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고 살았는데, 살다 보니까 구멍이 없는 척하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있는 대로 이야기하고, 친한 사람들의 이해와 배려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산업은행 주재원이셨던 아버지의 경험과 말씀이 법조인이 되시는 데 영향을 미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따님들에게 법조인이라는 직업을 권하시나요?

 얼마 전 대학생 큰딸이 갑자기 로스쿨 이야기를 꺼내서 저를 놀라게 하더라고요. 저는 추천하지도, 추천을 안 하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네가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지만, 쉬운 길은 아니다. 너무 경쟁이 치열하고, 나와서도 굉장히 치열하다. 어려운 부분이 많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아이들이 중학생 때 진로체험을 가서 변호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이 “선생님, 선생님은 자기 직업을 너무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변호사에 정말 관심 없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관심이 막 생기려고 해요.”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보면, 제가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고 그런 부분이 딸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Q. 넷플릭스 작품 중에 기억에 남으시거나, 추천하시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저는 주로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는데, 최근 본 작품 중에서는 <다시 찾은 우리>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습니다. 중국의 원 차일드 정책으로 인해서 70년대 말부터 많은 여자아이들이 집중적으로 미국 등 서구로 입양이 됐습니다. DNA 검사를 통해 서로가 친척이었다는 점을 알게 된 미국 소녀들이 친부모를 찾아서 중국으로 떠나는 이야기예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엄마가 왜 나를 버렸을까 하는 상실감이 있었는데, 중국에 와서 보니 정책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동시에 한 국가의 정책이라는 것이 분명 정당화할 만한 요소들이 있었겠지만, 국민 개개인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도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10대 사건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다큐멘터리도 기억에 남습니다. 생각보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사건을 잘 몰랐던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독일과 일본과 그렇게 싸워서 폐허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다시 독일과 일본을 재건시켜서 소련을 상대해야 하는 역사적 상황들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요? 우리가 몰랐던 여러 가지 사실들에 관한 영상들을, 복원을 잘했더라고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오징어 게임 vs 지옥

 오징어 게임.

Q.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2022년의 후배변호사들에 대한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단기적으로 보지 말아라. 바로 눈앞의 미래만 보고 손익을 따지지 말고, 삶을 길게 보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요. 저도 저희 아이들을 보면 그런 걸 잘 못해요. 경험을 아직 안 해 봤으니 모르는 게 당연해요. 그런데 사실 인생은 100m 달리기가 아니고, 마라톤이에요. 제 나이쯤 되면, 이런 말이 정말 확 와닿아요. 제가 1999년에 예비판사가 되었는데, 넷플릭스가 설립된 해가 그즈음입니다. 미국 어디선가 시작하여 직원이 몇십 명도 안 되는 DVD 렌털 회사가 20년 후에 OTT사업을 선도하는 글로컬(Glocal) 회사가 되어 제가 다니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웃음).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누구도 모르는 거잖아요. 단기적으로 ‘내가 이 사건을 맡느냐, 아니냐. 누구는 어떻다더라. 이런 것들에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간사

황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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